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콧 전략으로 보이는 일련의 대응, 10월13일 추가 구속영장 발부 이후 보이콧 전면화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식 재판에 응하기 보다는 여론전을 택하는 방향으로 완전히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이 10월 16일 공판을 마치고 돌아가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27일 오전 42일 만에 재개된 공판에 박 전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아 공판은 20분만에 막을 내렸다. 박 전 대통령은 건강상의 사유로 출석을 거부했지만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서울 구치소를 통해 보낸 의견서로만 보면 재판 불출석 사유에 해당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전직 대통령인 만큼 공판 참석 여부에 대해 심사숙고할 시간을 준 뒤 궐석재판으로 진행할지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공판에는 박 전 대통령의 국선 변호인으로 선임된 5명의 변호사(조현권·남현우·강철구·김혜영·박승길)가 모두 모습을 보였다. 이들 변호인단은 박 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접견요청 서신을 세 차례 보냈지만 모두 거부됐다. 변호인단 중 가장 경력이 오래된 조현권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동의하면 만나겠으며 무리하게 접견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 27일 공판에서 모습을 보인 조현권 변호사. 사진=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재판 보이콧과 여론전 전략의 일환으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현직 대통령 시절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은 의혹까지 불거진 마당에 재판에서 대응하는 것보다 재판 자체를 부정하면서 결백함을 호소하고 탄압받는 모양새와 인권 침해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사면 결정을 압박하기 위한 대외 여론전을 부추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남근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회장)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의 행위에 대해 “재판의 절차가 공정하지 못 하고 편향된 정치적 재판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워낙 혐의가 많고 구체적이라 스스로 무죄를 받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고 그래서 정치적 여론전을 택한 것으로 밖에 해석이 안 된다”고 밝혔다. 

 

실제 일련의 과정을 보면 보이콧과 여론전 전략에 따른 대응 방침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 16일 공판이 시작된지 5개월 만에 처음으로 발언을 했다. “재판부를 믿을 수 없다”면서 전면 공판 보이콧을 선언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보복이 내게서 끝나기를 바란다”며 자신을 향한 모든 법적 조치가 정치 보복이기 때문에 공판 자체의 정당성이 없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유영하 변호사를 비롯한 변호인단도 모두 사임했다.

 

▲ 3월 22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유영하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뒤 돌아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은, 10월 13일 법원이 자신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전면 보이콧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 영장을 추가 발부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외풍과 여론 압력에도 헌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할 것이란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10월 18일에는 국제 법무컨설팅 업체로 알려진 MH그룹이 UN인권이사회에 박 전 대통령이 한국 사법 시스템에 의해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법무부는 일반 제소자에 비해 훨씬 넓은 독거실을 제공하는 등 오히려 배려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도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직접 신문지를 깔고 누워서 일반 제소자의 좁은 생활공간을 환기했고 이를 통해 인권 침해 주장은 박 전 대통령이 아닌 일반 제소자가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인권 침해 주장은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 하고 있지만, 박 전 대통령 측은 핍박받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모양새다. 유 변호사가 10월 16일 공판에서 “허허롭고 살기가 가득한 법정에 피고인을 홀로 두고 떠난다”고 발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앞으로도 수용시설에서의 인권 침해 문제, 정치보복의 피해자, 불공정한 재판의 피고인이라는 점 등을 지속적으로 부각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선 변호인의 접견에 응할 것인지, 이후 공판 일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주목된다.

 

한편, 유 변호사는 사임계 제출 이후에도 박 전 대통령을 수차례 접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형사소송법 34조에 따르면 ‘변호인 또는 변호인이 되려는 자’는 피고인과 접견이 가능하지만 유 변호사는 이미 사임했고 다시 변호를 맡을 의지도 없으면서 해당 법조항을 이용한 것이다. 

 

변호인 접견이 아닌 일반 접견은 유리막 접촉이 있는 곳에서 교도관의 배석 아래 진행된다. 법무부는 10월 23일 유 변호사에 대한 변호인 자격으로의 접견을 불허한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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