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희 기자


 채송화처럼

      김효선

 

노을 앞에서

꽃은 입을 닫았다

어디서든 뿌리내릴 수 있다고

큰소리 뻥뻥 치던 막내삼촌

식구 중에서는 제일 못났다고

할아버지께서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얼큰하게 취한 가로등 아래에서

순하디순한 눈빛은 숨겨지지 않았다

눈에 띄지 않는다고

꽃을 피우지 않는 건 아니라고

마당 한 구석에서 입을 닫았던

채송화가 조근조근 따진다

막내삼촌이 집을 떠나던 날

채송화 꽃씨를 한 주먹 따다

마당 한가운데 쏟아부었다

 

 

                                    -김효선 시집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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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중에서도 가장 작은 키의 채송화, 채송화는 꽃밭에서 맨 앞자리나 가장자리에서 피던 꽃이다. 잡초에 가까운 꽃, 심지 않아도 해마다 마당 틈새마다 돌틈 사이마다 고개 내밀던 생명력 질긴 난쟁이 꽃이다.

화자는 이러한 채송화와 막내삼촌의 패기를 일치시키며 그 연민의 마음을 시로 표현했다.

아무도 눈여겨보거나 고개 숙여 들여다보지 않는 미운 오리새끼 같은,

소외된 오늘날 청년들의 자화상 같기도 하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어버린 서글픈 현실이다.

청년 실업자와 알바인생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채송화의 씩씩한 저력을 수혈해 주고픈 시인의 마음이 음미할수록 찡하다.

순하디 순한 청년들의 눈빛이 점점 사납게 충혈되어가는 이 시대에 화자는 채송화 꽃씨 같은 격려의 마음을 한웅큼씩 뿌려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원색적으로 눈에 띄어야만 꽃은 아니다. 비록 키 작고 화려하진 않아도 열심히 저마다 땀 흘리는 채송화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척박해져가는 이 땅에도 희망이 있는 것이리라.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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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 대정읍 출신

2004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 『서른다섯 개의 삐걱거림』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현 제주대학교. 제주관광대학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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