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정책, 더욱 악화되고 있는 소득분배
   
 
   

홍종학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경원대 교수·경제학


1990년대 이후 각국에서 소득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경제학자들이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나섰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센 비판은 곧 세계화를 소득양극화의 주원인으로 지목하며 논쟁에 불을 지폈다.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학자는 2008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루그먼이다. 그는 세계화보다는 지식정보사회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기술 진보의 설명력이 더 크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경제학자에 의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잘못되었음이 판명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비정규직 양산엔 세계화 핑계
그런데 최근 크루그먼이 견해를 바꿨다. 중국과 인도가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자신이 세계화의 영향을 과소평가했다고 자인했다. 이미 2004년에는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인 사무엘슨이 자유무역론자들의 편협성을 지적하며 중국과 인도와 같이 빠르게 기술을 습득하는 국가와의 자유무역이 미국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세계 노동력의 40%를 보유한 중국과 인도를 과거의 일본이나 한국과는 차원이 다른 상대로 경계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미국이 그럴진대 한국과 같은 작은 개방국가에는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최근 한국에서 소득양극화가 심화되고 비정규직이 늘어난 것은 중국의 영향이 크다. 저임금 노동자가 무제한 공급되는 중국의 제조업이 빠르게 세계시장을 장악하면서, 중국과 경쟁하는 중소제조업에서 임금 하락 압력이 매우 거세고, 그 결과 비정규직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중국과의 생산성 격차가 큰 대기업이나 정규직 노동자들은 거대한 중국 시장 덕분에 소득이 높아지는 반면, 저임금 노동자들은 중국 노동자들과의 임금 격차가 줄어들면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을 낮추는 것이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중국의 낮은 임금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한국 노동자의 대부분이 빈곤층으로 전락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논리를 펴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주장하는 것은 한국 경제와 우리 국민 전체를 파멸시키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자유무역을 강조하는 국제경제학의 권위자인 바그와티 교수나, 세계화의 위협을 지적하는 사무엘슨 교수나 모두 이구동성으로 노동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기술을 빠르게 개발하고 노동자들의 숙련도를 높이는 것만이 해결책이고, 선진국들은 그래서 모두 노동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양극화 정부의 비상식적 발언
반면 신자유주의의 강화를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들은 규제 완화와 감세를 통해 혁신과 근로의욕을 고취시켜 세계화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으나 금융위기로 그 허구성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부자 감세에다 개발연대 방식의 땅파기에 수십조원을 쓰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은 거부하는 나라가 한국 외에 또 있을까? 시대착오적인 정책으로 인해 소득분배가 악화될 뿐 아니라 한국 경제는 회복하기 어려운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난데없이 대통령을 비롯하여 총리까지 나서서 소득분배 상황이 나아졌다고 한다. 감세의 혜택이 서민에게 돌아갔다고도 한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비상식적 발언을 쏟아내는 지도자들이 경제를 어떻게 이끌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보수 경제학자들은 다 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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