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규격 사업장마다 제각각, 위험 방치하는 국가 행정

[중앙뉴스=홍성완 기자] 지난 1일 삼성중공업에서 크레인이 충돌하면서 6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특히, 근로자의 날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면서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크레인 사고의 경우 대부분이 신호수의 미흡함으로 일어나는 충돌 사고가 빈번하다는 지적이다.

 

크레인의 경우 체계적인 관리나 표준 규격 등이 정해져 있지 않고, 꼭 필요한 신호수들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도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현장     © 연합뉴스


▲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25명 넘는 사상자 발생

 

지난 1일 6명의 사망사고를 낸 삼성중공업의 크레인 충돌 사고와 관련해 삼성중공업은 2일 크레인 신호수와 운전수 간 신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삼성중공업은 거제 사고 현장을 공개하면서 “주행하는 골리앗 크레인과 타워 크레인이 충돌해 발생한 사고로 골리앗 크레인 주행 범위 안에 타워 크레인이 있었다”고 밝혔다.

 

삼성중공업에 따르면 매뉴얼상 두 크레인이 같이 움직일 수 있게 돼 있으며, 이 때 상호 신호를 통해 타워크레인이 지지대를 아래로 눌러 골리앗이 지나가도록 돼 있다.

 

그러나 사고 당시에는 골리앗 크레인 밑으로 붐대(지지대)를 끌고 와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으면서 두 크레인이 부딪친 것으로 파악됐다.

 

직원 피해가 많았던 것은 휴식시간이 겹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중공업 측은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사원들을 배려해 휴식시간을 진행하는데 오후 2시 50분께 되니까 미리 나와서 화장실 가고 담배 피우고 하느라 한 공간에 사원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며 "그 위에는 크레인이 없었는데 붐대가 튕기면서 작업자들이 쉬고 있는 쪽으로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원래는 작업장 안에 (휴식 공간을) 못 두게 돼 있는데 5층, 10층 높이에서 바닥까지 내려가면 힘드니까 편의를 위해 화장실 등을 설치해줬다"고 밝혔다.

 

▲ 신호수와 크레인 기사 간 신호교환 오류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충돌이 일어난 골리앗 크레인과 타워크레인은 작업장에서 이동할 때 차이가 있다. 

 

골리앗 크레인은 레일을 따라 앞뒤로 움직이면서 중량물을 옮기고, 타워 크레인은 크레인 자체는 움직이지 않고 수평으로 길게 뻗은 구조물이 360도 회전하면서 중량물을 운반한다.

 

사고가 발생한 타워 크레인은 중량물을 매달아 운반하는 길다란 부분이 크게 휘어진 채 해양플랜트에 걸쳐져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삼성중공업은 이번 사고가 앞뒤로 이동하던 골리앗 크레인이 근처에 있던 타워 크레인을 건드려 타워 크레인이 휘어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는 크레인 신호수와 운전수 간 신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크레인 기사들은 무전기로 들리는 신호수 지시에 따라 크레인을 작동하거나 정지시킨다. 골리앗 크레인이 움직인다는 무전이 들리면 타워 크레인이 작동을 멈추거나 골리앗 크레인 작동범위 밖으로 타워 크레인 붐대를 빼내는 식이다.

 

현장에 있던 작업자들 간에 다소 엇갈리는 부분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삼성중공업 측에 따르면, 우선 골리앗 주 신호수와 보조 신호수가 “골리앗이 이동해야 하니 붐대를 낮춰 달라”고 타워 크레인 기사에게 전달했고, 타워 크레인 기사는 이를 타워크레인 신호수에게 전달했다. 무전을 받은 타워크레인 신호수는 ”고철통을 올리는 작업을 먼저한 뒤 붐대를 낮추겠다“고 답신했다.

 

경찰은 이 때 연락을 받은 타워 크레인 기사가 골리앗 측에 작업 뒤 붐대를 낮추겠다는 무전을 해야 했으나, 이를 누락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아울러 무전이 누락됐더라도 골리앗 신호수들이 현장을 보고 타워 붐대가 낮춰지지 않은 부분을 알려 정지 지시를 내렸어야 했으나 그마저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 크레인 사고, 알려진 것보다 빈번해

 

크레인은 대형 건설 현장이나 조선소 등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비다. 

 

그러나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거나 안전에 대한 표준 기준이 없기 때문에 대형사고에 늘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중공업을 비롯한 토목·건설사들의 크레인 사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 지난 4월 대림건설이 시공하는 울산 공장 신설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을 조립하는 과정 중 마스트(지주대)가 균형을 잃고 전도하면서 하부에 설치된 유류배관 위로 낙하해 폭발이 발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연합뉴스

지난 4월 대림건설이 시공하는 울산 공장 신설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을 조립하는 과정 중 마스트(지주대)가 균형을 잃고 전도하면서 하부에 설치된 유류배관 위로 낙하해 폭발이 발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하는 등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원인은 크레인 설치 안전작업기준을 미준수한 것으로 잠정 결론났다.

 

B건설사는 충북 지역 공사 도중 마스트(지주대)를 해체 한 뒤, 이를 옮기는 과정에서 충돌사고가 발생했다. 다행이 인명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으나,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사고였다.

 

당시 B건설사의 현장에 있던 관계자는 “사고의 원인은 삼성중공업과 마찬가지로 신호수가 제대로 된 무전을 하지 않아 일어난 사고였다”며 “스윙(회전)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기계와 충돌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타워크레인은 특히 조립이나 해체 시 타워크레인을 들 수 있는 또 다른 대형 크레인이 들어오는 데, 공간이 보통 협소하다 보니 상당한 위험에 노출된다”며 “스윙(이동)하는 과정에서 충돌사고가 많이 난다”고 밝혔다.

 

지난 2014년 4월에도 경기 수원시 광교신도시 공사현장에서 크레인이 넘어져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난 바 있다.

 

이 사고는 건물 외벽에 설치된 ‘ㄱ’자형 크레인의 위치를 높이는 코핑작업 도중에 수평 방향의 붐대가 32층 높이 옥상으로 꺾여 넘어지면서 발생했다.

 

당시 시공을 맡은 건설사는 대우건설로, 이 사고로 인해 현장소장이 바뀌고, 이로 인한 내부고발 등으로 홍역을 앓은 바 있다.

 

노동조합 측은 사고 위험성을 몇 차례나 경고했지만 대우건설이 묵살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크레인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위험에 노출된 상태에서 일어난다.

 

특히, 신호수들이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경우가 많고, 아울러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거나 안전관리를 위한 표준기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건설사 관계자는 “크레인 장비는 우리나라의 경우 제작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대부분 일본이나 독일 등 외국에서 수입하는데, 반입할 때 기준으로 크레인 사용기한을 규정한다”며 “따라서 외국에서 부식이 진행된 장비가 들어와도 반입일을 기준으로 사용하다 보니 노후된 장비를 쓰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대형건설사들은 제작일을 기준으로 5~10년으로 한도를 정하거나 비파괴 검사 등을 실시해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상대적으로 규모나 재원 마련이 어려운 중견·중소업체들은 이들 대형건설사들에 통과되지 않는 노후된 장비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노후된 장비는 부식 등으로 인해 강도가 약해지게 되면 워낙 대형 장비이다 보니 부러질 경우 대형사고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때문에 기존에 있는 크레인 장비들에 대한 점검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제품을 수입할 때, 제조년도에 대한 좀 더 까다로운 검증이 필요하다.

 

표준 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고, 업체마다 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크레인사고 위험에 더 크게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신호수에 대한 관리가 미흡한 것도 문제”라며 “크레인의 경우 전체적으로 현장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 신호를 보내줘야 하는데, 보통 신호수는 현장 작업자들 중 아무나 쓰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다 보니 경험이 없는 신호수들이 상황파악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이에 대한 전문교육기관도 없고, 내부교육에 의존하다 보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크레인 자체에 대한 관리가 부족한 실정이다 보니, 안전문제는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안전에서 끝없이 밀려나는 협력사 직원들

 

삼성중공업의 크레인 사고와 관련해 작업장 안에서의 안정 규정 위반 의혹도 제기된다. 특히, 1일 사고가 난 삼성중공업 사고 피해자는 대부분이 하청노동자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사고로 숨진 근로자 6명은 모두 협력업체 직원으로 밝혀졌으며, 나머지 중경상자 대부분도 협력업체 근로자였다.

 

근로자의 날이었던 이날 삼성중공업 임직원은 현장 필수 인력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출근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휴일에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많은 근로자들을 무리하게 현장에 동원했다가 이 같은 참변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인도시기를 맞추기 위한 사측 요구를 협력업체 직원들이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이런 의혹에 대한 조사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 수사본부는 지난 4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고, 이를 통해 확보한 자료 분석에 본격 착수했다.

 

수사본부는 앞서 실시한 현장 조사 및 합동감식과 압수수색한 자료를 분석하면서 관련자 소환 조사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은 수사본부의 사고 원인 규명이 완전히 끝난 뒤 중대 재해가 발생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 대한 특별감독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원청과 하청업체들의 안전 규정 준수 여부와 근로기준법 위반 여부를 철저히 살핀다는 방침이다.

▲ 지난 2일 삼성중공업 김효섭 거제조선소장이 크레인 전도로 사망·부상자가 발생한 삼성중공업 안전사고에 대한 브리핑을 마치고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 ‘사내하도급 전면 금지’ 추진할까?

 

이번 사고 피해자가 모두 하청업체 근로자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당시 대선 후보들이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은 사고 직후 하도급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었단 지난 4일 “상시적인 유해·위험 직업의 사내 하도급은 전면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KBS에서 방송된 대선 방송연설에서 “산업현장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을 제정해 원청 사업주에게도 산업안전의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3일 경남 거제에 내려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충돌사고 당시 숨진 희생자 유가족과 부상자들을 만난 이야기를 언급한 문 대통령은 “이번 희생은 700만 비정규직 노동자와 하청업체 노동자의 아픔”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지 않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노동부장관 후보 중 한명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대선 후보였던 지난 4일 “하청 노동자의 죽음의 행렬은 더 이상 안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심 후보는 문 대통령보다 앞서 사고가 일어난 직후 바로 사고 유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삼성중공업에 있다”면서 “이제 하청 노동자의 죽음의 행렬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근본적인 안전대책 필요할 때

 

삼성중공업은 4일 공식 발표를 통해 이번 크레인 충돌사고를 계기로 외부기관에 정기적으로 안전진단을 맡기는 등 ‘안전한 사업장’을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중공업은 내달 중 박대영 대표가 ‘크레인 사고 수습 노력 및 안전한 작업장 구현을 위한 로드맵’을 직접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로드맵에는 외부 전문기관의 안전점검 정례화, 외부 전문기관과 공동으로 크레인 작업의 신호체계 재구축, 크레인 충돌방지시스템 개발 등 근본적인 사고방지대책이 담길 예정이다.

 

아울러 안전전담 조직을 글로벌 선진업체 수준으로 확대·강화하고 글로벌 안전 전문가를 엽입한다는 계획도 포함된다.

 

이와 함께 안전 선진회사를 벤치마킹해 회사의 안전관리 쳬게를 전면 재정비하는 한편, 임직원의 안전의식을 향상시킬 방안도 강구하기로 했다.

 

삼성중공업은 또 이와는 별도로 사고 직후부터 조선소 전체를 대상으로 외부 전문기관의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전진단에는 한국안전기술지원단, 한국안전환경과학원 등 노동부 인증을 받은 4개 안전보건진단기관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안전기술협회는 조선소 크레인에 대한 특별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 삼성중공업의 설명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크레인 사고가 삼성중공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나서서 크레인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근본적인 로드맵과 안전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국가적으로 크레인 운용실태에 대한 전수적인 조사 후 안전관리 로드맵을 마련해야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대선 기간 동안 약속했던 ‘하청업체 근로자의 안전사고에 대한 원청에 책임 부과’도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하청업체의 경우 원청 근로자에 비해 작업장의 위험 요인을 제대로 모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건비 부담 탓에 작업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다 보면 안전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거나, 번거롭다는 이유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작업을 강행하는 경우도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사고 피해가 하청업체에게 집중되는 상황에서 이처럼 원청에 대한 책임을 부과할 경우 관리감독이 더욱 철저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아울러 크레인의 경우 안전신호수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 등을 통해 새로운 직업을 창출하고, 이를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하는 기준법을 마련한다면 일자리 창출과 안전관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

 

한편, 지난 6일 삼성중공업은 크레인 사고 발생 6일만에 일부 작업장에 대한 부분작업을 재개했다.

 

삼성중공업은 “고용노동부가 사고 후 직접 현장점검에 나서 일부 작업장에 위험 요인에 제거된 것으로 판단해 작업을 재개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지난 1일 고용노동부로부터 작업중지 명령은 받은 삼성중공업은 앞으로 안전진단을 통해 위험 요인이 제거된 것으로 판단될 경우 작업중지 해제를 순차적으로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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