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민 시인 / 수필가     © 중앙뉴스

[중앙뉴스=박종민] 고요한 새벽 정적을 깨며 새벽닭이 홰를 칩니다. 두발 두 날개를 퍼덕이며 꼬리 깃을 추켜세워 몸부림을 칩니다. 달빛 훤하게 비추이는 새벽이나 별빛 초롱초롱한 새벽이나 가리질 않습니다.

은하별 흐늘흐늘 흘러가는 새벽에도, 먹구름이 온통하늘을 가려 하늘과 땅의 공간이 어둑 캄캄한 새벽에도 그 시각만 되면 어김없이 홰를 쳐대며 목울대를 세웁니다.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피를 토하는 피울음을 울고 있습니다. 가슴속에 맺힌 여한을 토해내는지 탄성을 지릅니다.

처절한 울음 속에서 가끔씩 울컥대기도 합니다. 아마도 꿀꺽 꿀꺽 각혈을 하는 지도 모릅니다. 무슨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하고 호소하는 듯 탄원을 합니다. 새벽닭은 왜 무엇 때문에, 무슨 사연이 있기에 딱 그 시간이 되면 고요를 깨트리며 울고불고 하는 걸까요? 

 

추측컨대 첫 울음은 초혼(招魂)입니다. 영혼(靈魂)을 부르는 것입니다. 영혼을 불러 들여 인간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덜 된 사람은 덜 된 사람 그대로 잘 되고 잘 난 사람은 잘 되고 잘 난 사람그대로 그들의 영혼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울음은 신세타령입니다. 우리 안에 갇힌 영어(囹圄)의 몸으로 인간세상을 내다보며 인간을 일깨우기 위해 심장의 피를 다 토해내는 울음을 울어 대건만 우매(愚昧)한 인간, 얄팍한 인간들이 시정을 몰라주니 서러워하며 신세타령을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울음은 게으른 인간들에게 각성을 하라는 것입니다.

게으름 피우질 말고 얼른 일어나 활동하라는 것입니다. 새날이 밝아오니 부지런히 뛰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 마지막 울음은 심덕이 나쁘고 욕심 많은 사람, 고집 세고 아집이 강한 사람, 양심과 도덕윤리를 모르는 사람, 철면피 파렴치한 사람들에게 뉘우치며 각성하라는 것입니다. 

 

새벽닭은 이렇게 긴긴밤을 지새워가며 잠에 취한 인간, 술에 취한 인간, 악몽에 허덕이는 인간, 물욕에 눈이 먼 인간들을 깨우고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됨됨이를 알아봐가면서 지적하며 각성하도록 촉구를 하는 것입니다.

아프고 힘든 험한 세상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가라며 훈계(訓戒)를 하는 것입니다. 나쁜 짓에 몸 적시지 말고 슬픈 일엔 함께 슬퍼하라고 훈계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인간들이 이와 같은 닭의 훈시(訓示)를 모릅니다.

가진 자는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고 악행(惡行)을 하며 선(善)한 서민들을 괴롭힙니다. 힘 있는 자는 힘을 과시하며 약(弱)한 자를 업신여기며 못 살게 굽니다. 양심불량인 자, 부도덕 한 자, 도벽(盜癖)이 있는 자 들이 사리사욕에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공중도덕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새벽닭은 지혜롭습니다. 시시각각 인간들의 정체(整體)를 알아보며 인간들을 일깨우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닝콜은 특급호텔에도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을 배려하고 생각해서 외쳐대는 모닝콜은 전 세계 어떤 유명도심에도 없습니다.

새벽닭이 가진 지혜(智慧)와 특전(特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조용한 시골, 한적한 소 도읍에 살며, 그것도 분위기를 봐가며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강도(强度)를 높이고 낮춥니다.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는 우리 인간들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정치하는 높으신 나리들, 못된 짓으로 부를 쌓으려는 사업가, 그릇된 사상을 가진 교육자, 건달 깡패 도박과 사기(詐欺)사취(詐取)를 일삼고 못된 짓 하는 인간들에게 경각심(警覺心)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독특하며 특별한 모닝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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