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박사의 세상을 여는 마음

입이 비뚤어진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특히 지도층 인사들-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
공직의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나으리들의 ‘이. 목. 구. 비’ 중에서
입이 심히 비뚤어진 자들이 이렇게 많은 까닭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돈 때문이겠지요.
먹어선 안 될 뇌물을 삼켜서 입들이 저렇게 삐뚤어졌을 겁니다.

옛날 벼슬아치들 중에도 입이 삐뚤어진 자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주로 감투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벼슬에 ‘녹’이 따르는 것이어서,
바른 말을 하다가는 귀양살이 가야했고
식구들은 모두 기아선상을 해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에도 모든 희생을 각오하고 바른 말만 하던 선비들이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조선조의 선조로부터 효종에 이르고
어지러운 백년 세월에
그래도 송강 정철 (1536~1593), 고산 윤선도 (1587~1671), 우암 송시열 (1607~1689)같은
바른 말 하다가 평생 귀양살이에 시달리고 비참하게 죽은 선비들이 있어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긍지를 느낍니다.

바른 말 때문에
혹독한 시련 속에 살아야만 했던 중국역사의 대표적 선비는
<사기>로 인류역사에 남은 사마천이었을 겁니다.
그는 한나라 무제 때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으로 임금을 보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무제가 이광리라는 신하를 몹시 편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무제가 흉노(오랑캐)를 물리치고자
토벌군을 출정시킬 때 총애하던 이광리를 총대장으로 임명했고,
용장 이릉으로 하여금 별동대 보병 5천을 이끌고 적지 깊숙이 들어가도록 했는데,
그의 별동대는 오랑캐 4만에 포위되어 견디다 못해
투항을 하고 말았습니다.

패배,
투항한 이릉장군은 온갖 중상과 모략,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를 변명하고 나선 이가 사관 사마천이었습니다.
“황제폐하, 이릉장군은 아무 죄도 없습니다.
그는 부하들의 신명이 돈독한 명장입니다.
비록 이번에 부득이 투항은 했지만
그에게 죄의 누명을 씌우지는 마시옵소서.”

무제는 그 말을 듣고 노발대발하였습니다.
알고 보면, 이 장군에게 원군을 보내지 않아
그는 고립케 한 책임은 이광리 총대장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른 말을 한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여 생식기를 도려내는 부끄러움을 당하여
마땅히 자결해야 했지만
그는 그런 치욕을 참고,
바른 말을 해야 하는 그의 사명 때문에 살아남아 <사기>를 역사에 남기고 갔습니다.

비록 입은 삐뚤어졌어도
바른 말 만하는 의로운 공직자들이 몇이라도 나타나면
백성은 살맛을 느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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