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박광원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고,'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를 피해자 중심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에서 문대통령 내외가 위안부 할머니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하고 있는 모습. 사진=방송캡쳐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만 따로 서둘러 만나는 것은 이 문제를 얼마나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 위한 '첫 단추'가 시작됐다' 특히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 중심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외교부 장관 직속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의 조사결과에 대해 12·28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무엇보다 피해 당사자와 국민이 배제된 정치적 합의였다는 점에서 매우 뼈아프다"고 깊은 아쉬움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피해자 중심 해결과 국민과 함께하는 외교라는 원칙 아래 이른 시일 안에 후속조치를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이날 만남도 위안부 문제가 피해자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정부만의 어떤 합의로도 해결될 수 없다는 인식 하에 해결을 위한 첫 시동을 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이날 피해 할머니들에게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공식 사과한 것은 피해자 중심 해결이라는 기존 인식을 더욱 선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달 28일 12·28 합의에 대해 "절차적으로나 내용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다"고 했던 문 대통령은 이날도 "정부가 할머니들의 의견을 안 듣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내용과 절차가 모두 잘못됐다"고 또 다시 절차와 내용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지난 합의는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난다"고까지 했다. 한일 합의가 내용·절차는 물론 정의와 진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몰아붙인 셈이다.

 

위안부 문제를 정부만의 합의로 덮지 않겠다는 다짐인 동시에 적지 않은 부분이 잘못된 지난 합의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일본 정부를 향한 일침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합의 파기를 선언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문 대통령은 김 할머니를 만난 자리에서 쾌유를 기원하는 동시에 한일 정부 간 '12·28 위안부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만큼 이 문제를 푸는 데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재협상에 들어가기에는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이미 위안부 등 역사 문제와 여타 한일관계를 별개로 추진한다는 '투트랙' 추진 방침을 공식화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입원 중인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를 찾아 위로하면서도 "과거 정부가 공식적으로 합의한 것도 사실이니 양국관계 속에서 풀어가야 하는 게 쉽지 않은 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들께서 바라시는 대로 다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정부가 최선을 다할 테니 마음을 편히 가지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일 정부 간의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극명한 입장차는 그것대로 다루되 이 문제가 한일관계 전반에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는 인식과도 맞닿아 있다. 이른바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사드식 해법'이 현실적이라는 제안은 그래서 나온다.

 

청와대가 이날 문 대통령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일정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고 '로키'로 가져가려는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했다는 해석도 없지 않다.

 

만남의 취지가 명백한 대통령 일정을 굳이 여느 공개 일정처럼 진행해 일본을 자극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시각이다.

 

다만 문 대통령이 대일(對日) 투트랙 외교 노선을 취한다 해도 서둘러 한일관계 개선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12·28 합의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이어지고 있고 이를 계기로 한 위안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중요한 상황에서 역사문제와 미래 한일관계가 무관하게 굴러가기는 쉽지 않아서다.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한일 정상 간 만남도 평창 동계올림픽 이전에 성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일본 역시 이런 기류를 고려해 도쿄 한중일 정상회의를 4월 중에 개최하자고 제안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 사이 이 문제를 둘러싼 획기적인 전환점 마련 여부에 따라 정상 간 만남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 갈등으로 인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평창올림픽에 불참하는 것으로 정리하고 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청와대도 일본 측이 올림픽 참석 문제를 위안부 현안과 연동시킬 경우 굳이 더는 참석 요청을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기류가 확산하는 분위기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4일 CBS 라디오에 출연,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려면 파기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사회자 질문에 "모든 게 가능하다"고 답한 것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료사진=방송캡쳐.

 

강 장관은 "그렇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도 충분한 생각을 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부연해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뒤따를 것임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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