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한나 기자


 

안녕, 엄마

김선향

 

 

  엄마, 그거 알아? 난 노점상에서 떨이로 사 온 귤 대신 고디바초콜릿이 먹고 싶었어. 단화를 신고 온종일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 같은 여자, 생리휴가도 없이 서서 피 흘리는 가장은 사절이야. 내가 엄마를 고를 수 있다면 킬힐을 신고 거릴 활보하는 여자를 골랐을거야. 노동이라곤 모르는, 죄의식이라곤 티끌만큼도 없는 그런 여자 말야. 애초에 엄마 자궁은 비정규직처럼 허술했어. 하수도처럼 어둡고 비좁았지. 어쩌지? 의사 선생님이 계류 유산이라고 말하자 안도하는 엄마 얼굴 다 봤어. 내가 이해할게. 난 반 근 고깃덩어리, 신경쓰지 마, 내가 위로해줄게, 수시로 도려내는 엄마 발바닥의 굳은살이 금세 차오르듯 엄만 늘 슬프니까, 눈빛사막달저수지생인손디즈니랜드카니발꽃그늘몽고반점편도…  다만 이런 것들이 조금, 아주 조금 궁금했을 뿐야, 엄마 안녕, 쿨하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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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저조해지는 출산율 때문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육아복지 정책도 나름 시행하고 있으나 혼인 연령은 점점 높아만 가고 비정규직과 성차별의 그늘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위 시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모순된 일면을 태어나지도 못한 태아의 시선을 빌려 고발하고 있다. 시인의 따스하고 깊은 눈이 끌어낸 가슴 축축해지는 시이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에 쫓겨 신비로운 생명의 잉태가 기쁨과 축하가 아닌 불행한 일로 느껴진다면 이보다 더 통탄스럽고 슬픈 일이 어디 있으랴!

정치꾼들이 단골 공약 메뉴인 복지정책 실현은 어디까지 와있는지 묻고 싶다. 옛날보다 여성인권이 신장되어 점점 살기 좋아지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곤 하지만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최저임금도 못미치는 급여에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고 아이까지 맘대로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정치인들과 가진 자들은 알야야 한다. 풀뿌리까지 내려가 살피는 정치, 상생하는 기업, 배려하는 사회가 되지 않고서는 이 땅의 복지는 요원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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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향 시인/

충남 논산 출생. 충남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200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여자의 정면』

<사월>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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