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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꽃
안원찬
이 층 창밖으로 연 삼 일
국숫발처럼 쏟아져 내리는 비
아스팔트 위에 연한 물꽃 피우고 있다
작년 여름에는 밥주발보다 큰 꽃을 피우더니
오늘은 간장 종지보다 작은 꽃을 피운다
주차된 버스 지붕 위에도
현관 지붕 위에도
가로등 갓 위에도
잔디밭 돌 위에도
우산 위에도
경비원 구두코에도
소리 없이 피자마자
소리 없이 져버리는
- 안원찬 시집 『귀가 운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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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관찰하는 시선의 온도에 따라 결정된다. 시가 탄생하는 과정도 어떤 시선이 따라간 이미지의 경로다. 그 낯설기까지 한 정서가 포착되는 순간의 꽃이다.
감미로운 빗소리도 며칠 계속되면 지겨운 느낌이 드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다. 하지만 시인의 눈은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을 발견해낸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꽃을 피우기 위해 한 평생을 소진하는지도 모른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있다면 제 몸 던져 산화하는 순간의 물꽃도 있는 것, 시인은 방울방울 낙하하는 빗물을 보며 물꽃 하나 피워내기 위해 몸 던지는 생명체를 본 것이다. 하나의 강을 이루며 바다로 흘러가야하는 숙명의 가련하거나 비장함의 꽃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인 것,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한 순간 저리 반짝 스러지는 꽃의 순간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오늘 가을 햇살 한 점마저 소중하게 끌어안는다. 저마다 짊어진 어떤 멍에마저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꽃다움 아닐까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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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원찬 시인/
강원도 홍천 출생
2013년 <시에티카> 를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지금 그 곳은 정전이 아니다』 『가슴에 이 가슴에』 『귀가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