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수주 문학상 수상자 하수현 시인의 시 안개풍경

 

▲     © 최한나 기자


안개 풍경 

    하수현

 

 

허공에서 갈기 휘날리며 진군하는

농밀한 안개의 독(毒)에 부두의 철제난간이 삭아들고

태평양여관 네온사인은 성급하게 점등되었네

사거리에 문을 연 왕대폿집 주인여자의

화석 같은 얼굴도 잠시 은은해지고

목로의 빈 잔마다 새 대포알이 장전되기 전에는

안개 알갱이들이 빼곡 들어앉아 있네

 

목로와 안개의 틈새로 한물간 어느 엘레지 낮게 새나오네

물결 옆으로 드러누운 흐린 거리에

잘 도열한 가로등의 실루엣, 등(燈) 꼭대기마다

점을 찍듯이 앉은 가난한 갈매기 내 청춘의 새여,

안개는 지치고 지친 나를 잡고는

“그대, 이제 어디로 가려는가?” 하고 묻네

혹은 내 가슴을 치네

내 어쩔 줄 몰라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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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묘미 중 하나는 독자 자신의 심상의 눈으로 다양하게 조명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1연만 보면 딱 요즘의 정국(시국)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야말로 안개 시국이다. 화자는 이제 현실을 떠나버리고 싶다는 것일까? 아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정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피곤한 청춘의 모서리를 어느 언덕엔가 부벼보고 싶은마음과 함께...

  젊은이들은 젊음에 지쳐서 중년들은 힘겨워서 노년들은 서글퍼서, 저마다 휴식을 찾는다. 오늘 이 시를 감상하는 나 역시 오늘은 어느 부둣가 허름한 선술집에 앉아 대포잔이나 비우면서 헛웃음이나 허공에 뿜어보고 싶어진다.

  집단 홧병 증세가 온 나라에 스멀거리는 요즘, 우린 모두 정답을 알고 있으며 또한 이 안개는 일정한 시간이 흘러야 걷힌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기다림과 인고의 희생이 아프고 괴로운 것이다.  화자가 ‘어쩔 줄 몰라 그 자리에 서있기만 하네’ 라고 표현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다시 체념 아닌 희망의 손을 내미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개의 속성은 태양이 떠오르면 속절없이 스러지는 것이다. 안개와 같은 젊은 날의 방황도 이 시절의 목쉰 아픔도 붉은 태양이 떠오르면 걷히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은 시간, 세월 따라 치유되며 제자릴 찾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가난한 갈매기 내 청춘의 새는 지금 어느 하늘을 날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초겨울 문턱에서...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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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현 시인/

1961년 경북 포항 출생.

1985년 월간 <한국문학> 으로 등단.

김만중문학상, 경북예술상, 수주문학상 외.

시집 『나의 연인은 레몬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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