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대열 전북대 초빙교수     © 중앙뉴스

[중앙뉴스=전대열] 삼천리금수강산이라는 대한민국의 산천은 아무리 쳐다봐도 질리지 않고 아늑하며 그윽하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자기 나라의 산하를 자랑하지 않는 나라는 없겠지만 춘하추동 사계절이 뚜렷하여 온대와 아열대 그리고 한대를 한 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다. 게다가 국토의 70%이상이 산지로 형성되어 김제평야를 제외하고는 지평선을 볼 수 없다.

 

불행히도 미 소 두 나라의 세력다툼에 희생되어 광복을 이루고서도 오히려 민족은 두 갈레로 분열되는 치욕이 계속되고 있기도 하다.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은 6.25의 참상까지 겹쳐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산하는 남북을 막론하고 풍부한 관광자원의 보고로 인정받는다.

 

북한에는 금강산 묘향산 백두산 등이 있으며 남한에는 지리산 한라산 속리산을 비롯한 수많은 산악자원을 품고 있다. 그 중에서도 수도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주변에는 명산들이 즐비하다. 관광 사업은 세계 모든 나라들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경제자원이다.

 

그런데 다른 나라의 대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명산들이 한국에는 널려있다. 외국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대도시에서 산을 구경하려면 몇 시간씩 차를 타고나가야 가능하다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다.

 

한국은 정반대다. 대도시 한 복판에서도 높다란 산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을뿐더러 30분만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움직이면 바로 산 밑에 도착한다.

 

서울에는 남산 인왕산 북악산 아차산 등 비교적 낮은 산들이 둘러서 있고 그 뒤로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등 칠팔백 미터의 산들이 병풍구실을 한다. 휴일만 되면 이들 산들이 몸살을 앓는다. 특히 신록이 우거지는 봄철이나 낙엽과 단풍이 어우러지는 가을이면 등산인과 행락객들이 울긋불긋 색깔을 자랑하며 모여든다. 서울 둘레 길도 수백km에 걸쳐 조성되어 노약자들도 쉬엄쉬엄 산에 오르는 재미를 맛본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고 높은 산이 북한산이다. 백운봉 인수봉 만경봉 세 봉우리가 있어 예로부터 삼각산이라고도 부른다. 눈이 쌓이면 문수봉 형제봉 비봉 승가봉 용혈봉 향로봉 의상봉 보현봉에 이르는 능선이 마치 알프스처럼 하얗게 변하여 장관이다. 북한산 아래 우이동 수유리 지역에는 불의에 항거하여 목숨을 버린 4.19혁명 열사들이 묻혀있는 국립 4.19민주묘지가 있으며 그 위로는 애국지사15위의 묘역과 무후(無後) 광복군17위의 합동묘소가 조성되어 있다.

 

애국지사 15인의 면면을 살피면 이준선생은 고종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로 참석한 분이며 손병희선생은 천도교 교령으로 3.1만세운동의 33인 대표다. 이시영 선생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지휘관을 양성하고 부통령을 지냈으며 신익희선생은 상해임정 요인으로 국회의장을 역임한 후 야당의 대통령후보로 호남유세를 가다가 심장마비로 서거했으며 김창숙 선생은 일제경찰의 고문으로 앉은뱅이가 되었으나 성균관대학을 만들어 초대학장을 지낸 분이다.

 

이명룡선생은 105인사건으로 3년옥고를 치른 33인중의 한 분이며 여운형선생은 임정요인으로 건준 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암살되었다. 조병옥선생은 신간회 흥사단에서 일하며 항일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민주당대통령후보로 국민의 열화 같은 지지를 받았으나 암이 발생하여 미국에서 세상을 떴다.

 

유림선생은 아나키스트로 무장항일 투쟁을 전개했으며 김병로선생은 항일변호사로 격렬하게 일제에 맞섰으며 대법원장이 되어 사법부독립에 혁혁한 업적을 남겼다.

 

신숙선생은 매국원흉 이용구암살을 기도했으며 한국독립군 참모장으로 활약했고 김도연선생은 2.8독립선언의 주동자로 4.19혁명 후 내각책임제하의 국무총리로 지명되었으나 국회에서 인준이 부결되었다.

 

신하균선생은 신익희의 장남으로 상해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3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서상일선생은 대구출신이며 비밀결사 대동청년단을 창설하고 제헌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양일동선생은 광주학생운동으로 중동학교에서 퇴학을 받고 일본에 건너가 지하신문을 발행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후쿠오카형무소에서 3년6월 징역을 살았고 통일당을 창당하여 유신독재와 치열하게 싸웠다.

 

이 분들의 묘소가 국립현충원이 아닌 수유리에 집중된 것은 사회장으로 모신 어른들을 크고 좋게 모시겠다는 정부의 방침에서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러간 지금에는 유가족의 빈부차이 등으로 묘소관리가 소홀한 분이 많다.

 

이명룡선샌의 묘소는 아예 통일연수원 안에 있는데 찾는 이들이 거의 없다. 무후 광복군묘소는 순국선열숭모회(공동대표 전대열 조대용 김선홍)와 천지인산악회에서 설과 추석에 차례를 지낼 뿐이다. 국회에서는 때마침 대구 신암 선열공원에 안장된 독립운동가 52위의 묘소를 국립묘지로 하는 안이 정무위에서 통과되었다.

 

수유리 애국지사 묘역 역시 국립묘지화하자는 안이 김선동 박용진 정양석 인태근의원 등이 공동발의로 추진하고 있다. 강북과 도봉의 구청장과 문화원장까지 동참한다. 4.19혁명공로자회(유인학)와 순국선열숭모회(전대열 조대용 김선홍)등이 적극적인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이 묘역은 국립공원 안에 있고 국립4.19민주묘지가 있기 때문에 분쟁의 소지도 없다. 애국선열들에 대한 후인들의 존경심과 추모의 정을 가장 크게 보여줄 수 있는 국립묘지의 지정은 꼭 필요하다.
 

전 대 열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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