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배 편집국장     © 중앙뉴스

[중앙뉴스=김경배 국장] 이전투구(泥田鬪狗)란 말에는 본래 두 가지 뜻이 있다 한다. 하나는 강인한 성격을 평하는 말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볼썽사납게 서로를 헐뜯거나 다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말은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이 우리나라 8도(道) 사람의 특징을 4글자로 표현한 데서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성계는 조선 건국(1392년) 직후 정도전에게 각 지역 사람들의 품성을 평가하도록 명했다고 한다.

 

그의 ‘4자 품평’에 따르면 경기도 사람은 경중미인(鏡中 美人), 충청도 사람은 청풍명월(淸風明月), 전라도 사람은 풍전세류(風前細柳), 경상도 사람은 송죽대절(松竹大節))로 비유했으며 강원도 사람은 암하노불(岩下老佛), 황해도 사람은 춘파투석(春波投石), 평안도 사람은 산림맹호(山林猛虎)고 평가했다.

 

이제 남은 것은 태조 이성계의 고향인 함경도뿐인데 태조의 재촉에 정도전이 어렵게 말을 꺼내니, 그것이 곧 이전투구(泥田鬪狗)였다.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처럼 강인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성계 입장에서는 자신의 고향 사람들을 개에 비유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가 언짢은 표정을 짓자 눈치빠른 정도전은 ‘돌밭을 가는 소' 석전경우(石田耕牛)’와 같은 우직한 품성도 갖고 있다고 둘러대 태조의 기분을 누그러뜨렸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이전투구라는 말은 명분 없이 벌이는 진흙탕 싸움을 뜻한다. 특히 정치권의 싸움을 이전투구로 많이 비유하는데 어찌 보면 명분 없이 그들만의 싸움을 벌인다는 국민들의 조롱일지도 모른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당무감사 결과를 통해 현직 당협위원장들을 대거 물갈이하면서 이를 둘러싼 이전투구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홍준표 대표와 류여해 최고위원간 펼쳐지고 있는 막말전쟁이 전입가경이다.

 

홍 대표는 21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주막집 주모의 푸념 같은 것을 듣고 있을 시간이 없다”면서 “어느 당직자의 말”이라고 표현했다. 당직자라 칭했지만 최근 자신을 공격하고 있는 류 최고위원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이에 류 최고위원이 발끈하고 나섰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당원들이 뽑은 2등 최고위원인 저를 여자라는 이유로 주모라고 했다. 낮술 드셨느냐”며 “여성비하에 남성우월주의에 빠진 홍마초, 지금도 돼지발정제 갖고 다니는 건 아니죠”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에 앞서 류 최고위원은 20일 성명서에서 막말을 했다는 이유로 자신에 대한 징계절차가 진행된다면,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막말을 한 홍 대표에 대한 징계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정제', '영감탱이' 등등 과거 홍 대표의 막말도 다시 언급하고 나섰다.

 

정치인들의 거침없는 말은 종종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단, 그것은 국민의 마음속에 있는 표현을 대변할 경우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당 대표와 최고위원간에 벌어지고 있는 막말전쟁은 정치를 희화화할 뿐이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 그것이 한국사회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21세기, 그것도 제 1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막말전쟁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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