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오늘 여야 없다"..참석자 곳곳서 러브샷
 
 
이명박 대통령은 28일 국회 의장단과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단, 국회 상임위원장단을 청와대로 초청, `화합의 만찬' 회동을 가졌다.

   오후 6시30분부터 2시간여 진행된 만찬은 그동안 각종 쟁점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해온 여야가 모처럼 국정 동반자로서 우의를 다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단, 여야 원내대표가 청와대에서 회동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만찬장에 들어선 이 대통령은 박희태 국회의장과 정의화 홍재형 부의장 등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테이블에 차려진 과일과 야채를 보며 "술안주 같다", "요즘은 여기도 막걸리를 많이 마신다"고 웃으며 말하고, "오늘은 여당도, 야당도 없다"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유도했다.

   이 대통령이 인사말을 통해 국정운영을 위한 여야의 초당적 협력을 당부하자 곧바로 여야 인사들의 건배사가 이어졌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갑자기 청와대 주인이 바뀐 것 같아 기분이 얼떨떨하다"며 "역시 국회의원을 지낸 대통령이라 친국회적 모습도 보이고, 좀 다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덕담한 뒤 "정기국회가 본격 시작됐는데 국리민복 증진을 위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토론하고 연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민주당 박지원 비대위 대표는 "이렇게 초대해준 대통령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대통령께서 국운융성을 위해 수고하는 바를 우리 모두 알고 있으며 여야 협력 관계를 더욱 잘 유지하고 소통하겠다"고 강조하고, 건배사 말미에 `민주당을 위하여'를 외쳤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도 "대통령께서 자주 이런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꼭 지키시길 바란다"며 "전적으로 (야당의) 파트너를 잘 만나 좋은 소리를 많이 듣고 있는데 연말까지 좋은 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상생국회를 위하여'라고 건배를 제의했다.



   한나라당 소속의 허태열 정무위원장은 최근 지방행정개편 특별법의 국회 통과에 대해 "당파를 떠나 행정체제를 고칠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하고, 참전용사 처우 개선의 필요성을 건의했다.

   남경필 외교통일통상위원장은 민주당 박 대표를 향해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경험이 있는 만큼 여당 입장을 잘 이해해 국회가 잘 돌아간다"고 치켜세운 뒤 공석인 외교부 장관의 조속한 임명을 이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민주당 소속 우윤근 법사위원장은 "여야 모두 좋은 친구가 돼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가길 희망한다"고 했고, 같은 당의 김성순 환경노동위원장은 "고용노동부로 부처 명칭을 바꾼 것은 참 잘하신 일"이라며 고용부문 예산과 주부 일자리 창출, 대.중소기업 및 정규직 비정규직간 임금격차 해소 등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요청했다.



   중식으로 차려진 이날 만찬에서는 와인과 막걸리가 몇 잔씩 돌았다. 특히 이 대통령은 테이블을 일일이 돌며 참석자들과 잔을 부딪혔고 곳곳에서 팔짱을 끼고 '러브샷'을 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만찬에는 국회 쪽에서 국회의장단과 여야 원내대표, 국회 상임위원장 14명이 참석했고, 정부측에서는 이재오 특임장관, 청와대에서는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수석 전원이 자리를 함께 했다.

   만찬이 정리될 무렵 박 대표는 발언권을 신청, "청와대 비서실장 할 때는 제가 접대를 했지만 오늘은 야당 원내대표 자격으로 왔으니 좀 썰렁한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떡 본김에 제사 지낸다고.."라며 깨알같이 적어온 메모를 꺼내 4대강 사업 조정, 대북 쌀 지원 등 6개 요구사항을 10분 가량 읽어내려갔다.

   만찬에 앞서 민주당 참석자들 간에 사전 조율한 건의사항을 정리해 작심하고 얘기한 것이라고 한다.

박 대표는 자신의 발언 후 만찬장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자 머쓱한 듯 "썰렁했죠"라며 자리에 앉았다.



   이에 옆에 앉아 있던 한나라당 김 원내대표가 "원내대표간 논의할 사항을 대통령께 얘기하느냐"며 `가벼운' 제지에 나서자 박 대표는 "몇 번 얘기해도 하나도 안 들어주니 그렇다"고 응수했다.

   그러나 이내 김 원내대표가 박 대표의 `메모광 스타일'을 언급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닮았다"고 말하자 박 대표가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워낙 오래 모시다 보니.."라고 화답하면서 이내 분위기가 풀렸다.

   이 대통령은 박 대표의 요구사항에 대해 즉답은 피했지만 "야당이 여당 때의 일을 잊어버리거나 여당이 야당 때의 경험을 무시하면 갈등이 생길 수 있다"면서 "여야가 전략적으로 반대할 수는 있지만 국가 핵심 사항에 대해선 생각을 같이 할 수 있다고 본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도 여당 하다 야당 하고 있고 한나라당도 야당 하다 여당하는 것 아니냐. 이러한 특수한 정치상황 속에 있기 때문에 서로 입장을 이해해달라"며 "여당은 야당 했을 때를, 야당은 여당 했을 때를 역지사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리한 요구를 하면 내가 들어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야당의 이해와 협조를 구했다.



   그러면서 "(야당의) 건설적 이야기는 전폭적으로 수용하겠지만 때로는 건의한다고 해서 다 된다는 보장도 없다"며 "여당에게 정권을 맡겼으면 잘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야당의) 도리가 아니냐"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또 "전 해외에 나가면 여야 가리지 않고 여당, 야당 편을 다 들고 있으며 한국 야당이 참 열심히 한다고 칭찬도 많이 한다"며 "여야를 크게 보면 하나이고, 서로 대화하면 오해도 풀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여성가족부에 `청소년' 명칭을 넣어 부처 명칭을 바꾸자는 민주당 소속 최영희 여성가족위원장의 제안에는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폭탄주'를 소재로 한 대화도 오갔다.



   한나라당 소속의 이주영 예결특위 위원장이 "술한잔 하다 보니 폭탄주가 생각난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을 때 우즈베키스탄 대통령과 폭탄주를 나눠 마셨는데 다음날 술이 덜 깨서 화장실에도 같이 가자고 하더라"며 "폭탄주 문화를 수출하고 왔다"고 농담을 던졌다.

   이 대통령은 "술이 한잔 되니 혈압이 오른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특임장관과 청와대 정무수석, 대통령 실장 모두 3선 이상의 중진 의원들이니 이 분들의 국회경험이 앞으로의 소통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여야간 소통을 강조한 뒤 "앞으로 자주 만나 얘기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로 만찬을 정리했다.

   이 대통령은 또 "돈만 있고 인격이 문제인 사람은 존경받지 못하듯, 국가간 관계에서도 대한민국이 돈만 번다는 소리를 들으면 다른 나라의 존경을 받을 수 없다"며 "최선을 다해 임기를 마치려고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헤드 테이블에는 국회 의장단과 여야 원내대표단, 임태희 대통령 비서실장 등과 함께 이재오 특임장관도 자리를 함께 했으나 이 장관은 특별한 발언 없이 `낮은 자세'를 취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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