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돈은 언제나 한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요즘 한창 고구마를 수확하는 농촌의 모습을 보면 정치인과 돈도 저렇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될 때가 많다. 덮여있는 흙을 조금만 걷어내면 고구마 줄기가 나온다. 크게 힘들일 필요도 없이 줄기가닥을 끌어올리면 매달려 있는 고구마들이 줄줄이 달아 올라온다. 어린애들은 농촌체험을 한답시고 시골에 내려가 고구마를 캐라고 하면 제일 신나는 일로 여길 수밖에 없다.

한 줄기에 달려있는 고구마들이 쭉 따라 올라오니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흙을 툭툭 털어내고 깨끗이 씻기만 하면 그대로 한 입 넙죽 넣어도 입속을 맴도는 고구마의 향이 그렇게 싱그러울 수가 없다. 이 맛에 농사를 짓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치인의 행태 속에서 우리는 항상 고구마 줄기처럼 연결되어 있는 정치자금과의 연결고리를 보게 된다.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돈이 들게 마련이다.

정치를 하기 위한 수많은 일 중에 돈 들어가는 일이 어디 하나 둘이겠는가. 더구나 선거를 치러야 하는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들의 씀씀이는 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다.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남몰래 써야 하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다. 조직은 별로 표시도 나지 않으면서 많은 돈이 들어간다. 이를 조달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여기저기 손을 벌리고 다닌다. 한마디로 거지 노릇을 해서라도 조직은 살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다음 선거를 기약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 홍보선전비용이 추가된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조직보다 홍보선전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미지로 살고 죽기 때문이다. 주로 TV매체를 이용한 홍보에 주력하기 때문에 전파비에 쏟아 붓는 돈이 천문학전인 숫자다. 얼마 전 실시된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휴랫패커드의 회장출신은 1천5백만달러를 퍼붓고도 낙선했다. 같은 돈을 쓰더라도 이미지 형성이 제대로 안 되면 돈만 날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은 그동안 주로 공천헌금에 크게 기댔다. 과거에는 대기업에서 베풀어주는 시혜를 기대하였으나 정치자금법 규정이 까다로워지면서 기업으로부터의 자금수수는 매우 어려워졌다. 기업 측으로 보면 공식적인 로비를 통한 정치자금의 수수보다는 개별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뒷구멍 거래에 더 익숙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치자금을 주고받는 일은 공식적인 것에서 비공식적으로 옮겨간 셈이다.

정치자금법을 만들 때에는 기업을 보호하고 투명한 자금사용을 목적으로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음성적인 거래를 부축인 셈이 된다. 과거에는 정치인이 후원회를 열어 공개적으로 자금을 모금했으나 지금은 오직 우편을 통해서 소액모금만이 가능하다. 기업은 아예 정치자금 기부가 엄격히 금지되며 개인도 5백만 원 이상은 안 된다. 이런 규제 속에서 큰돈이 필요한 정치인들은 편법을 쓰게 된다.

이것은 주로 기업이나 단체로부터 자금을 받을 때 이용하는 방법인데 사원이나 회원들을 대거 동원하여 10만원 짜리 소액기부자로 둔갑시킨다. 인기가 높은 정치인은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소액기부가 폭주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처럼 연출을 하는 것이다. 그것도 어떤 문제점을 놓고 대가성이 있는 기부를 하면 바로 범법행위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알지도 못하는 사원과 회원들이 등장하는 경우 곧 정치자금법 위반이 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동원하여 자금을 모으는 일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되었을 때 그 정치인은 자칫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위험을 무릅쓰고서도 이를 강행하는 것은 사정당국에서 얼른 잡아내기 힘들다는 것도 있지만 그동안 그런 관행이 이어져 내려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번에 말썽을 빚고 있는 이른바 청목회 사건은 바로 그러한 관행적 범죄의 전형이다. 청원경찰법 개정을 둘러싼 로비는 치밀하고 끈질겼다.

주로 행안위 소속 의원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여기에 관련되었다. 정보를 수집한 검찰이 청목회 간부들을 대거 구속하고 돈의 흐름을 추적하다보니 결국 국회의원들의 줄기가 끌어올려진 셈이다. 법 통과 시점을 전후하여 집중적으로 소액다수의 기부가 이뤄졌으니 누가 봐도 입법로비라고 지탄할 만하다. 문제는 로비자금을 의원 측에서 먼저 요구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점이다. 주는 것을 받기만 해도 안 되는 판에 아예 손을 내밀다니 낯이 뜨겁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변명은 해외 토픽감이다. 법률에 위반되는 줄 알고 있었기에 감추려고 했을 것이고 실제로 아무런 죄의식도 없어 보인다. 그러기에 여야가 집단적으로 검찰수사에 반발하고 있는 것 아닌가. 입법을 담당하고 있는 국회의원은 자기들이 만든 법을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지켜야 한다. 스스로 법을 어기는 것은 이 나라의 기강을 흩트리는 일이 된다. 검찰소환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이용하여 대통령영부인의 로비의혹을 폭로하는 수준이라면 검찰에 대해서도 매도하는 태도는 엄금사항이다. 집단의 힘을 이용하여 정치적으로 풀려고 하지 않는 떳떳한 모습으로 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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