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언제나 익사이트하다. 선거를 가리켜 큰 선거, 작은 선거로 나누는 것이 저널리즘이지만 출마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을 건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내 입장에서 말한다면 구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사람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사람을 따로 구분하기도 어렵다. 낙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온 몸의 힘이 빠지고 수치심과 슬픔을 함께 겪는다. 대통령에서 떨어지거나 구의원에서 떨어지거나 낙선 후유증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수립 이후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실시된 공직선거가 몇 차례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를 파악해보진 않았지만 100번은 넘을 것으로 생각된다.

10월 유신을 선포해 놓고 이를 국민투표로 합리화, 합법화시킨 것도 선거 아닌 투표로 이름을 붙였지만 엄밀히 따지면 선거와 똑같다. 그 중에서도 이승만정권의 단말마적인 3.15부정선거는 학생들의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켜 4.19혁명을 유발시켰다.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를 실시하려던 전두환정권은 국민의 열화 같은 궐기에 밀려 직선제 개헌안을 받아드리는 6.10항쟁을 겪어야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새로운 선거나 투표가 실시되지만 대부분은 헌법과 선거법의 정한 바에 따라 크고 작은 선거가 실시된다. 내년도에는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는 중요한 해다.

현 정권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느냐, 야당이 빼앗긴 정권을 되찾느냐 하는 갈림길은 대선에서 좌우되지만 그에 앞서 총선이 실시될 예정이어서 국민여론을 감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다만 선거는 어떤 바람이 부느냐 여하에 따라서 흐렸다, 맑았다를 계속한다. 오는 4월27일에는 이른바 ‘미니총선’이 실시된다. 재·보궐선거다.

강원도지사 이광재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되어 지사직을 박탈당했다. 서갑원의원도 같은 신세다. 대통령실장으로 발탁된 임태희는 의원직을 사퇴하여 보선지역이 늘었다. 지방선거에서 부정을 자행한 기초단체장도 두 곳이나 재선거가 실시된다. 현재로서는 광역단체장 1곳, 국회의원 3곳, 기초단체장 2곳이지만 대법원에 계류 중인 국회의원이 2명이나 있어 3월10일 안으로 확정이 되면 5곳이 될 가능성이 많다.

선거구도 묘하게 전국적으로 걸쳐져 있어 지역민심을 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될듯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4.27재·보선에서 어떤 결과를 얻어내느냐 여하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특히 낙승이 예상되었던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이광재에게 뒤통수를 맞았던 한나라당은 이번에 권토중래를 노리고 MBC사장을 역임한 엄기영을 공천할 요량으로 보인다. 이계진의 재도전은 선거 전략의 저울추가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달려 있겠지만 좋은 여건에서 실패한 사람을 다시 내보낼 것으로 보이지 않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경남 김해는 한나라당 텃밭이라는 영남이면서도 노무현의 고향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여야의 신경이 날카롭게 맞선 곳이다. 민주당은 노무현의 후광을 앞세워 영남에 교두보를 마련할 심산으로 후보선정에 온 힘을 기우린다. 가능하면 노무현과 가장 잘 매치되는 인물을 선정할 생각이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텃밭을 놓치면 연쇄적 도괴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경남지사를 역임하고 총리후보가 되었다가 낙마한 김태호를 거론한다. 본인의 결심만 굳히면 낙점될 것이 확실하다.

전남 순천은 민주당의 안방이다. 한나라당이 넘보기 어려운 철옹성이지만 무소속후보의 진출은 그 동안 여러 곳에서 성공했다. 민주당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 심리다. 심지어 김대중의 아들까지도 떨어지는 판이다. 순천에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인물을 내세운다면 몰라도 파벌과 지분싸움으로 갈라진 현실을 보면 신진 기예한 무소속후보도 기대되는 곳이다.

경기도 성남시의 분당구는 지금까지 한나라당 후보만 당선한 곳이다. 당대표를 역임한 강재섭과 국회사무총장을 물러난 박계동이 치열한 공천경쟁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에서도 전국구 현역의원의 공천을 거론하고 있지만 지역성향은 만만치 않다. 비록 재·보선이지만 영·호남과 수도권, 강원도까지 포함된 광범위한 지역여건이 총선 못지않은 여론의 향배를 보여줄 듯하다.

게다가 무상 급식, 보육, 의료 등을 내세운 복지공약은 나라를 거덜나게 할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아편’역할을 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대폭 증세를 하지 않으면 재원마련이 불가능하다는 민주당 중진들의 경고는 자칫 “이기고 보자”는 공약(空約)에 떠밀릴 수 있다. “세금 올려 공짜심리에 영합하자는 것이냐”하는 한나라당의 반박이 얼마나 먹힐지 주시되는 대목이다.

한나라당에서 어떤 개혁적 성향의 인물을 발탁할지, 야권연대가 제대로 이뤄져 불꽃 튀는 대결을 벌일지 흥미롭다. 여야의 대통령후보 거론 인물들도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선거에 뛰어들 것이 예상된다. 이들의 숨 가쁜 대결 또한 볼만할 것이다. 다만 선거는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지만 그 과정만은 언제나 깨끗해야만 한다.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승패 간에 너털웃음으로 끝나는 선거를 보고 싶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