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과거에는 가십난이 따로 편집되어 있었다. 동아일보의 ‘단상단하’는 대표적인 가십난이었는데 백광하기자의 촌철살인이 참으로 무서웠다. 그는 해박한 한학을 바탕으로 칠언절구의 한시까지 동원한 수준 높은 가십기사를 썼는데 나중에 두꺼운 단행본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여기서 다루는 가십은 대부분 국회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꼬집는 일이었다. 행정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번 슬쩍 건드려 놓으면 벌집 쑤신 것처럼 발칵 뒤집힌다.

백광하기자는 은퇴 후 주역지식을 활용하여 명리학의 대가가 되었다는 풍문을 들었다. 아무튼 기십에 오르내리는 사람은 좋은 평가보다는 이미지가 나빠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수없이 많은 가십 중에서도 국회의원들이 한문을 잘못 읽는 것을 지적한 일이 종종 있다. 패배(敗北)를 ‘패북’, 만강(滿腔)을 ‘만공’으로 착각한 일들이다. 한자 하나 잘못 읽는 것이 국회의원의 자질과는 아무 상관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명시된 사람은 두고두고 ‘패북의원’ ‘만공의원’으로 놀림의 대상이 되었으니 죽을 맛이었으리라.

요즘은 한글전용이라 한문을 잘못 읽는 낭패는 사라졌겠지만 언어구사 능력은 여전히 빈곤하다. 외국어 과용도 그렇고 평소의 언어에 신중성이 결핍하다보니 나중에 주어 담기 어려운 말을 씀뻑 뱉을 때가 있다. 이번에 말썽 난 강용석의원의 성희롱 발언이 대표적이다. 앞 뒤 생각 없이 불쑥 내뱉은 말이 비수가 되어 자기 가슴을 찌른 것이다. 엘리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위트와 센스를 과시한답시고 저지르는 일 중의 하나다. 강용석의 발언은 한나라당의 제명으로까지 커졌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것은 개인의 일에 속한다.

그러나 경기도지사 김문수가 유력 일간지에 ‘이승만 동상 광화문건립’을 주장한 것은 그가 과연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지향하는 이 나라의 정치지도자인가 의심하게 만든다. 김문수는 세상이 다 아는 바와 같이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진보정당인 민중당을 거쳤지만 한나라당으로 국회의원에 당선했다. 경기도지사 재선에 성공하여 크게 각광을 받았다. 그에게는 차기 대권후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닐 만큼 정치적 위상이 높다. 젊은 시절에는 진보적 색채를 띠었지만 한나라당에서는 오히려 보수우익의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한다.

그가 대권후보에 도전할 것은 확실하며 상당한 기대를 모으고 있고, 크게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도 많다. 그러다보니 머리 회전이 너무 빨라진 것일까. 느닷없이 터져 나온 ‘이승만 동상을 광화문에 세우자’는 기고문은 참으로 번지수를 잘못 선택했다. 필자는 이승만 동상을 세우자는 말이 나왔을 때 이미 본란을 통하여 국립 현충원에 묻힌 이승만 무덤 앞에 세울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살아생전에 남산에 세워졌던 동상이 광화문 거리까지 끌려 내려온 것이 불과 50년 밖에 안 되었다.

역사는 아직도 그를 용서하지 못한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다. 일부 극우세력들이 건국 대통령으로 호칭하고 있지만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행적으로 살펴 판단하면 초대 대통령이 오히려 점잖다. 그가 조선조말 개혁운동에 앞장서 감옥살이를 했고, 일제에 저항하여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내는 등 독립운동을 했던 뜨거운 열정은 모든 국민이 다 안다. 그러한 공로로 광복 후 대통령이 되었던 게 아닌가. 이승만의 단독정부냐 김구의 통일정부냐를 놓고 논하기에는 이 자리가 너무 좁다.

어찌되었든 국민의 여망을 안고 이승만은 제헌국회에서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당선했고 가부장적 통치에 매달리며 국부(國父)로 떠받들어졌지만 이미 그는 늙은 고집쟁이로 입에 혀처럼 달착지근한 아첨배들에게 푹 빠져버렸다. 간접선거가 불리하니까 직선제 개헌을 하기 위해서 정치파동과 사사오입 개헌이라는 전대미문의 강권을 휘두른다. 영구집권을 위해서 삼선개헌까지 밀고 간 그는 후계구도에 이기붕을 점찍고 3.15부정선거에 눈을 감는다. 이에 전국의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이승만을 권좌에서 몰아낸다.

4.19혁명이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은 학생과 시민 187명을 사살했고 부상자만도 1천여 명이 훨씬 넘는다. 12년의 일인정권은 무너지고 그는 하와이로 망명한다. 스스로의 실정과 부정부패에 의해서 국민의 버림을 받았다. 늙고 병든 몸으로 귀국을 원했지만 박정희정권은 국민의 분노를 감안하여 불허한다. 독립운동과 정부수립 과정에서 약간의 공로가 있다고 해서 국민에게 총탄을 퍼붓고 쫓겨난 대통령의 동상을 광화문에 세우자는 주장은 한마디로 망발이다. 김문수는 이승만에 대해서 좀더 천착(穿鑿)했어야 하지 않을까. 대권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정의의 역사편에 서야만 한다.

4.19혁명의 용사 중에는 50년 동안 보훈병원에 누워있는 사람도 있다. 누구보다도 우수한 정치인으로 독재와 싸우다가 감옥살이도 해본 김문수가 어쩌다가 이런 망발을 하게 되었을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4.19영령 앞에 깊이 사죄해야만 한다. 그의 꿈이 크면 클수록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4.19혁명의 산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충고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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