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종민 시인 / 수필가     ©중앙뉴스

[중앙뉴스=박종민] 황당하고 난처하며 난감한 일과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흔히 ‘어이없다’ 말한다. 그런데 말을 해 놓고서도 그 어이없다는 말의 뜻을 제대로 알질 못한다. 뜻 말을 모르면서 쓰고 있다. 어떤 정황 상황 하에 남들이 써대는 걸 보고 그냥 쓰고 있는 듯하다.

어이가 없다는 것은 있어야 할 뭔가가 없다, 그러니까 어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없다는 것 아닌가. 그럼 과연 어이가 무엇이던가? 어이라는 것이 바로 어처구니이다. 어처구니는 맷돌에 달린 손잡이를 말한다.

즉, 맷돌을 돌릴 손잡이가 없어 맷돌을 돌릴 수가 없는 난처한 정황을 두고 ‘아, 어처구니가 없네, 라고 말하든 것이 ’정말 어이없네, 또는 참 어이없다‘로 바뀐 것이다. 맷돌을 돌려야 할 긴박한 상황에 손잡이가 없어 돌리려 해도 돌릴 수가 없는 심각하고 난처한 상황이니 어이, 어처구니야말로 굉장히 귀중한 존재인 것이다.  

 

옛날엔 시골농가집집마다 맷돌이 다 있었다. 중요한 필수생활도구, 기구로 꼭 있어야만 했고 가가호호 갖추고 있었다. 콩팥 수수 등등의 알곡식을 갈아서 가공하고 날곡식을 가지고 식혜라든가 두부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맷돌의 존재가치를 오늘날의 20~30대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른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이미 오래된 옛날 얘기로 맷돌로 곡물을 갈아서 음식을 해 먹던 시대적 정황을 신세대들이 알 리가 없다. 민속촌이나 농업박물관에서 맷돌의 정체만큼은 알았으리라 싶다. 맷돌의 정체, 실체를 모르고 있는 터에 어이, 어처구니의 존재나 가치를 알아볼 리가 없다.

어처구니는 꼭 있어야만 되는 귀한 존재다. 어처구니없는 맷돌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이며 당시 맷돌이 없다면 음식을 만드는데 치명적이기 때문에 끼니를 굶을 수밖엔 없는 딱하고 곤란한 상황이며 난처한 국면인 것이다.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삶에 마당에는 반드시 어처구니 같은 사람이 있어야한다. 꼭 필요하고 없어서는 안 되될 어처구니인간 말이다. 어처구니, 어이와 같은 존재의 영역적 역할의 인간 말이다.

법치국가에서 법률을 통해 사회질서를 확립해나가고 있다하더라도 법이 있거나 말거나 사람들에게 치외 법적으로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함의를 존중하며 공중도덕질서를 이어나가게 하는 역할의 어처구니 같은 사람 말이다.

가정 직장 모임 단체 할 것 없이 사회생활전반에 걸쳐 조직이나 영위 운영시스템의 모든 곳, 적재적소 곳곳마다 속속들이 어처구니인재 어처구니인간 어처구니일꾼이 박혀 있어야만 한다. 조직전체가 돌아가고 시스템이 원활하게 움직여 소기의 목적과 목표를 이뤄내게 하는 역할을 해내게 만들어내는 인재가 있어야 한다.

 

우리 인간은 사람으로 태어나 인간 삶의 한 마당을 살고 가는 유한한 인생이다. 나에게 주어진 나의 유한한 인생 속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는가? 사람마다에 부여된 존재가치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 존재가치를 알고 그 실존적 가치를 높이 살려나가는 삶이야말로 인간의 값진 존재이유이리라. 모둠 살이 속의 사람 삶에는 그 많고 많은 여러 사람들 중에서도 꼭 필요한 사람이 있는 가하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있고,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

꼭 필요한 사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돼야한다. 비난 받으면서 욕된 삶을 살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인품 인격을 존경받고 역할과 사명을 존중 받으며 살아가는 인간 삶, 인생 삶을 살아야한다. 어이, 어처구니와 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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