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의 개헌 속내, 광화문에서 개헌 저지 기자회견, 무리수인 것을 알면서도 반대 일변도인 이유, 어차피 국회 3분의2 동의 필수적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자유한국당이 광화문에서 ‘국민 개헌’을 외쳤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언급했고 현행 대통령 중심제를 손보는 일이 개헌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당이 원하는 것은 ‘분권형 대통령제’와 ‘이원집정부제’와 같이 현재 대통령 권한의 상당수를 국회에 이양하라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게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개헌을 말할 때면 세트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서두로 깔아놓는 걸 보면 단순히 4년 연임제를 안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 한국당은 15일 광화문에서 '국민 개헌'과 '관제 개헌 저지'를 내세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그동안 한국 정치권에서 관습적 구호처럼 여겨져오던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을 하면서 국민적 합의를 강조하는 행보를 보이는 것은, 대통령 중심제에 대한 피로감을 국민 여론으로 치환해 분권형 개헌을 이뤄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자유한국당은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 나와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을 저지하기 위해 “관제 개헌”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국민 개헌”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김 원내대표는 복잡하고 어려운 형용사를 구사하며 개헌의 정당성과 방향성을 설명했다. 

 

▲ 김성태 원내대표는 기자회견문에서 기본권도 권력구조 개편이 선행돼야 의미가 있다는 취지를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김 원내대표는 “개헌은 전적으로 국민들의 몫이고 개헌의 시기와 내용과 방법은 전적으로 국민적 논의를 통해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라며 “여전히 정치적 책임성 보다 정치적 정당성에 우위를 두는 87년 체제에 머물러 있기에 우리 사회는 이미 다원화되었고 절차적으로도 충분히 제도화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현재적 고민의 수준이 사회적 합리성의 제고나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에 있는 것이라면 그것에 걸맞은 새로운 제도적 틀을 만들어가는 것은 지금의 우리사회에 부여된 정치적 과제일 것”이라고 밝혔다. 

 

각설하면 현행 헌법으로도 국민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측면이 충분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기본권의 실질적 확대를 위해서 제도적 틀을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대통령제를 손봐서 21세기에 요구되는 기본권에 부합해야 한다는 논리인데, 10일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2단계 개헌론’에 대해 명백하게 반대 입장을 낸 것이다. 

 

권력구조 개편은 합의가 어려우니 기본권 개헌부터 하자는 문 대통령의 방안에 대해 역으로 기본권을 신장하기 위해서라도 권력구조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당의 개헌 전략 첫 번째 : ‘어차피 우리가 반대하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 남용을 맘껏 누리다 탄핵까지 당한 한국당에서 다시 똑같은 명분으로 국민적 합의를 운운할 수 있는 배경에는 까다로운 ‘개헌 절차’가 있다. 298명의 국회 재적 의원들 중 3분의 2이상이 찬성(197명)해야 개헌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는데 한국당 의원들(116명) 전원이 반대하면 자력으로 부결시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당은 기존에 밝혔던 모든 개헌에 대한 입장을 별다른 해명없이 바꿀 수 있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와 만나 “권성동 법사위원장도 있고 국회 개헌 저지선도 확보됐는데 이렇게 2중 3중으로 브레이크 걸릴 것을 알면서 이렇게 문 대통령이 시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15일 문재인 정부의 개헌 주장은 사실상 개헌을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그럼에도 한국당의 개헌론에 대한 입장 철회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홍준표 대표의 대선 공약인 지방선거 동시 개헌투표안도 철회됐고, 심지어 2017년 2월24일 김명연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이 논평을 통해 “안건도 제시하지 않은 채 국민 참여를 말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더불어민주당과 당시 문재인 후보가 개헌에 소극적이라고 몰아붙였던 사실도 망각하고 있다.

 

2017년 조기대선 정국에서는 확실히 ‘문재인 대세론’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은 개헌에 소극적이었고 나머지 3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은 개헌에 적극적이었다. 3당은 개헌을 고리로 반문 연대를 결성하는 모양새까지 만들었다. 

 

집권할 가능성이 높거나 집권한 정치 세력은 자기 권력을 내려놓는 게 쉽지 않다. 실제 김영삼 정부·김대중 정부가 내각제 개헌안 공약을 지키지 않았고 박근혜 정부도 4년 중임제 개헌안에 대해 ‘개헌 논의는 블랙홀’이라며 논의를 거부하다 국정농단 발발 당일(2016년 10월24일)에서야 국면전환용으로 꺼내들었다. 

 

반대로 집권 가능성이 희박한 정치세력들은 개헌을 요구하면서 권력 분산을 바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동원되는 단골 구호는 “국민 개헌”과 “제왕적 대통령제”다. <내가 집권하면 제왕적이어도 되는데 남이 집권하면 제왕적이면 안 된다>는 내로남불의 전형이었다. 이것은 여야 가릴 것 없다. 

 

당시 지지율이 60%에 육박했던 문재인 후보는 확실히 개헌에 소극적이었지만 이내 대선일이 가까워오자 모든 후보와 함께 지방선거 동시 개헌투표에 공동 합의했다. 

 

개헌 공약을 어겨왔던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문 대통령은 당선 후에도 개헌 의향이 있음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2017년 11월1일 국회 시정연설/2018년 1월10일 신년 기자회견). 더불어민주당도 발을 맞췄다. 

 

물론 집권 정부여당은 개헌의 내용에 해당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정치적 수세에 몰리지 않았고 지지율이 70% 가까이 나오는 상황에서 지방분권론을 비롯 개헌을 논의하겠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다. 정권 연장이 됐을 때 권력의 절반을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의 개헌 전략 두 번째 : ‘개헌 분위기가 선거에 영향 미쳐’

 

홍준표 대표는 지난해 11월30일 대구 언론 정치부장 간담회에서 “어떤 경우에도 개헌해야 하지만 시기 문제다”며 “개헌 시기를 못 박을 것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에 하면 되는 것이다”라고 갑자기 개헌론에 대한 입장을 180도 바꿨다. 

 

여기에는 문재인 정부의 인기가 좋을 때 개헌 바람이 불게되면 당장 5개월 남은 지방선거에서 불리하다는 정략적 판단이 숨어있다.  

 

정태옥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광화문에서 “개헌 찬성률과 여당 지지율이 같이 가도록 하는 꼴은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당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발언이다. 문재인 정부가 주도해서 개헌 정국을 이끌어가는 것도 마땅치 않고, 지방선거에서 불리해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 나경원 의원은 지속적으로 개헌의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어쩌면 한국당 입장에서는 당연해 보이는 정략적인 태도다. 지방선거에서 개헌이 이슈화가 덜 되게 하거나 개헌투표가 이뤄지더라도 분권형 개헌 등 이후 자신들이 최대한 많이 정치적 파이를 가져갈 수 있는 방향을 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분권형 개헌에 합의하면 ‘시점 합의’ 가능하나?

 

어찌됐든 정부여당 입장에서도 116석을 가진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 개헌이 불가능하다. 국회 개헌특위가 합의된 개헌안을 마련하고(2월), 그 개헌안이 의결되고(5월), 지방선거일에 국민투표가 실시되는 것(6월)이 민주당과 문 대통령의 시나리오지만 난국이 전망된다. 

 

한국당은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가 개헌의 기본권 방향에 대해 초안을 제시한 것을 두고 정부여당이 사회주의적 개헌을 하는 것이라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체제 수호’를 위한 개헌 저지 구호를 내세우고 있다. 

 

이에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때 국회 개헌특위 위원장은 이주영 의원이었고 한국당이 주도했다”며 “그렇게 말하는 것은 순 억지”라고 반론했다.

 

중요한 것은 한국당이 “앙꼬없는 찐빵” “곁다리 개헌” “부스러기 개헌”이라고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이다. 문재인 정부가 쥐고 있는 대통령 중심제의 권한을 대폭 국회에 넘기라는 의중이 엿보이지만, 이런 불순한 의도라 할지라도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민주당에서 3선을 지낸 유인태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18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분권형 개헌이 필요한 이유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연정을 던졌던 근본적인 고민은 국민통합을 이루지 않고는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 전 의원은 “갈등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라며 “국민들이 행복하게 사는 나라들은 사회적 대타협이 잘 된 나라들이다. 우리처럼 진영이 극도로 분열된 나라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 사회적 대타협을 하려면 분권형 개헌으로 정파 간 연정이 원활해져야 한다”고 분권형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 전 의원은 또 문 대통령이 “분권형 개헌에 대한 생각이 없어 보인다”며 “지방분권·감사원의 국회 이관·대통령 권한을 국회로 조금 이관하는 정도에 관심을 두고 있지 권력구조 자체를 바꿀 의지는 크지 않다고 본다. 문 대통령 입장이 그렇다 보니 민주당 내 분권형 개헌론자들도 목소리를 내지 않고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문 대통령은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권력구조 개편에 관한 질문에 “개인적으로 4년 연임제”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문 대통령이 분권형 개헌으로 입장을 선회하면 한국당이 지방선거 개헌투표에 대해서 합의해 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함진규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15일 BBS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개헌 투표를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자는 말이 아니”라며 “금년 내에 시기에 관계없이 그것이 지방선거 전이든 지방선거 때든 또 지방선거 이후든 제대로 된 개헌을 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 함진규 정책위의장은 시점에 제한을 두지 않고 국민적 합의를 통해 여야 개헌안이 마련되면 언제든지 개헌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어 사회자의 4년 연임제에 반대하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집권하고 나서 통치구조가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폐해가 역대 대통령을 쭉 보면 어느 당이 문제가 아니고 계속 발생했다”며 “지금 집권했다고 그래서 손을 안 대고 어렵다고 해서 안 해 버리면 그거는 또 비극적인 그런 개헌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함 의장은 권력구조 개편없는 개헌은 “반쪽짜리”라고 강조했다. 

 

안상수 의원은 광화문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본인이 자살을 하거나 아들들이 감방에 갔거나 본인이 감방에 가는” 비극적인 대통령의 말로를 언급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는 역할을 다 했다”고 표현했다. 맞는 말이다. 

 

즉 제왕적 대통령제를 대폭 수정하는 개헌 방향을 요구하기 위해 명분쌓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 

 

김성태 원내대표와 유인태 전 의원이 말한 것처럼 대통령제의 정부와 의회의 견제구조가 아닌 분권형 정치 시스템이 되어 여야 협치가 자리잡으면 “정치적 책임성이 정치적 정당성” 보다 더 우선될 것이다. 적폐청산의 정당성 보다는 야권과의 협치가 중시되고 향후 정권교체 이후에도 정파적 정책 추진 보다는 협치의 조율이 더 활발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당과 민주당이 권력구조 개헌안을 각각 제시한다면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고 지방선거 개헌투표 실시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물론 한국당 내에 권력구조 안에 대한 컨센서스가 있다”며 “그럼에도 더 터놓고 논의해서 국민적 합의를 이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자기 정권이 권력을 내려놓는 것도 아니면서 시점에 이토록 집착하자는 것”은 “개헌하지 말자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 장 수석대변인은 기자들에게 권력기관 개편과 개헌 문제에 대한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의 행태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에 박완주 수석대변인은 “오히려 한국당이 개헌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며 “지난 19대와 20대부터 수도 없이 개헌 논의를 거쳐왔다”며 “민주당은 한국당이 의원내각제든 대통령제든 권력구조 개편안을 내놓으면 언제든지 토론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한마디로 한국당이 “보여줄 패도 없이 논의하자는 것”이라며 “그냥 문재인 정부가 하는 건 다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15일 오전 국회에서 개헌정개특위(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 첫 회의가 열렸으나 김재경 한국당 특위 위원장이 개헌 내용에 대한 ‘합의’를 강조하고, 정세균 국회의장이 오래 끌어온만큼 ‘효율성’을 부각하는 등 입장차만 확인하고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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