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예산안 처리를 놓고 7일 여야가 정면충돌하면서 '폭력 국회'가 재연됐다.

한나라당이 7일 새해 예산안 처리강행을 위한 수순밟기에 돌입하자 민주당 등 야당이 강행처리를 막기위해 국회 중앙홀의 전격 점거로 맞선데 이어 한나라당이 4대강 사업의 핵심법안인 '친수구역 활용 특별법'(친수법)을 기습 상정하는 과정에서 볼썽사나운 몸싸움이 벌어졌다.

치열한 몸싸움 끝에 밤 11시 20분쯤 민주당 의원 55여명이 본회의장 국회의장석과 주변을 점거하자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와 소속 의원 75여명이 뒤늦게 들어가 거칠게 항의했다. 여야 의원들은 8일 새벽까지 본회의장으로 집결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기재위를 통과한 예산 부수법안 14건에 대하여 8일 오전 10시로 심사기일을 지정했다.
▲   7일 밤 국회  야당 의원 및 당직자 등 150여명은 국회 본회의장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장 입구 로텐더홀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가 격렬한 몸싸움을 하고 있다. © [국회=e중앙뉴스 지완구 기자]
국회 예산결산특위 계수조정소위의 심사기일이 임박(이날 오후 11시)하자 한나라당의 예산안 예결위 단독처리를 우려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소속 일부 의원 및 보좌진 400여명은 이날 오후 8시30분께 국회 중앙홀을 기습 점거, 본회의장과 예결위 회의장의 출입문을 봉쇄한 채 배수진을 쳤다.

이에 한나라당 의원 및 보좌진들도 속속 국회 본청으로 집결했다. 국토해양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은 오후 9시30분께 5층 회의장을 봉쇄한 채 친수법 등 92개 법안을 기습 상정했다.

회의장 밖에서 진입을 시도하던 민주당 의원들과 한나라당 보좌진이 뒤엉키면서 격렬한 몸싸움과 욕설이 오가는 등 아수라장이 연출됐다. 이 과정에서 의자 위에 올라가 취재하던 모 일간지 사진기자가 추락해 잠시 실신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자 민주당 의원들이 회의장 안으로 몰려들어갔으나 이미 상황은 종료된 후였다. 이는 18대 국회 들어 3년째 예산 처리를 둘러싸고 '폭력국회'가 재연된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의 친수법 단독 상정에 거칠게 항의하는 와중에 격분한 한 민주당 의원이 내리친 의사봉에 한나라당 현기환 의원이 머리를 맞고 병원으로 급하게 실려가는 상황도 발생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회의장에 남아 "국토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 등 몇 명이 못 들어갔다"며 "의결정족수 미달로 상정 자체가 무효"라고 반발했다. 본회의장 주변 곳곳에서도 여야 대치 사태가 빚어졌다.

국회 사무처가 국회의장실로 향하는 양쪽 유리문을 봉쇄한 가운데 민주당 소속 홍재형 국회부의장이 출입하는 사이 민주당 보좌진들이 진입을 시도하면서 한쪽 대형 유리문이 깨졌다.

이에 한나라당도 홍 부의장실과 한나라당 소속 정의화 부의장실로 향하는 복도에 의원 30∼40명과 보좌진을 긴급히 배치, 의장과 소파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민주당 보좌진과 대치를 이어갔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각각 심야 의원총회를 열어 국회 본청에서 대기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여야는 1시간 소강상태를 이어가다 밤 10시40분부터 곳곳에서 격한 충돌을 이어갔다.

본청 3층 국회의장실로 향하는 통로를 확보한 한나라당측이 국회 중앙홀로 연결되는 유리 출입문에 의자, 책상 등을 쌓으며 원천 봉쇄에 나서자 민주당측이 우르르달려들어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욕설과 고성이 오간 것은 물론 한쪽 유리문이 `와장창' 깨지며 비명이 터지기도 했다. 민주당이 끌어낸 집기는 20여점에 달하며, 이들 집기는 1층에서 중앙홀로 연결되는 계단에 쌓였다.

민주당 손학규대표, 정세균 전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 등 10여명의 민주당 의원은 높이 쌓여있던 집기가 어느 정도 줄어들자 그 위에 올라서 국회의장실 진입을 시도했으나, 한나라당 의원 및 보좌진, 국회 경위들이 막아서 집기를 사이에 둔 팽팽한 신경전이 20분여간 계속됐다.

이어 상황은 여야간 `본회의장 쟁탈전'으로 전개됐다. 국회 본회의장으로 입장하는 오른쪽 출입문을 이미 확보한 야당측은 11시10분께부터 본회의장으로 향하는 강화유리문을 깨고 그 틈으로 입장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이날 세 번째 열린 의총에서 "이명박 정권의 횡포가 드디어 시작됐다. 4대강 예산이 통과되면 이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파병도 밀어붙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손 대표는 이어 비장한 목소리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나 손학규부터 밟고 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보좌진의 철통 경호를 받으며 본회의장 입장에 성공한 민주당 및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곧바로 국회의장석과 단상 점거에 나섰다.

권오을 국회 사무총장은 민주당이 본회장 진입을 위해 강화유리를 깬 데 대해 "본회의장 강화유리를 불법 파손하고 진입한 것은 개원 이래 처음"이라며 강력한 유감을 표시하는 동시에 원상복구를 촉구했다.

국회 245호 의원총회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 등은 민주당의 본회의장 점거 소식을 접하자마자 발걸음을 국회의장실로 옮겼으며, 국회의장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도 정의화 부의장실 쪽 출입문을 통해 본회의장으로 부랴부랴 입장했다.

이에 따라 본회의장 내 단상은 여야 의원들이 뒤엉켜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으며, 민주당 김진애 의원이 버티고 앉은 국회의장석 및 단상 주변에서 여야 의원간 20여분간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팔을 겉어붙이고 야당 의원과의 멱살잡이를 불사했으며, 여성 의원들까지 물리적 충돌에 가세, 고성과 비명이 뒤섞이는 상황에서 손톱이 부러지고 찰과상을 입는 등 경상자가 속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일단 의장석을 확보하기는 했으나, 의사봉을 손에 쥐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밤 11시50분 현재까지 한나라당 70여명, 민주당 50여명이 본회의장에 들어섰으며, 여야 양측은 본회의장에서의 `1박'을 위해 보좌진으로부터 담요를 긴급 공수받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일부 의원들은 "언제까지 국회가 이런 모습을 보일지 걱정",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탄식하기도 했다.

한편 국회 본청 정문 앞에는 국회 방호원들 외에도 국회 국회경비대원 100여명이 경비에 나섰다. 권오을 사무총장은 "경호권이나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것은 아니다"며 "과거 국회 본청 유리창을 통해 일부 보좌진이 입장을 시도, 이를 막기 위해 국회경비대원들이 경비에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8일 오전 새해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것과 관련, 질서유지권을 발동했다.

이에 따라 국회 사무처는 국회의원과 국회 출입기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국회 본청에서 자진해 나가줄 것을 요청하고 이에 불응시 강제퇴거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국회법 145조는 `의원이 본회의 또는 위원회 회의장에서 회의장의 질서를 문란하게 할 경우 의장 또는 위원장이 이를 경고 또는 제지하고, 응하지 않을 경우 퇴장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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