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의 문화살롱] 과수목에서 배우는 농심
[이재인의 문화살롱] 과수목에서 배우는 농심
  • 이재인
  • 승인 2017.12.0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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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 중앙뉴스

[중앙뉴스=이재인] 귀향 18년차 고향 비탈밭에 손님맞이용 과수 묘목을 구해다 정성껏 심었다. 매실, 감, 밤, 호두, 대추 등등이었다. 물론 약선으로 쓰이는 약용식물도 손닿는 데까지 구해 심었다.

큰 나무도 살 수 있는 그런 여력도 있지만 이를 가꾸고 키우는 보람과 재미를 누리려는 야심도 가득했다. 그래서 나무를 위한다는 심정으로 거름이 될 만한 것은 긁고 파서 묘목 뿌리에 던져 넣었다.

그런데 남의 집 나무는 나와 같은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우리집 나무에 비해 그 열매가 크고  실했다. 빛깔도 반짝반짝 윤기가 났다. 무슨 비결이 있는가 싶었다. 이를 본 호기심 가득한 이웃집 노인이 말해 주었다.

 

“농투셍이두 공부헤여혀……. 그게 월사금 내고 배운겐데. 무신 거름을 줬는디?”

“무슨 거름이라요? 전 퇴비가 좋다기에 그걸 썩혀서 주었어요…….”

“그렁께 과실이 그냥 그것만 먹구 보답하는 줄 착각헸구먼……. 아덜도 핵교가면 국어만 가르치능감? 셈본, 인륜, 역사, 지리, 물리, 화학, 기술이랑 장날 좌판같이 나래비 헸쟌혀?”

 

노인의 말에 필자는 그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꼴이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나에게 커다란 교훈이었다. 노인의 말을 들은 후 알게 된 일이지만 식물이나 나무한테도 3대 요소의 비료를 주어야만 농부가 원하는 과실을 맺는다는 것이었다. 그게 질소, 인산, 카리였다. 그러니 영향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나무나 채소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기르는 야채는 늘 땅바닥에 퍼지고 줄기가 낭창낭창 기생허리처럼 가날 펐다. 나는 이 노인이 웃음으로 가르친 농사지식을 활용하여 지금은 빛 좋은 살구와 매실, 그리고 대추도 많이 수확하게 되었다.

우리가 자녀 교육이나 식물을 길러가는 과정에서 배우고 익히는 것들은 끝이 없다. 학교의 과정은 단순히 학교의 과정을 수료하는 과정일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삶의 체험이 곧 경륜이다.

 

경륜은 돈으로 살 수가 없다. 권력으로 살 수 없는 게 경륜이다.

옛날 로마시대 「장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계급이 있었다. 그리고 나라경영에 자문을 맡는 「원로원」이 엄연히 존재했다. 위정자들의 멘토가 그들이었다. 그런데 과학기술이 세상을 압도하다 보니 원로의 말이나 멘토의 조언을 완전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과학이 편리하고 좋은 점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원로원이나 장로들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게 또한 세상일이다. 세상은 거름이나 학교의 커리큘럼처럼 다양하고 세분화 되어 있어 이를 잘 응용해야 올바른 과일을 수확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필자는 오늘도 겨울 한파 속에 나무들에게 온갖 요소가 섞인 거름을 주면서 일하고 있다. 내년에는 요놈들이 제법 윤기 나는 과실을 달고 생글탱글 웃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이 겨울에 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아로니아 묘목을 몇 십 그루 심었다. 이 나무의 성질과 기호를 알아보는 책을 구해야만 할 것이다. 지식과 지혜는 공존하면서 세상을 따습게 한다는 사실을 나무를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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