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의 부끄러운 선공후사
 
친목계든 한인회든 나라든 여러 사람을 이끌어 나가려면 ‘선공후사(先公後私)’를 금과옥조로 삼아야 한다. 공변될 공(公)은 물건을 둘로 나누는 모양의 팔(八, 나눌 分의 원형) 밑에 물건을 팔로 감싸 안는 모양을 그린 내 것 사(厶)가 붙은 것으로서 ‘내 것을 나누다’라는 의미, 즉 타인을 위해 내 것을 나누고 희생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벼 화(禾)에 사(厶)가 붙은 사사로울 사(私)는 볏단을 팔로 감싸 안는 것 즉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을 말한다. 친목계원 모임을 다른 사람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짜장면집에서만 연다든지, 한인사회 대표한답시고 고향 군수자리 하나 공천 받으려고 본국 정치인판이나 기웃거리고, 국가 경제발전을 핑계 삼아 자기고향 뒷산 깎아 공단 만들면서 특정 계층만 편든다면 리더가 아니라 동네 양아치 두목으로 전락하고 만다. 

‘선공후사’를 실천하려면 욕을 먹고 손해를 보는 것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원조 ‘선공후사’로 일컬어지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조나라의 인상여가 그랬다. 인상여는 환관 심부름꾼 출신이었으나 조나라의 보물 화씨벽을 강탈하려고 억지를 부리는 진나라 소공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 하루아침에 상경이 된 인물, 대장군 염파가 “출신이 미천한 인상여의 밑에 있을 수 없다”고 인상여를 만나기만 하면 반드시 욕을 보이겠다고 이를 갈자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조회에도 나가지 않았고 어쩌다 길에서 마주칠 때면 옆길로 빠져 도망치곤 했다. 이를 주변사람들이 부끄러이 여기자 인상여는 말한다.

나는 진나라 왕을 꾸짖었던 사람인데 어찌 염파를 두려워하겠느냐?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략하지 못하는 것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인데, 지금 두 사람이 싸운다면 둘 다 온전하지 못할 것인 바, 내가 염파를 피하는 것은 국가의 위급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수는 나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그 말을 전해들은 염파가 부끄러이 여겨 맨살을 드러낸 채 가시나무를 짊어지고 인상여의 집 문 앞에서 사죄했다는 이야기가 사마천의 ‘사기’ 염파·인상여 열전에 전한다. 

개성공단이 아버지 정주영이 소떼몰이 방북으로 남북협력의 물꼬를 트고 형 정몽헌 전 현대아산 그룹 회장이 자살해서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이 공단 직원 억류와 관련 정부 측에 연일 폐쇄·철수 등 강경대응을 주문하여 눈길을 끈다.

엊그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배석한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단 개성공단 패쇄 선언을 하고 철수부터 하라”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 데 이어 20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도 “기존의 남북사업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인질로 시행된다면 이보다 더 큰 모순은 없다”면서 또 다시 공단폐쇄와 철수를 주장하고 나섰다. 왜? 보수정당의 대권주자로서 보수층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부담 때문일 거라는 게 중론, 남북화해 반대 세력 눈에는 정권을 향한 충정의 선공후사로 비쳐지겠지만, 민족통합을 원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권력을 거머쥐기 위해 아버지 유훈마저도 저버리는 불효막심한 ‘선사후공’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것을 본인은 모르는 듯하다.

실제로 정 전 명예회장과 함께 남북대화의 물꼬를 텄던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자기 아버지의 정신적 유산은 물려받지 않고 재산만 물려받았느냐?”고 비꼬기도 했다. 

정몽준 의원의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북한을 달래든 윽박지르든 어떻게 해서든 통합할 의지는 보이지 않고 분단을 고착화하려는 것도 못마땅하거니와, 남북대화 지지 세력을 설득하고 포용하지 못하는 당파적 안목이 한심하고, 보수층을 의식하더라도 할 말은 해가면서 반대파를 포용하는 통합의 정치를 외면하고 오로지 정권을 잡기 위해 반대세력을 무조건 적대시하고 있음에 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북사업을 주도하다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자살한 형님 보기 부끄럽지 않은가? 대한민국에 동과 서, 남과 북,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통합하기 위해 기꺼이 욕을 얻어먹고 손해 보는 선공후사는 없나?

<채수경 / 뉴욕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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