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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 화

 

 

새로 생긴 대형마트는

거대한 상선(商船) 같이 떠 있다

주말이면 수백 대의 차들이 실려 있는 주차장

건너편에 입점 반대 대책위원회가 꾸려졌었다

붉고 검은 글자의 돛이 펄럭거리는 천막 한 척

물길도 없고 정박지도 아닌 노상에 떠 있었다

신대륙을 찾고자 한 적도 없고

늘 그 자리인 날들로 출발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 사이 눈이 내리고

추운 상권으로는 손님이 줄고

따뜻한 진열과 따뜻한 시식코너가 있는 쇼핑이 붐볐다

 

꽹과리 소리가 녹슬만하면 울리고

호객 소리보다 구호가 울려 퍼지고

신호등이 바뀌고 자동차 경적이 울리고

검은 저녁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얼음이 얼고

 

바람을 타지 못한 돛이 내려지고

천막이 철거되고

대형마트 입구는 여전히 정체되고 있을 뿐이다

빈 간판들이 내려지고

수로 같던 골목은 꽝꽝 얼어간다

곧 공약이 난무하는 선거철이 얼음을 깨고 지나갈 것이다

 

 

                                          -이서화 시집 『굴절을 읽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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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의 역사는 약육강식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득 지금 이 시대는 맘몬 공룡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형 프렌차이즈 공룡기업들의 급부상은 골목 상권까지 먹어치우는 등 이미 우리 사회의 문제로 현재 진행형이다. 화자는 이 실태를 대형마트와 노점상으로 대비해서 보여준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말처럼 자본주의의 음과 양을 대변하는 말이 또 있으랴. 위 시를 감상하다보면 가난한 소상인들이 재벌 상권에 먹히는 현실을 염려하는 시인의 슬픈 눈망울을 읽을 수 있다.

정치인들은 이 문제를 공약으로 또 내걸 것이다. 국민들은 또 속아주고 속아주다 목이 터지고 피가 맺힌다. 

  온 국민이 가슴을 앓는 겨울이 가고 있다. ‘돈도 능력이다. 돈 없는 너네 부모를 원망해라’ 고 한 철없는 그 소녀의 말이 오늘따라 가슴을 때린다. 퇴근길에 노점에서 밀감 한 보따리 사들고 길 건너 대형마트 휘황한 불빛을 바라보았다. 부나비처럼 모여드는 저 무리중 하나로 나 역시 저런 쇼핑을 가끔은 즐기지 않던가? 잠시 부끄럽고 머릿속이 멍해진다. 내가 사든 과일 한 봉지가 무얼 해결하겠는가?

  하루 빨리 이 난파를 이겨내고 나라가 안정과 상생의 닻을 내리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아울러 첫 시집을 발간한 이서화 시인의 문운을 빌며 그녀의 시가 가는 길을 설레임으로 지켜보고 싶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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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화 시인 /

강원 영월 출생

2008년 <시로여는세상> 등단

강원작가회의 회원

2016 강원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시집 『굴절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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