▲  가계부채 대책 후 부작용 속출

[중앙뉴스=신주영기자]대출받을 때 소득심사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부와 은행권의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이 시행된 지 100일이 지나면서 정책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가계부채가 1천200조 원을 넘어서며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와 은행권이 고심해서 만들어낸 대책이다.

 

핵심은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돈을 빌리도록 유도해 부채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수도권을 중심으로 시행된 후 가계대출 증가세는 정부의 의도대로 완만하게 꺾였다.

 

그러나 새로 담보대출을 받는 사람들이 깐깐해진 은행 심사를 피해 제2금융권을 찾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또 이미 거치식으로 대출을 받은 뒤 생활비를 쪼개 이자를 내던 시민들은 같은 조건으로 '갈아타기'가 불가능해 짐에 따라 갑자기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게 늘고, 주택거래량도 급감하는 등 부작용도 이어지고 있다.

 

◇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빌려준다"…여신심사 가이드라인 2월 시행

 

소득심사를 깐깐히 해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빌리도록 유도하겠다는 게 가이드라인의 취지다.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적어도 은행에서 주택을 담보로 돈 빌리는 걸 어렵게 하겠다는 의미다.

 

은행은 채무상환능력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 모든 주택담보대출 신청자의 소득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원천징수영수증(근로소득), 소득금액증명원(사업소득) 등 객관성 있는 증빙 소득을 기본으로 파악하되 증빙 소득으로 확인이 어려우면 국민연금, 건강보험료를 바탕으로 추정한 소득(인정소득)이나 신용카드 사용액, 매출액 등으로 추정한 소득(신고소득)을 활용하도록 했다.

 

이런 깐깐한 소득심사를 통과하면 원금과 이자를 나눠 갚도록 하는 비거치식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예전에는 대출 금리를 변동형으로 할지 혹은 고정형으로 할지, 원리금을 처음부터 나눠 갚을지 아니면 만기일에 한꺼번에 상환할지를 돈 빌리는 사람이 결정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이 전국 은행권에서 적용되면서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리고서 이자만 내다가 만기에 원금을 한 번에 갚는 대출은 원칙적으로 받을 수 없게됐다.

 

신규대출은 비거치식 분할상환(거치기간 1년 이내)으로 해야 한다. 집을 새로 사면서 그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사람도 처음부터 빚을 나눠 갚아야 한다.

 

예외도 있다. 아파트 등의 중도금 집단대출이나 일시적 2주택 처분 등 명확한 대출 상환계획이 있는 경우, 학자금이나 의료비 같은 불가피한 생활자금 등은 가이드라인 적용의 예외로 뒀다.

▲  가계부채 대책 후 부작용 속출

 

◇ 가계대출 폭증세에 내린 '극약 처방'

 

정부가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이유는 가계부채가 국가 경제를 위협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가계의 순처분가능소득(837조1천767억 원) 대비 가계신용 연말 잔액(1천206조9천798억 원)은 144.2%다.

 

이는 우리나라 가계가 1년 동안 처분가능소득을 모두 모아도 가계부채를 전부 갚기 어렵고 가계 빚의 44%가 남는다는 얘기다.

 

이 비율은 2004년 100.8%에서 꾸준히 상승해 2011년 131.3%로 130%대에 올라섰고 2012년 133.1%, 2013년 133.9%, 2014년 136.4%를 기록했다.

 

특히 최근 상승곡선이 가파르다는 점이 문제다. 작년 말 수치를 1년 전과 비교하면 7.8% 포인트나 뛰었는데, 이는 한국은행이 가계부채 통계를 집계한 2002년 이후 최대였던 2006년(7.2%)을 뛰어넘는 역대 최대 수준이다.

 

지난해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이 2014년보다 5.2%(41조4천478억 원) 늘어나는 동안 가계부채 잔액은 11.2%(121조7천206억 원) 급증했다.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가 처분가능소득의 2배를 넘은 것이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의 '2015년 가계금융 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계는 가처분소득의 25%를 대출 원리금(원금과 이자)을 갚는 데 쓰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대출을 받은 가구 중 원리금 상환이 부담스럽다고 응답한 가구가 70%에 달했다. 소득은 늘어나지 않는데 갚아야 할 빚만 계속 늘어나는 셈이다.

 

◇ 가계부채 연착륙…제2금융권으로 '풍선효과' 우려

 

이런 가계부채의 급증 속에 은행권이 돈을 빌려줄 때 차주(대출자)의 소득을 깐깐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가계부채의 급증세도 꺾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주택금융공사 모기지론을 포함한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9조7천억 원으로 작년 동기(11조6천억 원)보다 1조9천억 원 줄었다.

 

특히 대형은행들의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모기지론을 제외한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기업 등 6대 은행의 1분기 주택담보대출은 작년 연말보다 4조3천396억 원 늘어났다.

 

이는 작년 1분기 이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순증액인 7조6천960억 원의 56.4%에 불과한 것이다.

 

이처럼 제1금융권의 대출 증가세는 둔화되는 추세지만 2금융권에 대한 대출은 급증하고 있다.

지난 2월 말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우체국예금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잔액은 252조8천561억 원으로, 두 달 전인 작년 말(248조6천323억 원)보다 4조2천238억 원 늘었다.

 

이는 한은이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11월 이후 최대 규모다. 보통 1∼2월은 주택거래가 줄고 직장인들의 연말 상여금으로 자금 여력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대출 비수기로 꼽힌다. 그동안 가계대출 잔액은 보통 감소하거나 소폭으로 증가해왔다는 점에서 올해 급증 현상은 이례적이다.

 

문제는 2금융권의 대출 금리는 보통 은행권보다 높아서 가계의 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가계가 2금융권에서 생활비를 확보하려고 대출받는 경우가 많아 전체 대출규모는 줄이지 못한 채 국민들의 이자부담만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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