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와 비겁함이 탄핵의 배경, 대한애국당 조원진 대표의 인식과 유사, 여론조사 왜곡 주장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보수가 위기에 처한 배경을 두고 “비겁했다”며 “좌파의 눈치”를 본 게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2012년부터 4년 간의 경남도지사 재임시에 ‘무상급식 중단’과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를 언급하며 당시 박근혜 정부가 이 이슈에 대해 외면했다고 진단했다. 박근혜 정부가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좌파의 눈치를 본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게 좌파 눈치를 보다가 무력하게 탄핵을 당했다는 후술이다. 

 

홍 대표는 한국당의 혁신을 위해 당무감사를 추진하고 ‘신보수주의’를 천명하면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원인으로 권력 사유화와 견제 시스템의 부재 등 보수의 잘못이 아니라 보수의 소심한 눈치보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홍 대표는 16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국 기초·광역의원 세미나>에서 이같이 발언했다.

 

▲ 홍준표 대표가 16일 열린 세미나에서 탄핵에 대한 인식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사진=연합뉴스)    

 

홍 대표는 “박근혜 정부가 누구 때문에 망했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며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합세한 촛불”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탄핵으로 몰고 간 좌파 연합”의 눈치를 보다가 “그 꼴을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그래서 자유한국당(전신 새누리당)이 “비겁한 정당”이라고 정의했다. 

 

자유한국당이 “비겁한 짓을 하니까 전교조와 좌파들이 총결집해서 촛불을 들었고 탄핵을 유도했고 탄핵을 당하고 대통령은 감옥까지 갔다”는 지난 국정농단에 대한 정국 분석이다.

 

홍 대표의 이같은 주장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 하다.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는 16일 광화문 토크콘서트에서 “촛불혁명이 아니라 촛불 쿠데타”라며 “촛불은 멀쩡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권력을 찬탈한 쿠데타다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거짓 증거에 따른 거짓 탄핵으로 이뤄진 부당한 정권교체라는 것이 조 대표와 대한애국당 등 친박 극우세력의 기본 입장이다.

 

▲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가 16일 광화문에서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 (사진=대한애국당)     

 

좌파가 탄핵을 유도했고 여기서 눈치본 잘못이 크다고 생각하는 홍 대표의 인식과 판박이다.

 

홍준표만의 ‘바닥 민심’과 ‘소신’

 

홍 대표는 이날 한국당의 부활을 위한 방법론도 제시했다. 홍 대표는 간명하게 “그저 눈치보고 여론이 이러니까(보수에 불리하니까) 주저하고 그렇게 하다보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라며 “비겁한 짓을 하지 말고 눈치 보지 말아야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홍 대표는 눈치보지 말자는 대전제를 깔고 “구체제와 단절하자”고 선언했다. “새로운 자유한국당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며 “내년 지방선거에서 여러분들이 신보수주의를 뿌리에 둔 정신으로 국민들을 설득하고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홍 대표는 중요한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았다. △구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가 자행했던 비선실세의 권력 사유화(문건유출과 대기업 모금 강요 및 뇌물)와 블랙리스트 등 권력남용의 국정농단 △선별 복지와 작은 정부론과 같은 보수적 정책이 그것이다. 

 

홍 대표는 전자가 ‘태블릿PC’를 통해 드러나 촛불집회를 통한 탄핵이 이뤄졌다고 인정하지 않고, 후자에 대한 진보의 비판에 보수가 눈치를 봐서 탄핵됐다고 해석했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 정책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눈치보지 말고 정치를 펴나가야 하고 이를 알아봐 줄 바닥 민심을 얻어야 한다는 논리구조가 전개된다. 

 

▲ 여의도연구원(자유한국당 산하) 청년정책센터가 11월 28일 19시 <더 경청 간담회, 청년 아무말 대잔치>를 열고 홍 대표를 초대해 청년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홍 대표는 많은 시민이 요구하는 국정농단에 대한 반성과 사과 그리고 재발방지책 마련에 대해 신경쓰지 말자면서, 자신의 보수적 정책을 알아봐 줄 민심을 따로 상정했다.

 

홍 대표는 현장에 참석한 한국당의 지방 정치인에게 “밑바닥 민심이 선거를 좌우한다”며 “자신감 있게 설득하고 밀고 나가면 내년 선거 결과 괜찮을 것이다”고 조언했다. 

 

여기서 말하는 밑바닥 민심에 대해 홍 대표가 구체적으로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 향후 지방선거 정국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해석법

 

홍 대표는 바닥 민심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70% 가까운 지지율의 허구성을 제기했다. 그는 “광적인 지지자들을 상대로 하는 여론조사”는 일반 국민에 대한 여론조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여론조사 믿을 필요 없고 여러분들 자신을 믿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홍 대표는 지난 8월 실시된 특정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하며 “2만4000명한테 전화를 해서 5400명과 통화가 됐고 4300명이 여론조사 응답 안 한다고 전화를 거절했다”며 (여론조사 결과치로 인정할만한 답을 한 사람) “1003명에게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조사해서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70% 넘게 나온다는 분석이다. 

 

더군다나 홍 대표는 <리얼미터> 등을 염두에 두고 “친정부여론조사기관”이 여론조사를 하니까 그런 결과가 나온다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여러분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하면 이 자리에서 홍준표 지지율 90% 나온다”며 여론조사의 불공정성을 꼬집었다. 

 

하지만 원래 여론조사는 통상 응답률이 5~20% 사이를 오간다. 바쁜 현대인은 전화가 와서 받았을 때 여론조사 음성 메시지가 나오면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예컨대 리얼미터 보다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국 갤럽>은 지난 8월16일~17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률 18.6%를 기록했고 문 대통령에 대한 직무수행 긍정 평가 78% 결과가 나왔다.

 

홍 대표의 이런 인식은 지난 7월 박정희 정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류석춘 연세대 교수를 한국당의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함으로써 드러난 바 있다. 류 위원장은 대학생에게 극우 사이트 '일베'를 권장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등 극우 인사로 정평이 나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이뤄졌고 학계에선 박정희 시대에 대한 종말을 이야기할 때 극우 인사에게 한국당의 혁신을 맡긴 것이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1일 논평을 통해 홍 대표에 대해 “친북좌파 방지론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버리고 대선 후 자유한국당이 내놓은 민생정책이 있는지 되돌아보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홍 대표가 탄핵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독특한 해석을 하고 있는 것도 이런 색깔론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눈치와 비겁함이 결국 종북좌파에 밀렸다는 인식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 좌파에 밀려서 탄핵 당했다는 기본 전제에서 제대로 된 정책적 대안이 나오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편, 홍 대표의 앞날은 만만치 않다. 먼저 친홍계인 김성태 원내대표가 당선됐다고는 하지만 한국당 내에 있는 친박계와 무당파의 ‘사당화’ 비판이 거센 상황이다. 17일 발표된 당무감사 결과에서 친박계 핵심 서청원·유기준 의원이 당협위원장에서 물러나게 되자 즉각 반발이 일어났다.

 

중립후보를 천명한 한선교 의원이 원내대표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중립지대 좌장으로 불리는 나경원 의원도 줄기차게 홍 대표의 사당화를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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