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통남통미’의 의도와 ‘핵과 경제’ 병진 노선의 일환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새해 첫 날 북한 최고 권력자의 대화 제안에 국내 정치권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관점에 따라 의도를 의심하기도 하고 일단 환영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은 1일 신년사를 통해 “북남 사이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적 환경부터 마련해야 한다”며 “북과 남은 정세를 격화시키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하며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1일 오전 평양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평양 조선중앙통신)     

김 위원장은 신년사 그 자체로만 보면 분명하게 대화의 의지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진정으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원한다면 남조선의 집권여당은 물론 야당들, 각계각층 단체들과 개별적 인사들을 포함하여 그 누구에게도 대화와 접촉, 내왕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라며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청와대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1일 곧바로 브리핑을 통해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 대변인은 “청와대는 그간 남북관계 복원과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사안이라면 시기‧장소‧형식 등에 구애됨이 없이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혀 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로서 남북이 책임 있게 마주앉아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의 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통해 “평창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의 획기적인 계기로 만들자는 우리의 제의에 호응한 것으로 평가하며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오전 10시30분 새해 첫 국무회의를 청와대에서 열었다. (사진=청와대)     

문 대통령은 당장 “통일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남북 대화를 신속히 복원하고 북한 대표단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실현할 수 있도록 후속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외교부에 “남북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도록 우방 및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의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환영하지만 북한의 ‘책임’ 강조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2일 브리핑을 통해 “북한의 신년사를 환영한다”면서도 “평화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상대방을 자극하는 행위를 종식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말에 북한은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그 어떠한 군사적 도발도 없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서만이 신년사의 진정성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행자 국민의당 대변인은 1일 브리핑을 통해 “경색되었던 남북관계의 터닝 포인트”라고 평가하면서 “어떤 이유에서도 북한의 핵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에는 “북한의 이중플레이를 용인해서도 안 된다. 올림픽 참여를 두고 군사긴장 완화와 한반도 평화를 말하면서 미국을 향해 위협의 메시지를 보내 한미동맹에 균열을 내려는 북한의 이중적 분리정책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도 2일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 발언을 통해 “최소한 한반도 상황을 계속 급박한 위기로만 몰아넣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파악된다”고 밝혔지만 “미국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핵 공격 능력을 언급하고 핵탄두와 탄도로켓을 대량 생산해 실전 배치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라는 평화적 구호와 맞지 않는 언사”라고 경계했다.

보수정당, 북한의 의도는 ‘화전양면’ 문재인 정부 ‘현혹’되지 말아야

화전양면 즉,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북한의 고질적인 행태였고 이번도 마찬가지라고 보는 게 보수정당의 기본 입장이다. 보수정당은 이런 위장평화 공세에 문재인 정부가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 자체도 “놀아나는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2일 열린 연석회의에서 “문재인 정부를 통해 남남갈등을 부추겨서 한미 관계를 이간질하고 와해시켜서 안보의 기반을 무너뜨리려는 것”으로 김 위원장의 평화 공세의 의도를 해석했다. 한마디로 “북한이 대한민국을 이용해 제재 수준을 낮추고 핵미사일을 완성하려는 시간 벌기”라는 것이다.

유 대표는 “오래 전부터 북은 핵을 완성하고 난 다음 대화 평화 공세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2018년은 “북핵과 미사일을 없앨 것인지 아니면 핵동결에 동의하고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중요한 한 해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한미동맹을 굳건하게 하고 원유공급 중단이나 해상봉쇄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국가까지 제재) 등 모든 제재와 압박을 할 때”라며 대화를 할 시기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정태옥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좀 더 세게 문재인 정부를 압박했다. 정 대변인은 2일 논평을 내고 “남과 북이 어깨동무할 때 국제공조는 물 건너가고 일시적 군사훈련 중단은 재개되지 못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우리민족끼리 테이블에 마주 앉을 때 주한미군 철수는 테이블 위의 맛있는 고기 덩어리가 되어 협상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는 대화 제의는 “대한민국을 지켜주는 장치들을 없애는 것”이고 “올림픽이 끝나면 한국의 냉혹한 안보 현실만 남는다”는 것이다.

홍준표 대표도 2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남남갈등을 초래하고 한미갈등을 노린다”라고 평가하고 “그런 신년사를 두고 정부가 반색하면서 대북 대화의 길을 열었다는 식으로 환영을 하는 것은 북의 책략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홍준표 대표(가운데), 김성태 원내대표(왼쪽), 함진규 정책위의장(오른쪽) 등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2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새해 첫 최고위회의를 개최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어 “DJ, 노무현의 햇볕정책 10년이 북핵 개발에 자금과 시간을 벌어준 것이라면 문재인 정부 대북 대화 구걸정책은 북핵 완성의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동시에 자유한국당은 “핵 균형정책(전술핵 한반도 재배치)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남봉미? 통남통미?

김 위원장의 대화 제스처는 그 자체로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에는 핵 위협의 현실화를 이야기했고 남측에는 대화 제의를 했기 때문에, 보수정당은 당연히 한미 관계를 교란하려는 의도로 파악하고 부정적인 논평을 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기존에 북한이 통미봉남 전략을 쓰다가 통남봉미로 갔다고 보는 관측도 있다.

반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남북관계 복원을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북미관계 개선의 징검다리로 삼으려고 하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통남통미라는 관측이다.

정 전 장관은 김 위원장이 북한 정부 수립 70주년과 평창 올림픽을 “민족적 경사”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그 얘기는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2월부터 자기네 정권수립 70주년 기념일 되는 9월까지는 좀 조용히 지내자”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의 ‘핵과 경제’ 병진노선을 언급했다. “작년 말까지 북한은 남북대화를 접어놓고 미국을 상대로 압박을 하다가 11월에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끝내고 핵무력 국가를 완성했다고 선언했으니 올해는 경제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보수정당이 이는 한미 공조 약화의 의도를 보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북한이 언제든지 그런 식으로 미국과 한국을 소위 이간질하고 갈라치기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속성”이라면서 “말려드느냐 안 말려드느냐는 것은 우리 하기 나름”이라고 반론했다.

이어 “북한이 설사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전략을 잘 세워서 상황을 주도할 수 있고 지금 미국과 이미 협의를 해서 (청와대가) 환영의 입장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한편, 우리 정부는 각 부처에서 바로 실무적인 차원의 대화 이행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2일 서울 통일부 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측에 판문점에서 고위급 대화를 재개하자고 제안했다. (사진=연합뉴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2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지난해 7월 우리 정부가 제안한 군사당국회담에 대해 아직도 유효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대변인은 “시기와 장소 등에 대해서도 제의를 했고 북한이 보다 구체적으로 답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요구한 한미 군사훈련 철회에 대해서도 미국과 협의 중이라고 밝혀, 남북간 대화 진행 정도에 따라 군사훈련을 연기할 수 있다는 기존 우리 정부의 입장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2일 14시 통일부 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고위급 남북당국간 회담을 제의한다”고 전날 김 위원장의 신년사 내용에 대해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밝혔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