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바라크 대통령은 지난 1일 밤 차기 대선에 불출마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10일 밤에는 자신의 권력 일부를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이양하겠다는 양보안을 내놓았으나 즉각적인 사퇴 요구는 거부, 시민들을 분노하게 했다.
▲ 이집트 30년 통치 무바라크 대통령.>>>자료화면   [e중앙뉴스=지완구 기자]
이날 그의 사임이 발표되기 직전 타흐리르 광장에는 사상 최대인 100 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운집했고, 제2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도 10만 명이 넘는 시민이 가두행진을 벌이는 등 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더이상을 억누를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결국 무바라크는 카이로의 대통령 궁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홍해휴양지 샤름 엘-세이크로 떠나게 됐다.

이로써 중동의 맹주 이집트를 30년간 지배해온 호스니 무라바크 대통령의 전격적인 퇴진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두려움 없는 투쟁과 인내심으로 얻어낸 `과실'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집트에서 처음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지난달 25일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현지인뿐 아니라 국제사회조차도 '살아있는 파라오'로 불리던 무바라크가 등 떼밀리듯 퇴임하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이집트인들은 지난 30년간 무바라크 체제의 철권통치 아래에서 정권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함부로 내지 못할 정도로 억압된 생활을 감내해왔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 빈부 격차와 하루가 다르게 치솟기는 물가 속에 변변한 일자리마저 구할 길 없는 시민들의 분노는 지난달 초 튀니지의 정권을 무너뜨린 `재스민 혁명'에 자극을 받아 폭발했다.

사상 초유의 대규모 시위로 3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하고 5천 명 이상의 부상자가 속출했지만, 두려움의 벽을 허문 이집트 시민들은 카이로 시내의 타흐리르 광장을 민주화 쟁취의 보루로 삼아 무려 18일 동안이나 무바라크 퇴진 시위를 전개했다.

정권과의 타협을 거부한 수천 명의 시민들은 해방이라는 뜻의 이 광장에 간이 천막과 텐트 등을 친 채 친정부 세력의 폭력적 공격 행위에도 굴하지 않고 시위의 불씨를 지켰고, 그 불씨는 30년 된 정권을 위협할 정도로 거대해져 갔다.

무바라크가 퇴진한 권력의 빈자리는 일단 이집트 국민의 신뢰가 두터운 군이 채우게 됐다.

이번 시위 사태 속에서도 국민에게 총구를 겨누지 않은 채 정치적 중립을 지킨 군은 무바라크의 퇴임을 앞두고 이른바 `코뮈니케' 1호와 2호 성명을 통해 "시민의 정당한 요구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올해 하반기에 대선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지도록 보장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군은 또 이번 시위 사태가 잦아들면 30년 된 비상계엄령도 해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권력이양기에 개혁 조치가 순조롭게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관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집트 현 체제와 야권 단체는 개헌위원회를 구성, 야당 인사들의 대선 출마와 정당 결성의 자유를 억압해온 헌법 조항을 고치거나 삭제하고, 대통령의 연임 제한 규정을 신설하기로 합의한 바 있어 과도기에 이런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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