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당이 존재한다. 현대적 의미의 정당은 아니더라도 고대부터 정당은 있어 왔다. 나라를 다스리는데 각자 생각이 다를 때 비교적 같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떼로 뭉치는 것이 정당이다.

 

때로는 생각이 다를지라도 같은 정파를 향성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정치적 이해타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삼국시절을 비롯하여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정파정당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온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특히 조선왕조는 극심한 당파싸움이 이어져 오면서 온갖 사화(士禍)를 일으켰다. 체계적인 사법체제를 갖추지 않은 왕의 일인치하였기 때문에 모함과 고변(告變)으로 상대편을 멸문지화로 몰고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왕권유지에 민감했던 왕조는 변란을 일으키려 한다.”

 

반심(叛心)을 품었다는 단 한 마디의 고변에 즉각 반응했다. 왕의 추포명령만 떨어지면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처절한 고문을 통하여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엄포로 친국(親鞫)을 끝냈다.

 

연루제는 극성스러울 정도로 활발하여 역심을 품었던 것으로 결론나면 삼족을 멸하는 엄벌을 면치 못했다. 이에 연루되면 왕의 형제나 왕후의 부모일지라도 죽음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세종대왕도 영의정이었던 자신의 장인을 처형하지 않을 수 없는 붕당싸움의 극치를 몸소 겪어야 했다. 북한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고사포로 처형한 것도 권력싸움의 일종이다.

 

왕조가 사라지고 공화국으로 변신한 한국은 어떤가. 광복직후 왜놈들의 강제통치를 받으며 항일투쟁을 전개해 왔던 수많은 애국지사들은 모처럼 맞이한 정치적 자유를 만끽하며 너도나도 정당설립에 나섰다.

 

미군정 하였기 때문에 사상적 자유도 완전 보장될 때여서 공식집계를 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정당이 난립했다. 일설에는 400여개의 정당이 등록되었다고 하는데 사실상 1인정당도 부지기수였다. 공산당도 당당히 공식정당으로 활동할 수 있었으며 정강정책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정당들이 대부분이었다.

 

지나친 난립으로 사회가 어지러워지고 좌우익싸움이 물리적으로 진전하자 미군정에서는 우후죽순처럼 뚫고나온 정당들을 정비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공산계열의 정당은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 생명력을 가진 정당은 국내외 활동을 통하여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 포진한 한민당 대동단 독립당 등 손가락에 꼽힐 정도에 불과했으며 이들은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선전(善戰)한다.

 

정부수립 후에는 정권을 잡은 이승만대통령이 자기를 도와준 한민당을 박차버리고 자유당을 창설하여 집권12년 동안 여당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승만에게 발로 채인 한민당은 야당으로 변신하여 4.19혁명 후에는 민주당정권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뼛속부터 분열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던 정당 관계자들은 정권을 잡아 놓고도 구파와 신파가 갈려 결국 민주당과 신민당으로 갈라선다. 자유당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학생들의 숭고한 민주이념을 신주단지처럼 떠받들어 모셔야할 사람들이 무능과 분열로 스스로를 망조(亡兆)에 들게 한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16쿠데타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전광석화와 같은 전법으로 민주당 장면정권을 도륙 냈다. 막강한 군권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좁쌀 같은 몇 사람의 쿠데타 지도부를 타격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정권을 내준 집권자가 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한국 민주주의의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군부정권은 중앙정보부를 창설하여 폭압정치의 앞잡이로 키웠으며 민정이양의 명분을 내세워 민주공화당을 만들어 국회를 장악한다.

 

야당도 흩어진 조각을 주어모아 신민당으로 전열을 가다듬는다. 그러나 여당은 독재의 하수인으로 거수기 노릇에 충실했으며 야당은 밥 대신 죽이라는 비굴함으로 현상유지에 급급하는 모습을 노정했다. 사꾸라 논쟁이 퍼진 이유다.

 

유신 이후 야당은 존재가치가 없었다. 12인제 선거구를 교묘하게 이용한 유신정권은 말 잘 듣는 야당과의 동반당선이라는 꿀맛을 보여주면서 유신정우회를 만들어 3분의1의 국회의원을 이들로 채웠다. 유정회 국회의원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인사가 임기3년의 절반짜리 국회의원이 되는 것인데 지금은 이들도 전직 국회의원이라고 헌정회원이다.

 

10.26이후 신군부는 민정당을 만들어 2중대라는 치욕적인 별칭을 가진 민한당과 쌍두마차로 운영된다. 민주인사들이 대부분 정치규제에 묶여있을 때 김영삼은 단식투쟁을 전개하고 김상현 등은 민추협과 신한민주당 창설에 적극적으로 나서 12대 선거에서 약진한다.

 

이들은 여세를 몰아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는 6월 항쟁을 벌이며 결국 민정당과 신한민주당 양당체제로 정리된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민의당이 호남을 석권하면서 4당체제가 되었다.

 

박근혜 탄핵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로 정권을 장악한 문재인정부는 더불어민주당이 제1, 자유한국당이 제2, 국민의당이 제3당 그리고 한국당에서 뛰쳐나온 바른정당이 제4당이다. 그러나 바른정당은 김무성 등이 탈당하여 사실상 와해상태다.

 

국민의당 역시 대선패배 이후 안철수의 리더십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어 머리 큰 호남출신들의 향배는 이미 민주당 쪽을 넘실대는 것으로 보인다.

 

정당은 이념의 집합이기에 진보성향의 민주당과 보수기치를 내건 한국당이 양대 축을 설정하고 이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개헌문제가 변수가 될 수 있다.

 

전 대 열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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