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과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이 중첩, 현장실습 없애면 특성화고 존재가치 사라져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이 “해경이 사고내면 해경 없애버리 듯이 현장실습 제도 자체를 없애는 한풀이 정치가 문제”라고 교육부의 이번 현장실습 대책에 대해 지적했다.

 

바른정당이 5일 오전 9시반 국회 본청 바른정당 회의실에서 현장실습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 5일 오전 9시반 바른정당 연석회의가 끝난 직후 특성화고 현장실습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간담회가 개최됐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날 참석한 고등학생들은 하나같이 현장실습 제도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성준(경기 수원 삼일공고 2015년 졸업생)군은 “업체에서 문제가 있을 경우 학교에서 중간에 빼오는 경우도 있다. 업체에서 말한 것과 실제 근로조건이 다르거나 업체가 근로계약을 안 지킬 경우 그렇게 한다”며 현장실습 관련 학교의 조치가 적절하게 이뤄지면 사전에 사고 예방이 가능하다고 증언했다. 

 

김하영(경기 성남 성보경영고 재학생)양은 현재 세무법인에서 현장실습 중이다. 김양은 “3년 내내 학교에서 세무를 배웠고 기업에서 하는 일도 같은 일이라 적성에 맞아서 좋았다. 학교에서 협약서도 썼고 기업은 내가 부담을 가질까봐 분위기를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심하게 불미스러운 일은 사전에 학교가 예방하려고 노력해서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며 현장실습의 장점을 소개했다.

 

▲ 김하영 양은 현장실습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문지은(서울 여자상업고 재학생)양은 현장실습 경험이 없지만 “저희 학교는 보통 정규직이나 사무직으로 많이 간다. 언론을 통해서 현장실습이 문제시되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오히려 우리 학생들은 현장실습 나가는 곳에서 바로 취업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교사와 당국 관계자들은 성급하게 폐지를 결정해버린 교육부의 조치에 대해 우려했다.

 

김상기 서울 여자상업고 특성화연구부장은 “우리 여자상고 같은 경우는 정직원으로까지 취업이 되기도 해서 전혀 문제가 없다”며 “현장실습 폐지는 섣부르다. 이렇게 폐지해버리면 특성화고는 입학할 이유가 없는 거다. 학생들이 그냥 벼룩시장이나 사람인에서 직접 일자리를 구하면 되니까”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 김상기 부장은 특성화고 교사로서 현장에서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사진=박효영 기자)     


김 부장은 구체적으로 “1개월~3개월로 기간을 바꾼 것도 부작용이 있을 것 같다. 중소기업에서 짧은 시간에 학생들을 잘 받아줄 수 있을까 싶다. 특히 상경 계열은 1인 1컴퓨터가 필수적이다. 짧은 실습 기간에 그렇게 투자를 해줄지 의문이다. 남녀, 상업, 공업, 가정계열 등 분야별로 세세히 대책을 세웠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더불어 김 부장은 “한국도로공사는 차가 잘 안 다니는 야간에만 일을 한다. 실습생은 하루 최대 8시간 실습 근무를 할 수 있지만 업체마다 여건이 다 다르다. 어떤 회사는 월말에 일이 몰리기도 한다. 보통 95% 이상이 취업과 연계된 실습이니까 정부가 본질을 파악해서 업계별로 상세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바른정당 의원들도 그런 의견을 받아 목소리를 냈다.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은 “이런 큰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에 여론이 뜨거워지고 그러면 정치인이 말초적으로 반응하며 과한 조치를 남발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또 “현장실습을 없애버리는 건 마이스터고·상고·공고를 없애라는 것과 똑같다”며 구체적이고 선별적인 제도 개선책을 교육부에 주문했다. 

 

▲ 하태경 최고위원은 정치권의 성급한 이미지 정치와 한풀이 조치가 언발에 오줌누기 식의 조치만 양산한다고 꼬집었다. (사진=박효영 기자)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도 “오늘 이 자리에서 멘붕이란 표현까지 나왔을 정도로 특성화 고등학교 현장에서의 혼란이 큰 것 같다”며 “모든 특성화고의 현장실습을 전면 폐지해버리는 것은 너무 과한 조치다. 이런 사고가 터지면 학교와 현장에서 지켜야 하는 룰을 어떻게 고쳐나가느냐가 중요한데 이게 잘 안 되서 아쉽다”고 지적했다.

 

유 대표는 “이번 문제는 꼭 학생이라서가 아니라 한국의 노동 현실 자체가 열악하다. 구의역 김모군 사례도 그렇고 모든 취약계층 노동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인데. 학생들은 기술적으로 미숙해서 사고 발생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고 밝혔다.

 

▲ 유승민 대표는 비단 현장실습 문제 뿐만이 아니라 한국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개선이 함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두 가지 ‘법’이 동시 적용되는 문제:‘근로중심’에서 ‘학습중심’으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현장실습생의 신분이 애매하다는 점이었다. 근로기준법·직업교육훈련촉진법 둘 다 적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업체는 자기 입맛에 따라 법망을 피해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임호권 경기도교육청 취업지원팀 팀장은 “업체는 근로기준법으로만 실습생을 대하려고 한다”며 “상황에 따라 근로자이거나 실습생 둘 다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달용 교육부 직업교육정책과 장학관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실습생에게 노동을 시키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며 “열악한 사업장은 당연히 근로기준법과 촉진법 중 사업주에 유리한 것만 가지고 해석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송 장학관은 “지난 5년 간 현장실습생을 보호하기 위한 두 가지 법률 적용의 형태로 시행했다”며 “2012년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 현장실습을 조기취업 형태가 아니라 완전히 교육 중심으로 가야한다고 보고 이것이 현 교육부의 대안이자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또 송 장학관은 “유능한 현장 지도자를 반드시 배치해야 하는데 표준협약서에 따른 조기취업으로 연결되는 현실에 영향을 받아 그러지 못 한 경우가 많다. 사회와 기업이 함께 변화하지 않으면 제도가 제대로 정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상용 고용노동부 일학습병행정책과 과장은 정부 부처 간의 협업을 강조했다. 김 과장은 “이런 사고가 나면 지방 노동청으로는 보고가 잘 안 된다. 교육부와의 협업 체계가 부족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당연히 근로기준법 위주로 보게 된다. 교문위(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서 벌칙을 만드는 개정안을 추가하려 하는데 그런 부분은 고용노동부와 협의해서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교육부는 지난 1일 제주 현장실습생 사망 사건을 계기로 학생을 노동력 제공 수단으로 악용하는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2018년부터 전면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내년부터 ‘학습중심 현장실습’으로 전면 개편한다. 또 특성화고 학생이 3학년 2학기에 6개월 동안 하던 것을 3개월로 줄이고 의무사항이 아닌 학생 자율 참여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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