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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돌

민구식

 

 

고향 빈집에 들렸다

샘가에 뒹굴고 있는 허리 부러진 숫돌

제 몸 갈아낸 돌의 나이테

얼마나 많은 날을 세웠던가

얼마나 단단한 고집들을 구슬렸던가

강한 것은 연한 것이 구스르고

연한 것은 강한 것이 구스르는

연마의 법칙

아버지 지문 돌가루에 흘러가고

어머니 잔소리가 슴베만 남아

난도질당하는 샘가

무딘 날이 있다

대장간 갓 나온 검은 칼도

숫돌의 다스림을 거치지 않고는

제 구실을 못하는 엇배기

숫돌의 날숨을 받아 새파랗게 세워졌을 때

세상 겁 없이 쳐내어 길을 내는

우물가 숫돌 나이테

 

 

                  - 민구식 시집 『가랑잎 통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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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우리집 우물가, 움푹 패인 숫돌이 생각난다. 집안의 칼이며 가위 낫 등을 갈아주던 우리 아버지의 구부정한 등허리도 떠오른다.

 아버지 휜 허리 같이 둥글게 패이며 닳아가던 숫돌!

시인이 떠올린 아버지의 이미지도 그렇게 패이다 못해 결국 부러져버리는 숫돌의 이미지다. 화자 역시 아버지라는 위치에서 숫돌의 길을 가고 있음에 애틋함으로 써내려간 사부곡으로 읽혀진다.

이만큼 내가 이 사회의 일원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 역시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희생과 채찍질이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다시 한 번 뭉클하게 깨닫는다. 하여 무뎌가는 마음 반짝반짝 다스려 빛내줄 숫돌 하나 그려본다. 나아가 녹슬고 무더가는 이 시대를 바로 세워줄 숫돌 같은 일꾼도 간절히 소망해본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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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식 시인 /

충북 음성 출생

2009년 <조선문학> 등단

시집 / 『가랑잎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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