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신주영기자]대기업들의 감원 등 구조조정의 여파가 협력업체들로 번지면서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대기업들의 경우 희망퇴직 등의 방식으로 직원들에게 정든 직장을 떠나달라고 반강제로 요구한다는 소식이 연일 들린다.

 

그런데 일터를 잃고 생계가 막막한 처지인데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소속 근로자들이다. 이들의 실직은 '원래 인력 이동이 잦고, 고용이 불안하다'는 일반적인 편견을 근거로 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그래서인지 중소기업 구조조정 현황이나 통계는 대기업과 비교해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은 실정이다.

 

▲ 지난 10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이 사내에서 사측의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 신주영 기자

 

◇ 일감 부족에 중소기업 폐업·감원 확산

 

인천의 남동·부평·주안공단 입주업체는 올해 4월 8천38곳으로 1년 전(8천221곳)보다 183곳(2.2%) 줄었다.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것이다.

 

대부분 대기업 2·3차 협력업체인 이들 공단 근로자 수는 지난해 15만여 명에서 올해 8월 14만여 명으로 1만 명가량 감소했다.

 

한국지엠과 기아자동차 협력업체인 남동공단 A업체는 올해 매출이 작년 대비 30% 줄어 한숨을 짓고 있다. 50여 명에 달했던 직원도 20여 명까지 줄였다.

 

이 업체 대표는 "인천의 자동차 수출이 증가했다는 통계는 해외 공장에서 반제품 형태로 들여와 한국에서 조립·생산한 물량이 수출로 잡혔기 때문"이라며 "부품을 해외 현지에서 직접 조달하기 때문에 대기업 수출은 늘어도 영세한 국내 부품 제조업체 매출은 오히려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부평공단 아파트형 공장에서 반도체 금형을 생산하는 B업체의 작년 매출액은 3∼4년 전의 절반 수준이다. 36명이나 됐던 직원은 9명으로 대폭 줄었다. 잔업은 커녕 8시간 일할 물량도 없어 손을 놓고 있는 날이 많다.

 

B업체 대표는 "일이 없다 보니 동종업체들이 원가에 못 미쳐도 제품을 납품하는 '제살깎기' 경영을 하고 있다"며 "경영난 때문에 평생 동료로 생각했던 직원을 부득이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인천 동구에 있는 중장비 부품 납품업체인 C업체도 수주 물량이 줄어 지난해 월평균 4억9천만원이던 매출이 올해는 3억원으로 감소했다. 회사는 30명이던 직원을 20명으로 줄였다.

이러다 보니 업체들 사이에서는 '사업을 하느니 차라리 공단 부지를 분양받아 임대사업을 하는 편이 나을 정도'라는 인식까지 퍼지고 있다.

 

부산의 대표적인 자동차 부품업체인 D사도 감원을 고려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그동안 자동차부품업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업황을 보였지만, 지금은 감원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경영이 악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선 기자재업체인 E사는 "어려운 환경에도 가까스로 고용을 유지했으나, 업황이 단기간에 개선될 수 없어 내년에는 불가피하게 감원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 대기업 구조조정에 협력업체 '경영난·감원' 후폭풍

 

국내 산업 생태계를 보면 대기업의 실적 악화나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중소기업이 경영난과 감원으로 이어진다. 중소기업이 '협력업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의 1∼3차 도급을 맡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가령 올해 현대자동차 노조 파업으로 생산라인이 멈췄을 때 현대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5천여 개의 1∼3차 협력업체도 일손을 멈춰야 했다. 자동차 생산 공정은 재고를 최대한 줄이고자 완성차 생산에 맞춰 부품을 적기에 납품하는 방식(JIT·Just In Time)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조선업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현대중공업도 올해만 폐업한 하청업체가 약 40곳에 달한다.

조선 분야 중소기업의 경영난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빅3의 구조조정이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1천 명을 추가 감원하려고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으나, 신청자는 목표치의 절반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부서장을 통해 대상자 선별과 퇴직서 제출을 독려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사무직을 중심으로 1천여 명이 이미 희망퇴직했으며, 당분간 정년퇴직 등 자연감소분을 충원하지 않을 계획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STX조선해양은 사무직을 제외한 현장직 995명의 월급 20% 삭감과 인력 30%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현장직 345명을 줄이겠다는 목표 아래 현재 220명이 희망퇴직이나 아웃소싱 형태로 회사를 나갔다.

 

이 회사 협력사 100여 곳은 직원들에게 월급도 제때 주지 못해 직원 수가 3분의 1가량 줄었다.

 

김희수 창원조선기자재협회 회장은 "그나마 남은 협력업체 직원들도 농촌 일손돕기에 나가 일당을 받거나 보험을 해약하고 자녀 교육비를 줄이면서 하루하루 연명한다"고 호소했다.

현대중공업은 내년 상반기까지 전기전자시스템과 건설장비 사업 부문을 분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에 본사를 둔 포스코건설은 이달부터 포항 전체 직원 600여 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재벌닷컴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16년 반기 보고서상 별도기준 매출이 1조원 이상인 109개 상장사의 절반 가량인 54곳이 1년 전보다 직원을 줄였으며, 줄어든 인력은 총 5천284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 '중소기업 구조조정' 실태 파악 어려워…정책 지원·관심 대기업에 쏠려

 

대기업은 전체, 혹은 사업장 단위로 구조조정이나 분사 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회사를 떠나는 직원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전국의 산업단지는 지난해 2분기 1천94곳에서 올해 2분기 1천137곳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이들 공단에서 일하는 근로자도 209만9천934명에서 213만1천246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지속해서 증가하는 농공단지나 첨단산단을 포함한 전국 산업단지 현황을 집계한 것으로, 침체일로의 특정 산업이나 고용 동향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실제로 조선과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한 울산·미포국가산단의 고용은 지난해 12월 10만4천943명에서 올해 8월 10만542명으로 8개월 만에 4천400명이 줄었다.

 

같은 기간 기계나 석유화학 등 제조업체가 밀집한 경북 구미국가산단 근로자도 5천여 명 줄었으며, 휴대전화 부품업체가 많이 입주해 있는 경기 안산 반월공단은 1만4천여 명이나 급감했다. 이들 공단의 고용 감소는 중소기업 인력 감축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그런데도 중소기업들의 구조조정 규모는 추산 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울산상공회의소 관계자는 28일 "중소기업들의 구조조정 움직임이 있다는 말은 많이 들리는데, 구체적인 실태를 확인하기는 어렵다"면서 "대기업처럼 명예퇴직 규모 등을 드러내지 않고, 대개는 은밀히 진행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기업활력법에 따라 공급과잉 업종의 중소기업이 세제나 자금 지원을 받으려고 구조조정 계획을 정부에 제출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비공개로 진행된다"면서 "정부 정책이나 관심이 대기업에 집중될 뿐, 중소기업 구조조정 실태는 소외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의 한 관계자도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일방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면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고발이 들어오지만, 노조가 없는 업체는 그마저도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 25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조선업종노조연대, 조선하청노동자 대량해고 저지 대책회의 관계자들이 구조조정 저지와 고용보장을 위한 원·하청노동자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신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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