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이민숙

 

토마토는 붉게 동그랗다

수박은 초록으로 동그랗다

나팔꽃 나팔 주둥이는 분홍으로 동그랗다

나팔꽃에 입 맞추는 네 입술은

고요히 동그랗다

구름이랑 보름달은 뭉게뭉게 동그랗다

쥐눈이콩은

새알보다 더 콩 만하게 동그랗다

강물은 살짝 떠올리는 물수제비는

날아갈듯 온몸으로 동그랗다

엄마의 정수리에서 대가족을 봉양했던 또아리는

철철이 누런 가난으로 동그랗다

남북으로 왔다 갔다 하는 탁구공은

콩닥콩닥 대책도 없이 동그랗다

바다 한가운데에 묻힌 아이들의 눈동자가

가만히 있어서 처절참담 동그랗다

스스로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동그라미

보듬어서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할 동그라미

뾰족할 수 없어 기어이 동그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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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나 기자


이민숙 시집『 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랗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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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열매들은 원형이다. 세상을 끌어가는 모든 바퀴들도 둥글다.

해도 달도 꽃들도, 세상의 환한 것들은 둥글둥글 착하다.

화자는 둥근 것들이 이끌어가는 세상을 동글동글 노래한다.

모든 선함의 형태가 있다면 바로 곡선의 동그라미가 아닐까?

침몰하는 세월호안에서 동그란 눈망울의 천진한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 그대로 가만히 있다가 처절참담하게 수장되고 말았다.

동그라미들은 굴러갈 뿐 스스로 혼자선 서기 어렵다. 둥근 몸들 서로서로 기대고 보듬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시인은 이 땅의 동그라미들에게 살아갈 방도로 제시한다.

각 세우고 모나고 뿔 달린 것들은 서로를 찌르기만 할 뿐, 세상을 이끌어갈 수 없다.

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래지는 착한 세상을 꿈꾸어 본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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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출생

1998년 사람의 깊이 창간호에 작품 발표하며 활동 시작.

시집 / 『나비 그리는 여자』 『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랗다』

현, 샘뿔인문학연구소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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