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존립할 수 있는 근거는 흔히 국민과 영토 그리고 주권의 3요소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때에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중의 어느 것 하나라도 부족하거나 빠지면 국가로서의 존립근거를 잃어버리는 것이어서 명실상부한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우리의 오랜 역사를 더듬어보면 매우 어려운 고비를 겪어오면서도 그나마 국가로서의 체통을 유지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의 선조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은 대부분 중국과의 관계였다.

 

삼국시절 고구려가 왕성한 국력을 과시할 수 있었을 때는 지금 동북삼성으로 부르는 중국의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등 만주일대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전쟁을 수와 당을 상대로 치러야 했다. 그 뒤 점차 밀려 내려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현재의 한반도가 중국과의 국경을 이뤘다고 보면 대차(大差)가 없다.

 

중국은 끊임없이 우리나라를 침범해 왔으며 끝까지 대항하던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등 우리의 선조들이 세웠던 나라들은 마지막 국력이 쇠잔하면 할 수 없이 무릎을 꿇고 중국이 강요하는 치욕의 항복조건을 받아드려 겨우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치욕스런 항복이 유명한 삼전도(三田渡)항복이다. 삼전도는 송파나루다. 조선조 16대 왕이었던 인조는 광해군을 쫓아내고 이른바 인조반정을 통해서 왕위를 차지한 사람이었으나 청나라와의 불화로 그들의 침략을 받고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전했으나 식량이 떨어지자 할 수 없이 항복을 택한다.

 

청태종의 항복조건은 한 나라로서는 받아드리기 너무나 치욕스런 것이었다. 고두삼배(叩頭三拜). 수항단(受降檀)을 높이 쌓은 대 위에 청태종이 버티고 앉고 인조는 꿇어 엎드려 머리를 아홉 번 찍고 세 번 절하는 항복절차를 강요당한 것이다.

 

이 치욕의 흔적은 지금도 송파구 삼전도에 큰 비석으로 아로새겨져 남아 있다. 우리는 이를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 나라가 스스로 강건해지지 못하면 언제든지 외적의 침입에 굴복할 수박에 없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왕조는 이 치욕을 거울삼아 국력을 키우고 나라의 안보를 굳건하게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당파싸움에 영일(寧日)이 없다가 결국 일본의 침략을 받고 강요에 의한 한일합방으로 나라가 없어지는 민족적 수치를 당하고 만다.

 

36년의 긴 세월 우리는 나라 없는 설음 속에서도 끈질긴 독립운동으로 민족의 기개를 과시했으며 조국광복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임시정부의 투쟁과 독립군의 항전은 우리 역사를 빛나게 하는 자랑이지만 미·소의 줄다리기 끝에 조국은 남북으로 갈라서는 비극이 연출된다.

 

그리고 소련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일당의 남침으로 3년이 넘는 긴 세월 조국강토는 처참한 폐허로 변한다. 유엔군의 지원을 받은 우리 국군은 38선을 돌파하여 압록강까지 진격했으나 모택동의 지시를 받은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다시 밀려내려와 겨우 현재의 휴전선을 사이에 둔 정전협정이 맺어진다.

 

중공군의 개입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을 것이며 남북분단에 따른 이념갈등이나 북핵문제 등 복잡다기한 문제점들이 근본적으로 생겨나지 않았을 것은 당연하다.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일본에 있다. 일본의 강점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왕정을 계속하면서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점진적인 근대국가로 변모했을 것이며 봉건왕조의 부패를 뒤집어엎는 혁명이 일어나 새로운 개혁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것은 썩어빠진 중국왕조를 뒤엎은 신해혁명이 일어난 것을 보면 조선의 풍토는 반드시 이를 뒤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에 ‘만일’은 없다. 가정법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아주 미묘한 입장에 처해 있다. 전쟁의 고통과 피폐를 딛고 일어나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취하며 세계최빈국에서 10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코앞에 북한의 핵위협을 마주하고 있어 극히 불안한 처지다.

 

그들은 걸핏하면 천안함도 폭파하고 연평도도 포격한다. 설마 같은 민족을 향하여 핵폭탄을 터뜨릴까 안심하고 있다가는 언제 불바다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금할 수 없다. 북한의 원폭실험은 벌써 네 차례나 실행에 옮겨졌고 장거리 미사일은 수없이 쏴댔다. 미국과 일본이 더 전전긍긍이다. 우리나라는 50만 대군을 거느리고 있지만 북한은 100만이 넘는다. 최신무기와 막강한 공군력을 가지고 있지만 원자폭탄 하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것이 현실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보라. 가미가제와 관동군 100만이 있어봐야 원폭 한 방에 날아갔다. 핵탄두를 장착한 장거리 미사일을 북한에서 발사했을 때 그나마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어수단이 현재로서는 요격미사일 사드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를 고민에 빠뜨리고 있다.

 

사드 배치지역인 성주 군민들의 반대는 이해되지만 이를 ‘참외’와 연결시킨 어떤 선동가의 요설은 괌 현지실험에 쑥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6명의 초선국회의원이 사드반대의 기치를 내걸고 베이징을 방문한다고 해서 청와대까지 나섰다. 사드를 반대하더라도 중국을 종주국처럼 찾아가 그들의 의견을 청취할 하등의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원외교’라고 강변하는 것은 얄팍한 인기전술에 불과하다. 신판 삼전도다.

 

정부는 사드의 필요성을 국가안보 차원으로만 설득해야 한다. 전쟁 없는 나라보다 더 행복한 나라는 없다. 시리아의 난민을 귀감으로 삼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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