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 구글

버려진 것들은 나무가 된다 

안영희

 

 

제 때 제 때 잡초를 매 주거나

가뭄철에 물 한 번 못주다가

뒤늦어 황황히 찾아들면

쑥갓도 들깨도 채소가 아니다

 

허리 나꿔채 뽑으려하자 벌커덩,

단숨에 내 몸뚱어리를 뒤로 동댕이질 친다

적의를 드러내며

 

더 없이 순하고 보드랍던 것은

기다림과 신뢰의 유효 기간이었다.

 

더는 나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말라 비틀렸으나 노여움 뜨거이 충전된 목숨은

비로소 정면(正面)이 되었노라고

응석을 떨 아무도 없는 세상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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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관조한 기다림의 미학이 은은한 향기로 다가오는 시다.

수년 전 우리 집 담벼락 틈새에 돋아난 오동나무가 내 키만큼 자라더니 안방 창문을 가릴 정도까지 자랐다. 지난 해에는 어쩔 수 없이 가지치기도 해주었다. 어디에서 버림받은 목숨이기에 콘크리트 틈 사이에 고달픈 생을 부려놓았을까? 몇 번 뽑아내려다 나자빠졌었다. 기다려주었더니 이렇게 자라나와 그늘을 주는 나무가 되다니...

살아오면서 나의 가치관은 어떤 기준이었을까? 사랑도 우정도 대인관계도 쓸모라는 잣대로 재며 살진 않았는지? 내안에 버려진 기다림과 원망이나 회한도 어느 날 커다란 나무가 되어 넓게 덮어줄 그늘을 만들 수 있으려나.

무심하게 과소평가했던 것들이 어느 날 커다란 비중감이 되어 나타날 때가 있다. 인생은 이래서 재미있는 건지도 모른다. 위 시를 다시 음미해보자. 화자가 인생의 어느 정점에서 그윽하게 내려다보는 삶의 진리 하나를 깨닫게 될 것이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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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희 시인 /

光州 광역시 출생

1990년 시집 등단

시집 / 『내 마음의 습지』 『가끔은 문 밖에서 바라볼 일이다』 『물빛 창 그늘을 사는 법』 『멀어지는 것은 아름답다』 『어쩌자고 제비꽃』

2005년 경인 미술관에서 『흙과 불로 빚은 詩』 도예 개인전 가짐

계간 <문예바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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