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주연상과 최우수 작품상에 역사 영화, 나문희 최고 영예, 진선규 감격의 남우조연상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청룡영화상이 <아이캔스피크> 나문희 배우에게 여우주연상을, <택시운전사> 송강호 배우에게 남우주연상을 주는 등 역사의 아픔을 조명한 두 작품에 올해 최고의 영화라는 평가를 내렸다.

 

날씨가 추워진 만큼 청룡의 계절이 다가왔다. 2017년 한국 영화계를 되짚어 보는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 시상식 청룡영화상이 25일 20시 40분 서울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렸다.

 

▲ 사회를 맡은 김혜수 배우와 이선균 배우. 사진=SBS     

 

처음으로 청룡에서 사회를 보게 된 이선균 배우는 “아내(배우 전혜진)의 대리 수상을 하기 위해 지난해 처음 와봤는데 이렇게 올해 다시 사회자로 함께 하게 돼서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대종상, 백상예술대상과 더불어 국내 3대 영화 시상식으로 인정받는 청룡은 가장 공정하게 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품성과 영화적 가치만 있다면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과감하게 상을 준다. 

 

과거 2014년에 영화 <한공주>의 천우희 배우가 당시 신인 배우급임에도 불구하고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올해 심사는 2016년 10월 7일부터 2017년 10월 3일까지 개봉한 한국 영화를 대상으로 영화 전문가들의 설문조사와 네티즌 투표 결과를 종합해 진행됐다.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진선규’

 

가장 먼저 시상한 신인 남우상은 <형>의 도경수 배우가 받았다. 이날 도 배우는 소속그룹 EXO의 콘서트로 인해 시상식 초반에 자리에 없었다. 때문에 조인성 배우가 대신 수상했고, 말미에 최우수 작품상 시상자로 깜짝 등장했다. 도 배우는 2014년 데뷔작 <카트>를 통해 비정규직 마트 노동자인 어머니와 갈등을 겪는 농도 짙은 역을 제대로 소화했고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도 절묘한 표정 연기로 호평을 받아 임시완, 이준, 육성재 등과 함께 아이돌 그룹 출신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로 주가를 올리는 중이다.

 

신인 여우상은 <박열>의 최희서 배우가 받았다. 최 배우는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 만큼은 내 가슴 속에서 영원할 것”이라며 감격스러운 마음을 표출했다. 특히 후미코의 자서전 한 구절인 “산다는 것은 그저 움직이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나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것이 죽음으로 향해도 그것은 삶의 부정이 아니다. 긍정이다”며 “매순간 내 의지에 따라 사는 배우가 되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최 배우는 앞서 대종상에서 신인상과 여우주연상, 부산영평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바 있어 2017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최다 관객상은 모두가 예상한대로 1218만6001명의 관객을 동원한 <택시운전사>가 받았다.

 

각본상은 <남한산성>의 황동혁 감독이 받았다. 이날 대부분의 주요 수상 후보로 올랐던 남한산성에서 유일하게 황 감독이 상을 받았다. 남한산성은 특별한 반전이나 변화 없이 극을 리얼하게 이끌어 갔고 그때 당시의 한국이 처한 국제 정세와 맞물려 좋은 교훈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황 감독은 <도가니>와 <수상한 그녀>를 통해 이미 연출력을 인정 받았다. 황 감독은 “수상소감 전혀 준비 안 했다. 받을 줄 전혀 몰랐다. 무엇보다 원작을 써준 김훈 작가에 모든 공을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인기스타상은 네티즌의 직접 투표로 나문희, 설경구, 조인성, 김수환 배우가 받았다. 김수환과 나문희 배우는 최연소이자 최고령 인기스타상을 받아 눈길을 끌었다. 나 배우는 “이 나이에 인기스타상을 받다니. 여러분도 한 번 이 나이에 상 받아봐라”며 폭소를 자아냈다. <불한당>의 설경구 배우는 “영화 찍으면서 스태프들과 소주한잔 한 것이 이 영화를 만들어냈다. 오늘 불한당원 동지들이 많이 오셨다”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이날 시상식장에는 불한당의 팬들이 단체로 방문해 배우와 감독이 거론될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와 이목을 집중시켰다. 5월 조기 대선과 개봉 시점이 맞물렸고 장일호 감독의 SNS 발언이 논란이 돼 영화가 상대적으로 흥행을 못 했다는 인식이 있어 팬들이 똘똘 뭉친 것이다. 

 

▲ 수상소감을 말하며 눈물을 흘린 진선규 배우. 사진=SBS     

 

남우조연상은 후보가 치열했다. <해빙> 김대명 배우, <더 킹> 배성우 배우, <불한당> 김희원 배우, <택시운전사> 유해진 배우를 따돌리고 <범죄도시> 진선규가 남우조연상을 탔다. 진 배우는 범죄도시에서 잔악한 보스 ‘장첸’과 더불어 실감나는 악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특히 경찰에 붙잡혀 자백 강요에 시달리다가 자살 시도하는 장면은 소름끼칠 정도였다. 2000년 연극 <보이첵>을 통해 연기 생활을 시작한 진 배우는 17년 간 연극, 영화, 드라마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 했었다. 진 배우는 소감을 밝히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말을 잇지 못 하는 등 벅찬 마음을 드러냈다. 이에 객석에서 응원차 “잘 생겼다!”는 말이 나왔고 진 배우는 “제가 잘 생긴 건 아닌데”라며 재치있게 답하기도 했다. 진 배우는 “여기에 오는 것만으로도 떨려서 청심환 먹었다. 이거 받을줄 알았으면 하나 더 먹어야 하는데”라며 “현장에 와이프가 와있다. 배우인데 애 돌보느라 고생하는 우리 여보 사랑해!”라고 말했다. 진 배우의 아내인 박보경씨는 연극배우로 알려졌고 25일과 26일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한동안 오르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여우조연상은 <더킹>의 김소진 배우가 받았다. 김 배우는 더킹에서 실존 인물인 임은정 검사를 모델로 한 안희연 역을 맡아 눈치 보지 않고 윗선을 수사하는 강직함을 표현해냈다.

 

‘택시운전사·아이캔스피크’가 남긴 역사적 의미

 

감독상은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에 출연해서 유명해진 스티븐 연 배우가 시상했다. 수상자는 <아이캔스피크>의 김현석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결함이 꽤 있는 영화인데 좋게 봐줘서 고맙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우리들의 부채의식이 영화를 통해 조금은 가벼워졌으면 한다”며 처음에는 “심재명 대표에게 시나리오 받고 원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이 작품을 맡게 된 것이 정말 기쁘고 행운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무엇보다 나문희 배우를 축하해주러 와서 수상을 전혀 예상 못 했다는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다. 

 

▲ 담담하게 수상소감을 말하는 송강호 배우. 사진=SBS     

 

남우주연상은 <택시운전사> 송강호 배우가 받았다. 가장 유력한 후보였는데 현실이 된 것이다. 송 배우는 수상소감에서 ‘우리의 미안함’을 이야기했다. 송 배우는 “그동안 상처와 고통 속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위로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기했는데 “개봉 후에 오히려 관객들이 저희에게 애썼다면서 위로를 해주는 것 같아서 부끄럽고 몸둘바를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택시운전사란 영화가 정치와 역사나 이런 걸 뒤로하고 우리의 가슴 속에 있는 마음의 이야기가 아닌가. 누구나 갖고 있는 미안한 마음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트로피도 중요하고 영화도 중요하지만 올 한해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영광이다”고 속 깊은 소감을 전했다. 실제 송 배우가 맡은 택시기사 김만섭은 손님으로 태운 외신 기자 힌츠페터를 광주에 두고 혼자 돌아오려다가 고민 끝에 다시 돌아온다. 이때 딸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라는 대사와 그 눈물짓는 표정은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핵심이었다. 

 

▲ 이날 청룡의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던 나문희 배우. 사진=SBS     

 

여우주연상은 <아이캔스피크>의 나문희 배우가 받았다. 후보로 올랐을 때부터 주목을 받은 나 배우는 위안부 할머니를 다룬 영화에서 사실상 원톱 주연으로 극을 이끌었다. 나 배우는 “늙은 나문희에게 큰 상을 줘서 고맙고 남아서 열심히 하겠다”며 “나의 친구들 할머니들 제가 이렇게 상 받았어요”라고 소감을 말했다. 나 배우는 그동안 <육혈포 강도단>과 <수상한 그녀>에서 보여준 것처럼 단순히 주연 배우의 어머니나 할머니 역에 머물지 않고 당당히 주연으로 활약해왔다. 시상자로 나온 고두심 배우가 나 배우를 포옹했는데 그것 자체로 상징성이 있고 찐한 감동을 자아냈다. 나 배우는 아이캔스피크에서 나옥분의 네 가지 포인트를 완벽하게 연기했다. 나옥분은 ‘위안부 국가 성범죄 피해자’로서 ‘상처를 숨기기 위해 밝고 씩씩한 척’하는 ‘깐깐한 민원인’이다. 더불어 ‘영어를 말해야만’ 하는 사연이 있다. 쉽지 않은 이 네 가지를 완벽하게 구현했기에 영화도 흥행하고, 사회적 의미도 환기하고, 평단의 인정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최우수 작품상은 영화사 ‘더램프’가 제작한 <택시운전사>가 받았다. 박훈정 더램프 대표는 수상소감에서 “망원동의 많은 묘비명 중에 기억하는 묘비명이 작년에 돌아가신 어떤 분에 대한 것이었다”며 5.18 민주화운동 당시 동지들과 함께하지 못 했다고 평생 괴로워한 망자를 언급했다. 이어 “영화가 아픈 현대사에 대한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청룡영화상에서는 언론과 주최측의 갈등이 있었다. 25일 오후부터 비가 많이 내려 평화의전당 건물로 들어오는 외부 레드카펫 로드에서 행사를 못 하게 됐다. 주최측은 내부에서 작게나마 레드카펫 행사를 하기로 했는데 사진·영상 기자들의 내부 촬영을 불허했다. 미리 등록하고 대기 중인 수많은 사진·영상 기자들은 이에 항의하고 전면 보이콧을 결정했다. 

 

▲ 텅핀 외부 레드카펫. 사진=박효영 기자    

 

시상식이 시작되기 직전에는 비가 그쳐, 배우들이 외부 레드카펫 앞에 차를 세우고 걸어들어오는 이벤트가 진행되긴 했는데 취재진이 거의 없어 휑했다. 과거 청룡영화상 때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한 사진기자는 본지 기자에게 “주최측이 비오는데 밖에서 찍으라고만 하고 내부 촬영을 거부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나중에 보니 (중계 방송을 맡은 SBS는 그렇다치고) 주최측인 스포츠조선 기자들은 시상식은 물론 내부 레드카펫 행사까지 다 찍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다음은 주요 부문 수상자와 수상작이다. 

 

최우수 작품상 - <택시운전사>

감독상 - <아이캔스피크> 김현석 감독 

각본상 - <남한산성> 황동혁 감독 

최다관객상 - <택시운전사>

남우주연상 - <택시운전사> 송강호 

여우주연상 - <아이캔스피크> 나문희 

남우조연상 - <범죄도시> 진선규  

여우조연상 - <더킹> 김소진  

신인남우상 - <형> 도경수 

신인여우상 - <박열> 최희서 

인기스타상 - 나문희, 설경구, 조인성, 김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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