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19살의 피끓는 청춘이 생일을 하루 앞두고 지하철 안전문을 고치다가 유명을 달리했다.

 

한가정의 귀한 아들이며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 질 젊디 젊은 청춘은 그렇게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간 이 비겁한 사회를 원망조차 할 시간도 없이 하늘나라로 갔다.

 

만약에 누군가가 당신에게 청년의 미래를 물어오거든 좋은말도 해주어야 하겠지만 특별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지하철 안전문 일터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청년의 고단한 삶도 이야기 해 줘라.

 

<필자>가 찾아간 청년의 죽음의 일터에는 요란한 추모객의 발길만 있을뿐 변한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고단하고 힘들게 살았을 것 같은 19살 젊은이의 쓰라린 절규만이 삶의 마침표 현장에 메아리되어 돌아오고 있을뿐 너부러진 공구통 속엔 뜯어보지도 못한 컵라면이 유품으로 남아 있었다.

 

한 젊은이의 죽음은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불확실한 현실에 불을 질렀다. 을(乙)일수 밖에 없는 ‘노동자’의 죽음은 대부분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하고 조용히 묻혀지는게 작금의 현실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경제적 이익과 효율성에만 눈이 먼 양심 바르지 못한 일부 기업들의‘위험의 외주화’ 현상이 일반화한 데 따른 것으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먹이사슬의 논리가 인간사회에도 존재 한다는 뜻이다.

 

기업도 그럴진데 하물며 힘도 없고 목소리도 작을 수밖에 없는 하청노동자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목숨을 담보한 외줄타기 인생일수 밖에 없다. 더욱이 가장들은 가족이라는 가슴앓이를 하면서 말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김모(19)군 사망사고는 서울시 지하철에서 일어난 세 번째 사건이다. 성수역·강남역·구의역으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 사고 형태는 판박이다.

 

이처럼 반복돼 온 지하철 안전문 정비 비정규 노동자 사망사고는 불안정한 고용형태가 낳은 명백한 구조적 인재로 봐야한다. 더욱더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것은 원청사인 서울메트로와 서울시의 행위다.

 

원청사인 두 기관은 사건이 터질때마다 매번 사망한 비정규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한 채 숨박꼭질 하듯 용역업체 뒤로 숨어 버린다. 이제는 숨는 것도 모자라 당당하고 뻔뻔하다.

서울메트로는 언론들이 덤벼들자 관리자를 통해 사망한 당사자의 과실을 먼저 언급하는 등 중대 사건을 은폐하고 왜곡하려 했다. 참으로 무책임하고 비겁한 행위일수 밖에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자는 매일같이 평균 5명꼴로 발생하고 있다. 1달이면 무려 150여명의 가장(家長)들이 삶의 현장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선소에서도 죽고, 건설현장에서도 죽고, 위험·유해 화학물질을 다루는 제조업체에서도 죽음을 피해가지 못했다.

 

석유화학단지는 물론 지하철과 철도 등 지역과 업종을 가리지 않았다. 이처럼 비정규직 용역업체 노동자들은 이윤에 눈먼 자본가들의 주판알 튀기는 위험천만한 돈 놀음 속에 가장 위험하고 은밀한 곳으로 밀려 밀려 들어가고 있다.

 

생명과 안전보다 돈과 이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 사회의 천박한 모습과 가치관이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이 시점에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19살 청년의 목숨값으로 제기된 물음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서울메트로는 자신들의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 현직의 높은 지위를 이용, 용역업체에 묻지마식 용역 계약을 해줬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가차서 말이 안나올 정도다. 메트로와 은성PSD가 지난해 5월 체결한 계약서와 용역 제안서에서 메트로는 은성PSD에 ‘메트로 전적자(轉籍者) 38명을 고용승계하라’고 명시했다.

 

스크린도어 수리 인력 125명 중 30%를 메트로 출신으로 채우라는 얘기다.

 

제안서에는 1인당 월 급여 402만원과 복리후생비 월 20만원, 퇴직금 442만원 등 38명에게 지급할 액수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결국 19살 청춘의 젊은이가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배경에는 ‘서울메트로 마피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메트로 퇴직자에게 월 422만원의 월급을 챙겨주기위해 19살 청춘은 월 144만원의 박봉에 시달리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필자>는 메트로 노조가 조합원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하지만 울타리 밖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서울메트로 노조는 자신들의 조그만 손해에도 머리띠를 둘러맨다. 그것이 정당하던 정당하지 않던 그들은 늘 시민들의 발목을 무기삼아 꽥꽥된다.그러면 정부도 시민도 저들의 말을 잘 들어주니 눈에 뵈는게 없는 모양이다.

 

이제 공은 국가로 넘어왔다. 국가가 존재해야 하는 최우선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지키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위조차 지키지 못하면서 그저 사탕발림 식 정책이나 공약으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인다면 그건 국가가 아니라 야합을 일삼는 이익단체일수 밖에 없다.

 

국민의 일상에, 특히 국민 중 최대 다수인 노동자들의 일터에 스며든 죽음을 나 몰라라 하는 정부는 국민들이 믿는 나라가 아니다.

 

피어보지도 못한 19살 꽃다운 청춘의 미생(未生)의 무덤가에는 정치인의 방문도, 번쩍이던 카메라 플래시도 다 필요없다. 뒷북치는 온갖 대책도 다 부질없다. 노동자들이 편하게 살수있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만 정부가 해주면 된다.

 

구의역 9-4 승강장 안전문 앞에서 죽어간 19살 청년노동자는 이제 아무 말이 없다. 오로지 전동열차만이 수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쏟아낼뿐이다. 그러나 가슴아픈 이들의 무수한 질문만은 구의역 9-4 승강장 앞에 오늘도 내일도 쌓여만 갈 것 같다.
 

/중앙뉴스/윤장섭 기자 news@ej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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