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한나 기자


 

여름밤 이야기

윤일균

 

고향집 앞 우물가

향나무 너머 개울엔

밤이면 물 끼얹는

엄니가 있다

재산이라

자르지 못한 긴 머리

애벌 두벌 감아 내리는 엄니가 있다

히야히야 물 끼얹는 엄니가 있다

앙당그리며 물 끼얹는 엄니가 있다

시시로 물리던 젖가슴 부끄러워

싸한 달빛 돌아앉은 여인이 있다

 

 

고향집 앞 우물가

향나무 너머 개울엔

별 헤이며 망을 보는 아비가 있다

히야히야 물소리에 소름 돋고

곰탁곰탁 물소리에 마음 설레어

가슴 얼붙은 아비가 있다

싸한 비누 냄새 온몸이 아려

남근으로 굳어버린 사내가 있다

석달만에 돌아온 아비가 있다

------------------

   우리들 가슴 속에는 수줍은 보물창고 하나씩 숨어있다.

위 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한 소년의 동화, 혹은 가슴 한 켠에 간직해온 흑백 사진이다. 아득히 멀어서 갈 수 없고 그립기만 한 별나라가 한여름 밤 어느 별자리에서 빛난다.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도 수줍지만 뜨거웠던 로멘스가 있었고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짠하게 느끼게 한다.

눈물까지 맺히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대다수가 그리도 사생활에만 열중할 수 없는 고달픈 삶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년은 지금 시인이 되어 그 옛날의 젊었던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뛰어넘어 동질감을 시로 잘 나타내 주었다. 초로의 아비가 되어있는 자신의 건조한 모습이 아마도 안타까운지도 모른다. 그 옛날 한여름밤의 이런 은밀한 풍경을 잠시 엿볼 수 있는 것도 시 한편이 주는 묘미가 아닌가싶다.

[최한나]

-------------------

윤일균 시인 /

경기 용인 출생

2003년 시 전문지 <시경> 등단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