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날 것인지, 아니면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갈 것인지에 대한 연구와 논의는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존재는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남북통일의 가장 큰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입장에서 바라본 견해일 뿐 북한 측의 입장은 한국이 장애물이다. 통일에 관한 방안에서도 이승만정권은 ‘북진통일’을 첫 머리로 내세웠고, 박정희정권은 반공을 제일의로 삼아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북한 측에서는 구두선처럼 평화통일을 외치면서 적화통일을 꿈꾸고 있다.

이러한 이념갈등은 6.25이후 더욱 심화되어 무장간첩의 남파와 북파공작원의 활동이 계속되었다. 북파공작원에 대해서는 요즘 특수임무수행자로 특별법이 제정되어 그들의 국가를 위한 공로를 포상했다. 남파된 무장간첩은 바다와 뭍을 가리지 않고 공격의 날을 세웠으며, 그 중에서도 김신조 일당으로 부르는 124군 부대의 청와대 공격조는 국민들의 뇌리에 생생하다. 남북한 간의 체제경쟁은 무장공격에서 점차 경제전쟁으로 번진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이 남한보다 우월한 경제력을 보여줬지만 고도성장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한 한국은 일취월장 훌쩍 커버렸다.

수출 건설 증산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세우고 돌진하여 하루가 다르게 세계시장을 누볐으며 성공의 기틀을 잡았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저가상품을 만들어 수출의 길을 텄고, 넘쳐나는 실업자를 싼 임금으로 불러들인 건설업계는 대호황을 맞이한다. 노동시장 역시 저임금을 바탕으로 생산 공장을 일으켜 세우는 큰 공로를 세웠다. 이는 세계경제를 파고든 정책의 성공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한줌도 못되는 지하자원만 믿고 1차 산업에서 벗어나지 못한데다가 철저한 폐쇄정책으로 시대의 흐름인 개혁 개방을 외면했다.

러시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통해 개혁 개방에 나서고 중국 공산당이 과감하게 시장경제에 뛰어들어 ‘천지개벽’을 이루고 있는 마당에 북한정권은 지금까지도 요지부동으로 인민들을 옥죄고 있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 처지에 10만 군중을 아리랑 축전에 내모는 그들의 행태는 결국 50~300만의 인민이 굶어죽게 만드는 세기의 비극을 낳았다. 그러면서도 장거리 미사일과 핵 개발에 전력을 기울여 2차에 걸친 핵실험을 강행하기도 했다. 핵폭탄 두 번에 6억 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그들에게 돌아간 것은 유엔의 강력한 제재뿐이다.

기아에 허덕이는 인민들에게 핵실험할 돈으로 강냉이를 안겨줬으면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그것으로도 모자라 백령도에서 천안함을 폭침시켰다. 일부 종북 세력들이 이를 부인하려고 안달이 났지만 국제조사위원들의 견해와 뚜렷한 증거는 과학적으로 그들의 소행으로 단정 짓는데 조금도 무리가 없다. 이 사건 이전에 금강산에서 관광객을 사살하고도 사과 한 마디 없이 뻔뻔하기만 하다. 금강산 관광이 폐쇄되어 달러벌이를 못하게 되자 북한은 한국 소유 재산을 모조리 빼앗아버렸다. 국제적인 상도의도 모르는 불량배 짓거리다. 그런데 이번 여름에 대홍수가 났다. 신의주 일대가 가장 큰 피해지역이다.

남한 땅에도 ‘곤파스’ ‘말로’태풍이 훑어가 엄청난 재난을 입었다. 자연재해는 평소에 예비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피해를 최소한도로 줄일 수 있는 인프라가 되어 있지만 북한은 태부족이다. 홍수 뒤에는 먹을 것도 문제지만 전염병 창궐이 더 큰 문제다. 핵실험에 대한 제재에 선두인 미국에서도 약품을 보냈다. 그런데 북한 적십자사가 한적에 쌀과 중장비를 요구했다. 추석을 앞두고 이산가족 상봉도 제의했다. 그동안 면회소까지 압수한 그들이 다급하긴 한 모양이다. 이에 대해서 한적은 정부와의 조율을 거쳐 쌀 5천톤 등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10만 명이 100일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껄끄러웠던 남북관계가 수해지원을 계기로 해동되는 느낌이다. 국회에서는 여야 모두 환영일색이다. 다만 보수 우익인사 중에서는 쌀이 평양에 사는 당 간부 등 지배층들만 독점할 염려가 있으니까 하층 주민용으로 옥수수와 밀 등 잡곡을 지원해야 된다는 주장도 한다. 또 쌀이 군용으로 전용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여기서 우리 정부는 확고한 소신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기왕에 실어보내기로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옹졸하기만 하다. 다만 금강산 피살사건과 천안함 문제에 대한 사과와 미연방지 약속만은 어떤 형태로든지 받아내야만 한다.

우선 급한 불은 끄더라도 살인을 저지른 저들의 행태에 대해서 사과 한 마디 받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서는 아무 것도 안 된다. 제2의 개성공단이 서는 것은 하나도 급한 일이 아니다. 국민의 감정은 우리 정부가 남북긴장을 푸는데 신경을 쓰는 것도 좋지만 자존심을 지켜주기를 더 바란다. 따라서 인도적 견지에서 수해지원은 해주되 세계가 주시하는 사건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보여줘야만 한다. 원칙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진다. 정상회담과 6자회담 등으로 구렁이 담 넘기를 허용하면 이명박정부의 허약함만 노출시키고 만다.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정신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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