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협상 결렬로 본회의 무산, 개헌 없어도 지방분권 가능?, 말 바꾸기하는 한국당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지방선거가 6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개헌 논의에 대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입장이 엇갈리고 책임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민주당은 국회에서 내년 지방선거 국민투표를 목표로 개헌안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한국당은 내년 지방선거로 기간을 못 박을 필요가 없고 국회개헌특위(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시한을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한국당은 개헌 없이도 지방분권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민주당 초선의원 57명 전부)은 26일 오전 11시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18년 2월까지 개헌안을 도출해야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57인은 공약대로 한국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 투표를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들은 “지난 대선에서 모든 정당 후보들이 한 목소리로 개헌을 약속했다”면서 그럼에도 “지방선거 동시 개헌이라는 국민과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려 하고 있다”고 한국당을 염두에 두고 비판했다. 

 

또 “1700만 촛불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하루빨리 개헌을 위한 대장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정치권에 촉구했다.

 

앞선 9시에 자유한국당 초선 의원들과 개헌특위 위원들은 같은 곳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의 반대로 국회 본회의가 무산됐다”며 “지방선거로 시한을 못 박고 이에 맞춰 졸속개헌을 하겠다는 것은 실질적인 개헌반대에 불과하다”고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같은 날 한국당 의원들이 더 먼저 성명을 발표하고 개헌 논의가 파행인데 대한 책임이 더불어민주당에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민경욱 의원실)    

 

개헌 없이도 가능한 지방분권? 개헌을 통한 지방분권?

 

이들은 정부여당이 “실질적 지방분권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헌이 필요한 것처럼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방분권은 대통령이 결심만 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실현 가능하다. 600여개의 사무를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이 준비됐다. 국회지방재정분권특위에서도 개헌이 아니라 가칭 일괄이양법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한국당의 지적처럼 정부여당은 지방분권을 실현하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26일 전남 여수에서 열린 제5회 지방자치의 날 행사에서 “2018년 지방선거 때 개헌투표를 진행하면 지방분권의 가치를 담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제2국무회의’를 제도화하고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명칭을 변경함과 더불어 자치입법권·자치행정권·자치재정권·자치복지권의 4대 지방자치권도 헌법에 명시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개헌특위 간사도 지난 11월27일 개헌 관련 토론회에서 “지금은 개헌의 시간”이라며 “중앙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있는 지방분권의 개헌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지난 11월27일 열린 지방분권개헌 서울회의 출범식 및 토론회에서 이인영 의원이 '개헌의 시간'을 강조했다. (사진=이인영 의원실)     

 

본회의 무산은 누구 책임인가

 

지난 22일 여야 3당 원내대표들은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로 여러 차례 만났지만 개헌특위 시한 등 주요 쟁점을 놓고 합의하지 못 했다. 여야 합의로 12월 임시국회를 열었지만 법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 개최는 무산된 것이다.

 

민주당은 개헌특위 시한을 2개월에 한해 연장하자는 입장이고 한국당은 6개월 연장을 고수했다. 이에 국민의당의 절충 노력에 따라 민주당이 시한을 6개월로 하는 대신 2월까지 개헌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자는 전제조건을 달아 제시했지만 한국당은 끝내 거부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같은 날 저녁 기자간담회를 통해 “정세균 국회의장과 민주당은 오직 <문재인 개헌>으로 가기 위해 <국회 개헌>을 내팽개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원내대표는 구체적인 개헌특위 연장안에 대해 왜 수용하지 않았는지 밝히지 않고 대통령 주도의 개헌안에 대한 비판론을 근거로 정부여당의 책임이라는 정치 공세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김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국회의장 그리고 민주당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회 개헌논의는 걷어 차버리고 오로지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을 가지고 지방선거와 함께 진행하려고 해 국민을 혼란스럽게 했다”고 비판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26일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와 관련 “개헌과 지방선거 동시 실시 공약을 고의로 부도내려는 한국당이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분풀이 하고 있다”며 “자신들이 국민께 약속한 지방선거와 동시 투표 약속을 안 지키겠다는 것인지 투표비용 1200억원을 더 들여도 투표율 50%를 장담할 수 없는 길을 왜 고집하는지”라며 비판했다.

 

공약 수정에 대한 입장 표명부터

 

일단 민주당은 지속적으로 지난 대선에서 <지방분권의 성격을 담은 개헌 투표 실시>가 공통 공약이었던 사실을 부각하고 있다. 

 

▲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 심상정 후보는 물론이고, 야 3당(홍준표·안철수·유승민) 후보들도 모두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투표 실시를 공약했었다. (자료=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연합뉴스 참고해 박효영 기자 취합)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4월12일 대선 후보로서 국회 개헌특위에 낸 의견서에서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하고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같은 날 국회 개헌특위 전체회의에 참석해서 “국회가 2018년 초까지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치면 개헌이 완성된다”면서 “새로운 헌법에 의한 4년 중임의 대통령제 시행은 차기 대통령 선거를 2022년 전국동시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르게 해 이때부터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고로 26일 한국당 의원들이 성명을 통해 “야당 시절 그토록 비난해오던 제왕적 대통령제를 오히려 연장하자고 4년 중임 대통령제를 고수하고 있다. 자신들이 집권하자 대통령 권한 강화와 임기연장으로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다”며 정부여당을 비판한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은 자유한국당과 홍 대표였다. 심지어 홍 대표는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지난 5월7일 지방분권개헌국민회의와 지방분권개헌 국민협약을 맺고 직접 서명까지 했다. ‘빌공(空)자 공약’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정치권의 공약은 가변성이 높을지라도 이건 너무 심한 측면이 있다.  

 

▲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이 지난 12월20일 부산시의회에서 홍준표 대표의 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사진=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한편, 다른 원내 정당들은 거대 정당에 각각 책임을 물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2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의 한국당 없이 개헌 논의를 하자는 제안에 “<제1야당 패싱>은 개헌 무산에 대비한 민주당의 정치적 알리바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민주당이 “개헌무산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꼼수를 부린다”고 지적했다. 

 

특히 “청와대나 행정부가 주도하면 그만큼 국민여론과 각 당의 의견수렴이 되지 않아 처리 가능성이 낮다”며 국회 주도의 개헌 논의를 주문했다. 김 원내대표는 한국당에도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은 당초 (자유한국당도) 약속했던 바이고 당연히 그 점을 목표로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26일 상무위원회에서 “임시국회가 자유한국당의 의사일정 논의거부로 계속해서 공전 중”이라며 “개헌안을 땡처리 할 수 없으므로 의사일정 합의를 거부한다는 김성태 원내대표의 기상천외한 주장까지 나왔다”고 비판했다.

 

이종철 바른정당 대변인도 26일 본회의가 열릴 수 없었던 합의 불발 사태에 대해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일보다 당리당략적 계산이 앞설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 논의가 더딘 것은 국민적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효율과 신속만으로 민주주의적 가치를 담보할 수는 없다”며 민주당의 시한론을 비판하면서 한국당에도 논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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