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장관 딸의 특채로 인해서 우리 사회는 ‘공정’이 화두로 떠올랐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공정하지 못한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소리쳤고 전국의 모든 언론과 정당, 시민단체들이 이에 호응했다. 이처럼 습관처럼 되풀이되는 일회성 캠페인으로 거대한 공정의 금자탑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나마 부패한 공직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효과는 있었다고 본다. 따지고 보면 이 사회는 불공정 투성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체육 등 곳곳에서 불공정 시비는 있어왔다.

치열한 논쟁을 거쳐 어느 한 쪽으로 쏠림현상이 일어나면 슬그머니 막은 내려가지만 이에 따른 후유증이 만만찮았던 기억이 우리를 괴롭힌다. 특히 정치분야는 공정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된다. 선거를 통해서 자웅을 결정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여·야와 국민 사이에 괴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집권층은 이를 십분 이용하려들고 야당과 비판층은 결사저항을 시도한다. 자유당정권이 집권 12년차에 부정선거를 자행했다가 4.19혁명으로 징벌된 것은 그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경제분야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이 심심찮게 논의된다. 근자에도 대기업이 중소기업 분야에 파고든다고 해서 말썽이 나고 있다. 과거에는 중소기업 영역에 대기업이 들어올 수 없도록 탄탄한 규제조항이 엄존했는데 어느 사이엔지 폐지되었다. 돈 버는데는 염치없기 놀부보다 더 한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중소기업 분야에 파고든다. 학생들의 코 묻은 돈에 눈독을 들인 학원사업, 시설과 기술을 내세우고 두부공장 차리기, 구멍가게를 좀 먹는 대형마트 진출, 중소기업을 위한 홈쇼핑을 대기업이 지배주주로 등장하는 일 등등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불공정 사례가 너무나 많다.

사회부문에서는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PD들의 횡포는 은근한 곳에서 이뤄지는 것이어서 일반국민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일이다. 그렇지만 오랜 시일을 두고 내밀하게 진행되면서 수많은 불공정 사례가 가장 많이 양산된다. 가수나 탈렌트가 되기 위해서 몸을 바쳐야 하는 성상납의 예는 인간성을 말살하는 치욕이다. 돈으로 좌지우지되는 것 역시 실력을 외면한 불공정이다. 극본 하나를 채택받기 위해서 재능있는 작가들이 기성작가나 연출자의 눈에 들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하지만 최후의 승리자는 언제나 ‘그들뿐’이다.

체육계의 비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선수선발에서부터 코치나 감독의 노골적인 돈 요구가 있어온 것이 관례라는 이름으로 뒷전에 붙여졌다. 심판들이 매수되어 페어플레이를 하고도 벌점을 먹어야 하는 스포츠팀이 수두룩했다. 소금 먹은 놈이 물 쓴다는 말이 있다. 돈의 유혹과 이를 뿌리치지 못하는 풍토에서는 훌륭한 선수가 나올 수 없다. 한 때 프로복싱에서 마피아들이 도박내기를 하고 한 쪽 선수에게 질 것을 강요한 일도 있었다. 이건 숫제 범죄행위다. 교육계만은 깨끗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교육감이 되기 위해서 엄청난 자금을 쓰고 이를 회수하려고 온갖 인사비리를 저질렀던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시험지를 몰래 빼내어 수험생들에게 팔아먹은 파렴치한도 나왔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좌우한다는 교육자들이 저지르는 불공정 사례가 어디 이뿐이겠는가. 이런 선생님, 저런 교육자 밑에서 눈에 불을 켜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만 허망한 희생자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놀랄만한 불공정 사례의 백미가 튀어나왔다. 이른바 김정일정권의 3대세습이다. 세습이란 사전적 의미로 풀이하면 “그 집에 딸린 신분 재산 작위 업무 등을 대대로 물려받는 일”이다.

흔히 하는 말로 대물림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주가 죽으면서 자식에게 재산과 경영업무 그리고 회사직책을 물려주는 일이라면 아무도 나서서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놓을 이유가 없다. 이는 상속법에 의해서 정당한 상속세만 납부하면 합법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 나라의 정권을 통째로 물려줄 때 생긴다. 그것도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라면 그들의 관습과 법에 따라 세습을 허용한다. 영국같은 나라가 좋은 예다. 그러나 명색이 공화국이라는 체제를 표방한 나라에서 할아버지-아버지-손자로 이어지는 대물림을 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대만의 장개석과 싱가폴 이광요 아들이 대권을 잡았지만 후광을 받았을 뿐 직접 세습한 것은 아니다. 북한은 신판 왕조부활이다. 서른 살도 안 되는 김정은이 김정일을 따라 중국을 거푸 방문하여 눈도장을 찍은 것은 옛날 세자책봉 때처럼 중국천자의 윤허를 받는 꼴이다. 민족적 수치와 분노를 느끼게 한다. 이에 대해서 일부 진보정당과 좌파 시민단체는 꿀 먹은 벙어리다. 이런 태도가 친북 종북세력으로 매도되는 이유다. 우리 정부와 국민은 3대세습을 묵인하거나 용인하면 안 된다. 뚜렷한 역사인식으로 세습을 규탄하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김일성과 김정일의 직책을 나열하는 언론부터 광정되어야 한다. 역사의 인물에는 존칭을 붙이지 않는 관행도 모르는가. 행여 정부와 언론이 ‘김정은대장’으로 호칭할까 한마디 덧붙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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