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한나 기자

 

장수시대

 서정란

 

 

장수시대 농촌마을은

깊은 정적에 빠진 무덤 속 같다

오래된 집 하나

오래된 사람 한 둘

함께 늙어간다

 

켜켜이 쌓인 외로움은

문안인사 한 마디에도 와르르 쏟아질 듯

반은 이승사람

반은 저승사람

허공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

 

봄꽃 요란한 화창한 봄날도

마냥 지루하기만 한 무너진 관절들

이따금씩 경로당에서 풀어내는

실없는 청춘만담에

무안해진 봄날이 차마 앞장서지 못해

마당귀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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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서어서 나이가 늘어났으면 하고 부풀었던 철부지적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 기억이 오늘은 위안이 되어준다. 왜일까? 장수시대가 인류에게 복이기만 한 것인가? 시인은 ‘무안해진 봄날’의 이미지로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노인들에게 무조건 ‘만수무강하시라, 백수 천수를 누리시라’는 말이 더 이상 축복의 말만은 아닌 것이 되어버린 시대, 그 모순이 위 시의 행간마다 숨어있다.

   화자가 위 시를 통해 보여주는 어느 농촌의 경노당 풍경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어디 농촌뿐이겠는가? 도회지에서도 골목이나 공원을 배회하는 노인들은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아프게 시선을 찌르는 것은 폐지 수거나 구걸을 하는 노인들이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자신의 노년에 한걸음 더 다가서는 것이기도 하다. 누군들 자신의 비극적 노년을 예측이나 했을까? 자식들 키워내며 저마다 생의 바다를 저어가다 보니 노년이라는 기슭에 다달았을 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새 달력의 첫장을 열며 자신에게 숙연한 물음표를 던지며 자세를 가다듬는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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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란 시인 /

경북 안동출생

1993년 <시대문학> 등단

시집 『클림트와 연애를』 외 5권 출간

동국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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