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대표의 주춤, 통추협과 운동본부 같은 날 회의 열어, 가치와 명분 싸움 중요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 열차가 숨가쁘게 달리고 있다. 국민의당 내 반통합파의 조직적 저항도 만만치 않지만 사실상 덧셈이든 뺄셈이든 통합 자체는 2월 내에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명분 싸움이다. 반통합파가 내세우는 통합 반대의 명분과 통합파가 내세우는 통합을 해야만 하는 이유 그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통합을 위한 우선조건으로 ‘안보관 궁합과 국민의당 내홍 정리’를 강조하면서 반통합파가 매달리고 있는 가치 싸움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양대 진영은 국민의당의 현실적 성공을 바라고 있지만 그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고 이를 지탱하는 것이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간명하게 말하면 반통합파의 ‘냉전적 안보관에 따른 보수 야합론’과 통합파의 ‘한국당 교체론’이 맞서고 있다. 

 

8일 오전 국민의당 반통합파 조직인 ‘국민의당지키기 운동본부’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회의를 열었고, 비슷한 시간대에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추진협의체’가 2차 공개회의를 가졌다. 

 

▲ 8일 통추협 구성원 4인(이언주·이태규·오신환·정운천)이 2차 공개 브리핑을 열었다. 브리핑이 끝나고 비공개회의로 전환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 8일 오전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의 회의가 열렸고 주요 의원들(장병완·정동영·조배숙·천정배·유성엽)이 배석해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승민의 안보관 ··· 반통합파의 요구에 안철수 어떤 선택하나

 

운동본부에서는 이날 유승민 대표의 경향신문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대북관이 맞지 않으면 통합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 안철수 대표가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운동본부 대변인인 최경환 의원은 “우리 노선을 버리고 유 대표의 냉전적 대북관에 맞춰서 합당을 계속 추진해야 하는 것인지”라고 자괴감을 토로한 뒤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5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최종 결심을 하지 않았다”며 통추협 역시 “통합이란 결론을 내놓고 논의를 한다고 보는 건 틀렸다”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유 대표는 통추협 출범이 “6월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 일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지난해 12월7일 바른정당 정책위원회가 중증의료 체계에 대한 긴급 정책간담회를 열었고 유승민 대표가 참석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안철수 대표의 통합 드라이브에 발을 맞춰왔던 유 대표가 잠시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을 두고 정가에서는, 통합 신당에서 바른정당의 색깔을 최대한 많이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게 중론이다. 유 대표도 “그동안 국민의당은 막판엔 꼭 호남 민심을 의식해서 문 정부 쪽으로 돌아섰다”며 신당의 지분이 국민의당 위주로 짜여지는 것을 경계했다.

 

▲ 2017년 12월27일 열린 세미나에는 양당 대표와 바른정당 원내외 지도부 인사를 비롯 국민의당 통합파 핵심 인사들이 대거 모였다. (사진=박효영 기자)   

 

어찌보면 몸값을 높이기 위한 ‘밀당’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유 대표는 단순히 그런 현실론을 떠나서 양보할 수 없는 보수적 정치관을 중시하고 있다. 

 

유 대표가 이 시점에 유보적 입장을 밝힌 이유는 △국민의당의 내홍 △통합신당 정체성 확립 두 가지다. 신당의 정체성이 분명하고 일관성이 있으려면 국민의당에서 어느정도 세력 갈등이 정리되고 파트너인 바른정당의 “따듯한 보수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이게 됐다. 

 

▲ 안철수 대표가 지난해 12월4일 당대표 취임 100일 기념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사진=박효영 기자   

 

유 대표가 말하는 정체성은 안보관이다. 햇볕정책에 비판적이고 전술핵 재배치 등 군사적 균형, 제재와 압박에 방점을 찍는 대북관에 대해서 반통합파는 지속적으로 “냉전적이고 낡은 보수적폐”라고 비판해왔다. 경제와 복지 정책은 양당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지만 안보에서 이런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반통합파는 통합이 보수 야합이자 ‘김대중 정신과 국민의당의 가치’ 포기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안 대표가 유 대표의 요구를 받아들여 보수적 안보관에 동조를 해준다면 반통합파의 반대 명분이 더욱 커진다. 강경한 유 대표의 안보관에 비춰 봤을 때 중간의 절충점을 찾기가 어렵다.

 

유 대표는 “미국이 북한을 선제 공격하지 않고 비군사적으로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제재와 압박 밖에 없다”며 “만약 끝내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도 전술핵 재배치와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 대표가 반통합파를 달래기 위해 햇볕정책을 포함한 대화와 압박 병행의 안보관을 천명하면 유 대표는 더욱더 통합에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통합파의 목소리 “한국당 교체하겠다” ··· ‘진짜 보수’

 

통합파는 통합의 명분으로 문재인 정부를 제대로 견제할 건강하고 합리적인 “대안 야당”을 건설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통추협의 일원인 이언주 의원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한국당은 과거 자기 잘못을 방어하는데 집중하고 있고 야당으로서 역할을 전혀 못 하고 있다”며 “민생·일자리·외교안보 등 다양한 이슈에서 건강한 대안을 제시하고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기 위해 야당을 교체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의원의 이런 관점은 안 대표의 다당제론과 맞닿아 있다. 안 대표는 그동안 다당제 정착을 위해 강한 제3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양극단 정당으로 규정하고 그 중간에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국민의당의 역할을 모델로 제시했다. 그러려면 통합을 통해 국민의당이 더욱 강해져야 한다는 게 안 대표의 생각이다. 

 

▲ 이언주 의원은  지난 1월3일 통추협 1차 회의가 끝나고 백브리핑을 통해 통합 추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간단한 답변을 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유 대표도 문재인 정부와 한국당을 지지하지 않는 중도보수개혁 민심을 잡아서 신당의 외연 확장을 꾀하고 “확실한 캐스팅보트 행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대놓고 “한국당과 홍준표를 끝내기” 위해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한국당과 다른 차별화된 보수를 내세우고 있다. 그 차별화의 제1순위가 국회 보이콧을 하지 않는 등 무조건적인 반대를 지양하는 것이다. 

 

하 의원은 2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문재인 대통령 도와줄 건 제대로 도와주고 민주당도 제대로 도와주고”라면서 통합을 통해 정쟁 일변도의 정치권 구태를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학규 국민의당 상임고문도 8일 보도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중도통합과 다당제는 시대적 요구이자 촛불 정신의 계승”이라며 “통합해서 제3세력의 중심을 잡으면 호남도 박수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당이 보여주고 있는 여러 구태들을 철폐한다는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노회찬 정의당 의원과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탄핵 정국에서 지속적으로 “건강한 보수”를 강조한 흐름과 연결될 수 있다.

 

▲ 7일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과 안철수 대표가 전남 여수세계박람회장에서 열린 여수마라톤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 의원은 지난해 5월10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선 도전) 아주 중요한 첫 걸음을 바른정당이 내디뎠다”며 “궤멸해 가는 낡은 보수를 걷어내고 보수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역할을 자임했기 때문에 어려운 선택을 했고 바른정당의 시도가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격려했다.

 

노 의원은 그렇게 바른정당의 성공을 기원한 이유를 두고 “왜냐하면 제대로 된 보수가 있어야 또 진보도 있는 것”이라며 “어느 한쪽으로는 독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 교수도 지난해 12월14일 인천에서 <한국의 보수 내일은 있는가> 특강에서 “우리 앞에서 보수를 외치는 자들은 자신의 영달을 좇는 기회주의자에 불과하다”며 “미래는 역사에 책임을 지는 진정한 보수를 되살릴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제대로 된 보수의 출현을 희망했다. 

 

물론 노 의원과 한 교수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통합파의 대안 야당론과 ‘진짜 보수론’은 만나는 지점이 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그 지점을 관통하는 발언을 했다. 진 교수는 지난해 11월28일 채널A <외부자들>에서 “지난 대선 과정을 지켜봐도 분명히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상당히 많은 수의 중도 유권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이 통합한다면 시너지 효과는 상당히 클 것”이라고 말했다. 

 

진 교수는 “지금 보수당을 보면 개혁에 실패하고 있다”며 “그래서 많은 경우 골수 지지자들은 모여 있지만 그것과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분들이 분명히 있다. 마음을 모아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한 것 같기는 하다”고 통합 신당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반통합파에서 가장 강력하게 보수 야합론을 주장하고 있는 천정배 의원은 이에 대해 생각이 많이 다르다.

 

천 의원은 이날 운동본부 회의에서 “요즘 안철수 대표가 이 나라 기득권 특권세력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촛불민심에 밀린 낡고 병든 기득권세력이 재기를 위해 절치부심하기 위해 안철수 대표를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2017년 2월13일 오전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북도의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전북 지역 순회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시 박지원 대표, 천정배 의원, 손학규 고문, 정동영 의원이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천 의원은 “수구세력·뉴라이트·지역패권세력·냉전세력”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들이 안 대표의 통합 행보를 반기는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천 의원은 안 대표의 통합 행보가 지난 대선에서 보인 우회전 행보(보수 표심에 신경쓰는 것)와 유사하다고 진단했다. 그 당시에도 “기득권 세력의 꾀임에 흔들렸다”며 결국 안 대표가 “홍준표 후보에게까지 밀려 3위에 그쳤다”고 보는 원인도 거기서 찾았다.

 

천 의원은 “멀쩡한 당을 만신창이로 만들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나가서 (통합) 하는 것이 도리”라며 국민의당이 가야할 길은 “적폐청산과 개혁의 길”이라고 선명한 진보적 노선을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통추협은 합의사항 4가지를 발표했다. 그것은 △정강정책과 당헌당규 입안을 위한 소위를 양당 6인으로 구성 △당명은 1월 중 국민참여공모로 결정 △양당 전당대회에서 통합 안건이 의결되면 창당준비위원회 출범 △통추협을 추후 추진위원회로 확대개편 등이다.

 

오신환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지난 3일 통추협의 첫 회의 이후 두 번의 비공개 만남이 있었다며 그 자리에서 아직 ‘지도부 구성’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오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양대 진영의 인사가 했다는 발언을 인용 보도하는 식으로 여러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퍼트리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운동본부 회의에서는 비공개 진행 원칙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강경 통합파 김중로 의원의 비서관이 몰래 잠입해 논의 내용을 기록하다가 발각돼 쫓겨나는 일이 벌어졌다. 반통합파 의원들은 이에 강력 유감의 뜻을 밝히고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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