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서울시내 불고기 전문 체인점 불고기브라더스 광화문점 메뉴판에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 만들기에 함께 한다'는 안내 문구와 함께 관련 신설 메뉴가 적혀있다. 불고기브라더는 2인분에 5만9천800원, 3인분에 8만6천900원인 '스키야키 불고기 세트'를 출시했으며 1인당 3만원 이하 메뉴에는 '김영란'이라고 적힌 원형 마크를 붙였다.    

[중앙뉴스=신주영기자]김영란법 시행을 하루 앞두고 곳곳에서 '마지막 식사' 자리가 마련됐다.

 

27일 점심 서울 광화문 일대의 호텔 등 일부 고급 식당은 평소보다 많은 손님으로 붐볐다.

김영란법 시행 전 마지막 점심을 먹기 위해 고급 식당을 찾는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롯데호텔서울의 중식당과 일식당은 이날 점심 예약이 거의 다 찼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중식당과 일식당 예약이 평상시보다 많이 늘었다"며 "한식당은 평상시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더 플라자 호텔도 "뷔페를 제외한 호텔 레스토랑 좌석이 최근 2주 동안 90% 이상 찼다"며 "평상시에는 손님이 그보다 적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날 많은 공직자나 언론인 등은 점심·저녁 약속이 꽉 차 있었다. 정부서울청사 주변에 있는 식당 역시 대부분 예약이 '풀'(full)이었다.

 

정부부처의 공보실이나 대변인실은 이날만은 출입 기자단과 식사를 하며 김영란법이 몰고 올 사회적인 파장에 관심을 기울였다.

 

한 정부부처의 공직자는 "김영란법 전에 마지막 식사를 한다는 생각으로 출입기자와 점심·저녁 약속을 잡았다"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이렇게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자리는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국회의원들도 김영란법 시행 전으로 식사 모임을 앞당겼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27일 이후 예정된 식사 모임을 앞당겼으며 골프 모임은 지난 주말까지 다 소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진석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는 김치찌개 오찬을 하거나 출입기자들과도 '청국장 점심'을 하는 등 며칠 전부터 김영란법 '예행연습'을 해왔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들도 10월에 예정된 약속을 앞당겼으며 28일 이후 저녁 약속을 잡는 데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27일까지 기자들과 오찬 만찬 간담회를 잇달아 잡기도 했으며 더민주는 최근 김영란법을 주도한 김기식 전 의원이 강사로 나서서 전체 의원들을 상대로 교육하며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국민의당은 김영란법 관련 지침을 의원실에 돌렸다.

김영란법 시행은 국회의 국정감사 풍경도 바꿔놓았다.

 

통상 국정감사가 정부부처 등 피감기관에서 열리면 국회의원은 물론 보좌진 등 관계자들에게도 구내식당 등에서 식사가 무료로 제공됐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원회가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국정감사 기간 피감기관이 국회의원 등에게 3만원 이내의 식사 제공조차 허용되지 않는다고 최근 밝히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김영란법 시행을 이틀 앞둔 지난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오전 질의를 마치고 외교부 1층 구내식당에서 '더치페이'로 점심을 해결했다.

 

가격은 1인당 1만원으로 외통위 행정실이 의원·보좌관 등 국정감사단 85명분 식대 85만원을 별도로 계산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도 소속 의원과 보조관들은 국회사무처 예산으로 점심과 저녁을 해결했다.

 

다른 정부부처 국감 장소에서도 그동안 관행처럼 제공되던 커피와 다과, 과일 등이 자취를 감췄다.

 

공무원들도 '몸조심'에 들어갔다. 아예 법 시행 이후로는 외부인사들과 약속을 잡지 않은 공무원들이 대부분이다.

 

법 시행 전인 26일과 27일에 '마지막 약속'을 '겹치기'로 잡은 이들도 눈에 띈다.

경제부처의 한 공무원은 "최근에 김영란법 시행 전에 얼굴이나 보자는 사람들이 많아 저녁을 먹고 다른 약속에도 잠깐 들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공무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세종청사 인근 식당들은 이미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직접적 타격이 현실화되고 있다. 식당 종업원 해고는 물론 임금을 줄이는 사례도 속속 목격되고 있다.

 

세종청사 인근의 한 복집 관계자는 "김영란법에 따라 메뉴 가격을 3만원 이하로 조정했다"면서 "비용을 줄이려면 어쩔 수 없이 종업원 임금을 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우 고깃집은 아예 종업원 수를 줄였다.

고위공직자 등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김영란법이 아직 일부에 불과하지만 사회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형국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세종청사의 한 공무원은 "법의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과연 법을 제안한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이나 법을 통과시킨 국회의원 등이 법 시행에 따른 각종 문제까지 고려했는지 의문이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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