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에 모자 달래기 출간한 안태현 시인

 

▲     © 최한나 기자

 

구석

안태현

  

 

소심하지만 나는 이곳을 사랑한다

어쩌다 찾아들기도 하는

 

아직 소꿉이 그대로 남아있나

닦지 못한 눈물이 여전히 마르고 있나

 

눅눅한 공기처럼

일종의 도피에 가까운 이곳은 쓸데없이 따라온 것들이 많아서 항상 자리가 비좁다

 

깨지고 뭉쳐졌다 흩어지는

 

나와 내가 아닌 것 사이에서 달래야 하는 일과 달래지 말아야 하는 일 사이에서 격렬해진다

 

스스로 터득해서

나를 조금씩 움직이는 무기를 만들고 가까운 너도 잘 모르게 웃음으로 위장을 한다

 

구석이 아닌 것처럼 자세를 바꾸면 모든 게 바뀐다고 하는데

두 손을 들면

영원히 백기처럼 보이는

 

꾀병처럼 편한 곳

 

나는 어딘지 색깔이 변했는데 밤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아무도 몰라보고

결국 홀로 돌아가는 무채색 둥지

 

                                       -안태현 시집 『저녁 무렵에 모자 달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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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석’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따스하게 스미다니 구석의 재발견이다. 시, 시인의 힘이다.

살다보면 우울하거나 지칠 때, 너무나 넓고 포근해서 기댈 수 있는 가슴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면 멋진 구석 하나 가진 부자다. 아무 때나 찾아가 쉴 수 있는 공간 혹은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어릴 적 나는 우리 집 뒤란으로 가는 모퉁이 구석을 참 좋아했었다. 친구와 소꿉놀이도 하고 술래잡기 할 때 숨던 곳, 추억이라는 구석, 번번히 들켜도 좋았던 그 구석이 그리워진다.

오늘은 예쁜 시집 한 권이 내게로 와서 휴식과 명상의 구석이 되어주었다. 최근 안태현 시인이 지어낸 시집이라는 구석, 무채색 둥지에 밑줄 그으며 시린 가슴의 온도가 상승하는 구석의 맛 그 여운이 참 포근하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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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현 시인 /

전남 함평 출생

2011년 『시안』 등단

시집 / 『이달의 신간』 『저녁 무렵에 모자 달래기』

산문집 / 『피아노가 된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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