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마처럼 얽혔다는 말이 실감날 만큼 정국은 ‘최순실’이라는 이름 세자에 꼬이고 꼬였다. 박근혜는 방사능에 쬐인 거북이처럼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딱한 처지에 놓였다. 일국의 대통령이 한낱 아녀자 한 사람에 붙들려 이다지도 처참한 꼴을 노정한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처음 보는 일이다.

 

그것도 고고하기 짝이 없는 품위를 자랑하던 대통령이 어쩌다가 이다지도 험한 지경으로 떨어졌을까. 흔히 귀신에 씌웠다는 말이 있지만 최순실 귀신에 씌우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 총선 때부터 조짐은 있었다. 여당의 공천을 둘러싼 잡음은 아무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국민의 신뢰감을 잃었고 여소야대라는 최악의 결론을 도출했다.

 

낙천자들은 그 배경에 최순실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로 최순실의 악명은 점점 높아만 간다. 그나마 전격적으로 귀국하여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국정개입의 진상은 머지않아 밝혀질 것이다. 최순실은 지금 ‘마녀’다. 어떤 변명도, 어떤 몸부림도 진실에 상관없이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 어렵다.

 

맹목이 되어 질타하는 국민의 여론은 한참 시간이 지나가야 잠잠해지는 코스로 진행한다. 그렇다고 정치를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추문에 대한 엄정한 수사는 검찰의 몫이다. 절대중립의 입장에서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며 정치는 정치대로 움직여야만 한다.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개헌이다. 개헌은 시대정신이다. 30년 묵은 현행헌법에 대해서는 이미 시효가 끝났다는 평가를 내린지 오래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동의하는 사항이다. 다만 대통령의 태도가 문제였다. 박근혜는 대선 전부터 대통령 중임제를 선호하는 발언을 해왔는데 취임 후에 생각이 달라졌다. 개헌을 블랙홀에 비유하며 말도 꺼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20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정세균의장은 공공연히 개헌문제를 제안했다. 19대 국회에서도 개헌전도사로 불리던 이재오가 개헌국민운동본부를 차리고 나섰지만 찻잔 속의 미풍에 그쳤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회의장의 개헌제의는 다르다. 야당은 물론이요 여당일부에서도 호응한다. 청와대는 정무수석이 나서서 “아직 개헌 얘기를 꺼낼 때가 아니다”고 하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현행헌법은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말로 개헌을 제의하고 나선 것이다.

 

개헌은 국회와 대통령이 발의하고 국민투표로 마무리된다. 국회의결을 거치려면 산 넘고 물을 건너야 한다. 여야의 이해가 대립해 있는 마당에 수많은 난관을 넘지 않으면 개헌은 호락호락 넘어가기 어렵다. 특히 권력구조를 둘러싼 의원각자의 이해와 정당의 정책결정이 변수다.

 

국회에서 개헌특위조차 쉽게 구성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동안 여야 개헌지지 세력은 정세균을 중심으로 개헌특위 구성에 거의 합의한 상태로 예산국회의 국정감사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대통령의 개헌의지를 듣게 된 셈이다.

 

국회와 대통령이 공동 발의하여 개헌은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에 마무리되고 내년 대선은 새로운 헌법 하에 치러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로 최순실 사건이 터졌다. 대통령의 개헌표명이 최순실 사건을 덮기 위한 포석 아니냐하는 야당의 의구심이 있었지만 시대정신으로 정착한 개헌을 그까짓 스캔들에 함몰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헌법 개정은 나라의 근간을 정하는 일이다.

 

제왕적 대통령이 나오지 않도록 하려면 대통령중심제를 손질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미국 같은 나라는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온갖 제도적 장치로 권력의 남용을 제한한다. 세계제일의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민생법률 하나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서 직접 교섭에 나설 정도로 의회의 제약이 촘촘하다.

 

한국에서는 이게 어렵다. 대통령이라면 뭣이고 안 되는 일이 없는 것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풍토 하에서는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만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통령의 위기상황을 겪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도 온갖 역풍에 시달렸지만 이처럼 치사한 꼴을 노정한 일은 없다. 그렇다고 손을 놔버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개헌을 하려면 우선 국회가 개헌특위를 구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직도 대통령중심제를 선호하는 의원들이 다수다. 그러나 여기에 매달리면 개헌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특위에서 걸러야 한다.

 

대통령제나 내각책임제나 나라의 전통과 국민의 심기를 살펴 합의가 이뤄져야만 후유증이 없다. 이원집정부제는 한 번도 실시해보지 않은 분야로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직선제’를 쟁취했던 6월 항쟁의 정신을 되살리는 정서적 안정성을 지키는 방법일 수도 있다.

 

어떤 개헌이 되었든 간에 이번 국회에서 내년도 대선 전까지 개헌을 완료하는 것이 급선무다. 만약 내각책임제로 권력구조가 합의된다면 말썽 많은 대통령선거는 치르지 않아도 된다. 현행 국회에서 간선으로 대통령을 뽑고 여야의 합종연횡을 통해서 국정책임자로 총리를 선출하면 된다.

 

모든 것이 애국심으로 뭉쳐져야만 올바른 정치제도를 구성하는 지름길이 된다. 최순실 추문에만 매달려 국가의 백년대계를 외면해서는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청맹과니 나라로 전락한다. 현재의 사태를 국가비상 시국으로 인식하고 건전한 정치의식을 되살려 개헌으로 매진하는 슬기를 보여주는 것이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그나마 국민에게 봉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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