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속이는 행위는 형법상 사기죄로 처벌받는다. 정치인이 배신을 하면 선거를 앞두고 정당공천에서 배제된다. 지난번 총선에서 유승민은 박근혜를 배신했다는 정치적 압박을 받으며 공천에서 마지막 날 탈락되었다.

 

그가 참말 배신을 한 것인지 여부는 오늘 거론하고자 하는 논지와 별개의 문제여서 거론할 필요가 없지만 그 덕분에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하였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게다가 여당의 참패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새누리당은 제1당을 회복하기 위하여 탈당인사들을 모두 복당시키는 통에 묻혀서 도로 새누리 당원이 되었다. 10여 년 전에 김모라는 변호사가 오랫동안 몸담고 있던 삼성그룹의 기업비리를 폭로하여 화제가 된 일이 있다.

 

그 역시 삼성의 입장에서 보면 배신자로 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기업의 투명성을 되찾는데 한 몫 했다는 평가는 받았다. 정치적이건, 경제적이건 간에 한 조직 속에서 자신을 키워준 은공을 생각한다면 배신은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그러나 소신에 따라 정의심의 발로였다고 강변한다면 사회를 맑고 밝게 하는데 일익을 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요즘 정부에서는 내부자 고발을 장려하여 여러 가지 ‘파라치’로 메리트를 주고 있기도 하다. 이것이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국제외교의 경우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철칙이 존재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일은 국제사회에서 얼마든지 목격되는 일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관계가 매우 좋았다. 경제교역에서 1위를 점유한지는 오래되었고 양국정상들이 오고가며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되어 있다. 게다가 중국이 주도하는 AIIB는 세계은행이나 IMF로 대표되는 미국중심의 경제 질서에 아시아권에서 도전하는 혁명적 국제금융기구다. 미국이 반대했지만 한국은 여기에 가담했다.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제인 사드배치다. 사드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어수단이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오직 미국만이 사드라는 요격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은 주한미군은 물론이요 한국이 핵폭탄의 위협에서 안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중국은 사드의 레이더망이 중국까지 커버한다는 위험론을 내걸고 반대하며 한국에 압력을 가한다. 어제까지 웃으며 만나던 외교장관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붉으락푸르락 한다. 이것이 국제외교의 실상이며 수천 년 내려온 전통이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역사적인 은원관계에 있다. 은(恩)은 우리가 일본에 베푼 게 많다는 의미이며 원(怨)은 일본의 배신에 대한 민족의 분노다.

 

일본은 오랜 세월을 두고 해적질을 일삼으며 살인 약탈 납치를 자행해 왔던 나라다. 임진왜란을 일으켜 7년 동안 조선천지를 폐허로 만들었다. 온갖 금은보화와 문화재를 약탈해 갔고 도공(陶工)을 비롯한 수많은 기술자를 납치하여 일본문화를 꽃피웠다.

 

백제시대에는 왕인박사가 건너가 한문(漢文)을 전수하고 논어를 가르쳐 문화에 끼친 공로가 너무 컸기 때문에 오늘 날에도 곳곳에 사당을 짓고 신사를 만들어 추앙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을사늑약과 한일강제병탄을 통하여 ‘조선’을 아예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만들려고 했다.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한글을 없애려고 했다. 한민족을 영원히 묻어버리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3.1운동을 비롯한 저항과 임시정부로 이어지는 끈질긴 항일운동은 우리 민족의 강인함을 만방에 떨쳤다. 광복 후 우리는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고 일본과의 협약으로 수교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일본은 군국산업의 첨병이었던 나가사키 군함도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신청서를 제출했다. 군함도는 원래 이름은 하시마였으나 멀리서 바라보면 일본군함 도사호와 꼭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軍艦島)라는 새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 섬은 무인도였으나 노천탄광이 발견되었다.

 

일본재벌 미스비시가 이를 사들여 탄광을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무려 1000m 깊이의 막장까지 파고 들어갔다. 이곳에 끌려온 한국인 징용자가 800여명이다. 나가사키 일대의 징용자는 무려 5만9천여 명인데 원폭투하 때 2만여 명이 피폭되었으며 1만여 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군함도에 끌려온 징용자들은 주먹밥 하나로 끼니를 때우며 모진 강제노동으로 피골이 상접했다.

 

그들이 막장에 써놓은 “배고프다” “어머니 아버지” “곧 죽을 것 같다”는 등의 피로 쓴 글씨들은 일본의 철저한 현장접근 불가방침으로 지금은 아무도 보지 못한다. 징용자의 탈출은 사실상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빠삐용은 있어 칠흑같이 어두운 밤중에 몰래 헤엄치다가 잡히면 모진 고문을 받고 죽어야 했다. 더구나 당연히 줘야할 일당조차 착취 당하는 노예로 살아야 했다.

 

이 군함도를 일본에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신청했을 때 한국과 중국 태국 등에서는 착취와 노예의 땅을 어떻게 문화유산이라고 하느냐고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유네스코에서는 “강제노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명시하는 조건으로 등록을 받아드렸다. 일본은 이를 까뭉개고 있다.

 

극일운동시민연합 황백현과 시인 백신종 목아박물관 박찬수 등과 함께 7월23일 군함도를 찾았을 때 어느 구석에서도 ‘강제노동’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굶주림과 고문으로 죽어간 200여 명의 징용자의 넋을 누가 위로할까. 등재조건을 어기고 배신한 군함도 유네스코는 취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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