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은 최선을 다했고, 모두가 희생하였다. 패배의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지난 6월 1일 스페인 축구 대표 팀과 경기에서 대패한 후 인터뷰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한 말이다. 모든 국민이 15년 전 오대영(5-0)의 악몽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현대 축구에서 보기 드문 육대일(6-1)이라는 큰 점수 차이로 한국의 국가대표 팀이 패했기 때문이다.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슈틸리케 감독에게 크게 관심을 가진 국민들은 많지 않았다. 15년 전 히딩크 감독도 별명이 오대영이였다고 스스로 위로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그동안 슈틸리케 감독 부임 후 쌓은 실적은 약체 팀과의 결과뿐이라며, 갈길 먼 한국축구의 현주소에 회의적은 반응을 보인 팬도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말한 자신의 책임이라는 말은 그저 지나가는 의례적인 말로 치부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연이어 벌어진 체코와의 경기는 국민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예상을 뒤엎고 이대일(2-1)로 승리했기 때문이다. 체코 팀이 세계 최강팀은 아니지만 우리와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고 모두가 예상하였기 때문이다. 체코와의 경기를 앞두고 단 며칠 동안에 슈틸리케 감독이 어떤 리더십을 보여 주었는지 우리는 잘 알지를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추정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영향력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팀을 이끌어 가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리더십의 정의는 다양하다. 성과를 창출하는 불굴의 열정부터 의무적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하게 하는 능력까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정의 된다. 분명한 것은 리더십이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영향력을 행하는 행위에 관련이 있고, 리더와 구성원 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리더십의 특성도 다양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리더의 조건으로 통찰력과 품성을 꼽는 자가 있는 가하면, 카리스마와 서번트, 임파워먼트를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중에서도 뭐니 뭐니 해도 책임감과 사심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닌가 한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것처럼 리더십의 패러다임도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리더십에서는 권위적인 명령과 지시로 성과를 창출했다면, 요즘의 리더십은 설득과 섬김으로 구성원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또한 과거에 권력을 혼자 독점하면서 누리는 리더십이 통했다면, 요즘에는 모든 권력을 분산해야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리더십에서 마치 진리처럼 변치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책임감이다.

 

책임감은 그 리더를 신뢰 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다. 구성원들은 무슨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리더를 따르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목숨도 바칠 수 있다는 의지가 생기는 것도 리더의 강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 신뢰 자체가 구성원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와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가 얼마나 많은지 한 번쯤 돌이켜 보고 싶다. 가슴 보다는 머리만 좋은 리더가 더 많아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책임감이 결여된 리더는 정체성도 명확하지 않다. 모호한 정체성으로 구성원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얼마 전 국민의 심판을 받은 4월 13일 총선의 결과를 두고 보인 여당의 행태, 며칠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구의역 스크린 도어 수리 중 사망한 청년, 남양주 역 전철 공사 폭발사건, 그리고 전남 신안의 어떤 섬에서 일어난 여교사 집단 성폭력 사건을 보면서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그 어디에도 책임지는 기관이나 리더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청운대학교 베트남학과 이윤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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