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머리 좋은 사람은 법대 아니면 의대’라는 말이 있어온 지 오래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남들이 하기 어려운 과학 분야에 진출하여 인류의 창의적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얘기는 물 건너간 지 언제인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잘못된 오도로 황금만능주의로 사회적 가치관이 변하면서 생긴 작태다.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도 자식하나 잘 길러보겠다는 일심으로 살아온 부모세대들은 자식들이 출세하고 돈 잘 벌기만을 일구월심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어린이들이 놀지도 못하고 학원으로 전전해야 하는 이유는 부모들의 터무니없는 욕심에 기인한다. 자기의 자식이 어떤 소질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장래 뭘 하고 싶어하는지 아랑곳 하지 않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만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다. 그것도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고시합격을 겨냥한 법대로 가거나, 면허 있는 도둑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의대진학만이 전부다. 인문학을 전공하여 문화와 전통을 잇는달지, 기초과학에 투신하여 창조적인 사물을 개발해내는 등 인류문명의 성장발전에 기여하는 일에 대해서는 아예 외면한다.

대체적으로 법관이 되는 사람에게 창의적인 두뇌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 법규에 따라 법을 집행하면 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머리 좋은 사람들만이 법관이 된다면 자연과학이나 인문학을 통하여 창의적인 역할을 수행할 인재는 부족하게 된다. 구태여 머리 좋은 사람들이 법관만을 지망하는 사태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법대는 각급 고등학교의 최우수학생들만이 지망한다. 나머지들은 그들을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볼 뿐이다.

그 다음 순서가 의대다. 법대에도 서울법대를 비롯하여 전국 각 대학에 법과 없는 데가 없지만 서울법대 등 몇몇 명문대학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큰 인기가 없다. 그러나 의대는 다르다. 물론 서울의대를 넘버원으로 치는 데는 이의가 없지만 아무리 시골구석에 있어도 ‘의대’라는 이름만 붙어있으면 너도나도 목을 맨다. 요즘에는 법대 외에도 법학전문대학원이 생겼고, 의대를 없애고 의학전문대학원을 만들어 변호사와 의사의 양산체제가 갖춰졌지만 어떤 결과를 빚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들이 고시에 합격하고 의사면허증을 따는 순간 신분향상의 달콤한 유혹이 뒤따른다. 이른바 열쇠 3개다. 마담뚜의 활약에 몸값은 천정부지로 뛴다. 비뚤어진 가치관이 빚어낸 함정이다. 여기서 허우적대다 보면 현직에 나가서도 ‘스폰서 검사’로 망신을 당하거나 부정비리로 구속되는 부장판사 출신이 된다. 의사는 히포크라테스의 의사정신으로 살아갈 것을 약속하고 인술을 베푼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 의사의 수요는 무한정이다.

큰 병원에 가보면 의사의 숫자만도 수백 명이다. 동네마다 조그마한 병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많은 병의원들이 모두 환자로 넘쳐나는 게 아니다. 더구나 환자들의 선호도가 큰 병원 일변도여서 동네 병원들이 문을 닫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보도도 있다. 많은 투자를 한 만큼 병의원도 수지가 맞아야 하는데 큰 종합병원으로만 사람이 몰리면 당연히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1년 동안 한의원 700여 곳이 문을 닫는다고 하니 어리둥절해진다.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양한방제도가 공존한다. 의대를 통합하여 양방이던, 한방이던 의사면허증만 있으면 모두 진단하고 시술할 수 있도록 했으면 간혹 되풀이되는 양한방 다툼도 없을 것이고, 건강보험도 단일화되어 국민의 의료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인데 양한방으로 이원화되면서 혼란만 가중되었다. 그래도 아직은 의과대학이나 한의과대학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과 같이 어렵다. 근래에 큰 각광을 받고 있는 한의대는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개업의들이 문을 닫는다고 하지만 한의사 면허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정착한 삼형제가 모두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꿈을 성취한’ 성공사례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묘향산한의원을 경영하는 박수현, 태현, 세현 3형제다. 맏형 박수현은 1993년 청진의대 한약학과에 다니다가 탈북하여 부모형제를 모두 남한으로 데려온 행운아다. 많은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범죄에 빠져드는 수가 있는데 이들 삼형제는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한의사의 꿈을 이뤘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하나원에서 정착교육을 받는 탈북자들의 의기는 당당하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큰 의지를 세운다. 현실의 냉담함이 그들을 자칫 범죄로 유혹하지만 박수현 3형제의 성공신화는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꿈이 있으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진리는 월드컵에서도 증명되었다.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강인한 의지로 험난한 사회를 헤쳐 나가는 한의사 삼형제의 앞날에 큰 영광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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