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빙처럼 차갑고 단단한 의지가 필요했다

 

◈ <중앙뉴스> 로재성 논설위원의 시베리아 횡단기 제7부

 

▲ 시베리아 횡단열차 내부  ©  로재성 논설위원

 

 

◈ 겨울 시베리아를 횡단하다. [제 7부]

◈ 나는 결빙처럼 차갑고 단단한 의지가 필요했다

 

 

밤 9시 15분. 내가 탄 블라디보스톡행 시베리아 횡단열차 13호칸은 6인실 객실로 매우 비좁았다. 이르쿠츠크로 올 때 탔던 4인실과는 확연히 달랐다. 4인실은 2층 침대 2개 조가 한 방을 이뤘고 밖에 차단된 복도가 있으나, 6인실은 2층 침대 2개조와 별도의 2층 침대 1개조 사이로 사람 다니는 통로만 있어 매우 혼잡했다. 내 자리 18번은 2층 한구석이라 24시간을 천정 밑에 처박힌 채 4박 5일을 달려가야 하는 신세였다.

 

짐이 잔뜩 들어간 내 커다란 트렁크가 1층 좌석 밑에 들어가지 않았다. 4인실에 들어가던 트렁크가 6인실에서는 아니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식량 때문에 30kg가 넘는 무거운 짐을 2층 침대 위 천정 바로 밑구멍에 쑤셔 박는 것이었다. 하지만 2m50cm가 넘는 그 시렁에 무거운 짐을 올리려고 시도했으나 내 키와 힘으론 어림없었고 나는 커다란 짐을 통로 복판에 세우고 난감해했다.

 

그때 6인실 아래층에 앉아 있던 중년부부의 남편이 벌떡 일어났다. 키가 2m가 넘는 기골장대한 거인이 솥뚜껑만한 손으로 내 트렁크를 책가방처럼 가볍게 그 높은 곳에 올려주었다. 톨스토이가 쓴 동화 <바보 이반>의 이반 아저씨가 나를 향해 콧수염을 매만지며 씩 웃었다. 러시아에 와서 친절한 사람을 많이 만났다. 도착 첫날 밤 숙소를 못찾았을 때 러시아 여대생을 만났고 바이칼 호수에서는 소냐를 만나 도움을 받았다. 밤늦게 2층 침대 위에서 맥주 한 병을 마시고 깊은 잠에 빠졌다.

 

이튿날 늦게 일어나 침대 위에서 러시아산 흑빵과 치즈, 소시지로 늦은 아침을 먹었다. 시베리아 동쪽지방은 높지 않은 산들이 가끔 보였고 눈 덮인 삼림지대가  대부분이었다. 남쪽 벌판이 거대한 전나무 밀림이 까마득히 펼쳐졌다. 자작나무 없이 전나무만 보이는 삼림지대는 처음이다. 옅은 구름이 태양을 가렸으나 온 들판은 눈부신 순백색으로 물들었다.

 

철로변 전나무숲이 대거 벌목된 벌판을 기차는 지나갔다. 어린 전나무만 남기고 거목들이 잘린 채 밑둥만 남은 현장이었다. 북한 벌목공들이 인권을 박탈당한 채 죄수처럼 착취당하는 현장이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벌목현장은 엄청나게 넓었고 군데군데 선 거대한 통나무집이 그들의 거처 같았는데, 폐쇄된 듯했다. 얼마나 많은 벌목공들이 혹사당하고 임금을 착취당하고 맞아죽고 도망쳤을까. 영하 수십 도 혹한 속에서 그들의 고통과 눈물이 생각났다.

 

나는 6,000km를 달려왔으나 터널 하나 나타나지 않는 거대한 삼림지대에 어느새 질리고 있었다. 이제 눈 한번 쏟아졌으면 좋겠다. 기차 안에서만 5일 밤을 보냈지만 쏟아지는 눈보라를 보지 못했다. 이것도 이상 기후 때문인가. 시베리아는 눈이 가득 덮인 벌판이나 눈이 내리지 않았다. 기차는 한 시간 이상 전나무 밀림 속을 달리고 있다.

 

바이칼에 내리기 직전 나는 지인들에게 뒤늦은 새해 인사를 문자메시지로 보냈다. <벌써 나흘째,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자작나무 가득한 설국 5천km를 달리고 있습니다. 저가 항공권과 열차표만 사가지고 혼자 떠난 배낭여행입니다. 이제 9시간 후면 바이칼 호수에 도착합니다. 새해 건승하십시오.> 안부를 묻는 문자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집식구들에게 전화를 했고 딸에게는 그간 써온 소설들의 미완성 파일을 이메일로 보냈다.

 

공직에서 퇴직한 후 17년, 나는 글을 쓴다는 명분 하나로 살아왔고 식구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안겨주었고 몇 가지 특이한 장편소설을 발표했으나 팔리지 않았다. 내 글에 대한 세상의 몰인식과 생활고로 인한 정서적 불안정성이 늘 나를 짓눌렀다. 이렇게 50대가 서녁에 지는 해처럼 기울어가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결빙처럼 차갑고 단단한 의식과 강한 의지가 필요했다. 글을 열심히 썼지만 정신이 망가져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시베리아 여행에 나서게 되었다. 땡전 한푼 없이 모험심 하나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이것을 계기로 나는 달라져야 했다. 이제 마지막 도전이 필요했다. 내 삶을 실은 진정한 글쓰기를 시작해야 했다. 나는 꼭 달라져야 한다.

 

차안에는 온통 러시아인들뿐이다. 외국인이라고는 나뿐 아닐까 싶다. 차안이 섭씨 20도라 러시아인들은 얇은 옷만 입고 떠들고 먹고 마신다. 화장실을 향해 복도를 들락거리고 청년들은 기차 승강구에 모여 담배를 피운다. 여성들은 대부분 뚱뚱하고 남자들은 거구였다. 기차 탁자에 가득한 빵과 치즈, 소시지, 병에 담긴 오이지,  마요네즈를 엄청 먹는다. 기차에서는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나는 손짓과 표정만으로 말한다. 지구상에서 이렇게 영어에 적대적인 나라가 있을까.

 

13호칸 여성 차장은 키가 작고 예쁘장한 젊은 처녀지만 대단히 거칠다. 기차가 출발한지 얼마 안 돼 내가 화장실 문을 열려고 하자 그녀는 사나운 얼굴로 내 손을 탁 치며 거친 러시아말을 내뱉는다. 선로에 오물을 그대로 버리는 시스템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지 정말 예의는 빵점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수십 년전 공산주의 시절 만들어진 열차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고 안내방송은 물론 번역문 하나 없다. 이 철도는 오로지 러시아인을 위해 존재한다. 외국관광객을 배려하지 않는 나라가 러시아 말고 있을까. 그 험악한 북한도 이러지 않을 거다.

 

8박 9일간 달리는 기차에 샤워시설이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물이 귀한 외몽골 사막에도 샤워시설이 있는데 러시아인들은 씻는 걸 싫어하나보다. 이제는 나도 숙달돼 불편을 못 느낀다. 나도 치즈를 매일 먹어대 러시아 기차 안에서 나는 노린내가 이제는 사라졌다. 6인실 기차의 장점은 승객들이 며칠간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낸다는 점이었고 시장처럼 북적거리는 소란이 정겹게 느껴진다. 나는 해외여행에서 유스호스텔 숙박은 처음 경험했지만 정말 만족스러웠다. 호스텔에서 만난 많은 이국의 젊은이들에게서 알찬 여행정보를 얻었고 정서적 교감도 얻을 수 있었다.

 

기차는 광활한 초원지대를 달린다. 눈밭 사이로 노랗게 마른 풀들이 가득하다. 나무 몇 그루 없는 벌판은 몽골의 초원지대와 흡사했다. 광활한 벌판에는 인적 하나 없고 고요한 정적뿐이다. 지리적으로도 몽골초원과 멀지 않은 곳이다. 몽골보다 더 몽골 같은 초원, 한 겨울인데도 가축이 풀을 뜯을 초원의 풀이 풍부했는데, 몽골과 달리 가축이 없다.

 

지구상에서 땅이 가장 넓고 자원이 가장 풍부한 러시아가 경제난으로 국가의 존폐가 위협을 받는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생각엔 아직도 떨어내지 못한 공산주의 잔재인 비효율, 나태, 후진적인 공적 시스템과 시민의식 부족이 풍족한 나라를 낙후하게 만들고 있었다.

 

기차가 동쪽으로 달려갈수록 해가 길어진다. 오후 다섯 시가 됐으나 날이 어둡지 않았다. 어둠이 온 벌판에 조금씩 내리고 하늘의 회색빛이 짙어간다. 햇볕을 잃은 창백한 하늘과 온기를 잃은 하얀 얼음벌판. 삼림은 더욱 검어 보이고 멀리 떨어진 산도 희미한 어둠 속에 제 모습을 묻는다. 온 들판은 여전히 인적 하나 없고 차창 밖으로 바람 가득한 시베리아는 어둠에 묻히면서 모습을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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