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배고픈 건 참겠는데 민족정기 말살만큼은 못 참겠다.'


▲  반민족 친일세력 척결 범국민 규탄대회 식전 퍼포먼스  >>>위키트리 제공 
꽃샘추위가 한발 물러난 날씨였지만 바람은 여전히 쌀쌀한 지난 11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는 ‘반민족 친일세력 척결 범국민 규탄대회’가 열렸다.

이날 규탄대회는 지난해 11월 친일반민족행위자 이해승의 손자 이우영(그랜드 힐튼호텔 회장)이 제기한 ‘친일재산 국가귀속 결정취소 소송’에서 1심의 판결을 뒤집고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당시 서울고법 박병대 부장 판사(현 대전고법 부장판사)와 대법원에서 이 판결을 확정한 민일영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며 이우영과 그의 의뢰인인 법무법인 율촌을 규탄하는 대회였다.

▲ 104살의 부익균 생존지사  >>위키트리 제공   ©e중앙뉴스
그런데 이날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도에서까지 몰려든 3천여 명의 사람들은 대부분 70을 넘긴 어르신들이었고 주최 측의 추산으로는 평균 연령이 77살이라고 했다. 이 어르신들이 지난 11월 판결 이후 15차례에 걸쳐 30년 만의 혹한을 무릅쓰고 판결무효를 위한 야외 규탄대회와 시위를 벌였다.

이날 부익균 생존지사(104살. 종로구 낙원동)도 어김없이 휠체어를 타고 이날 집회에 나왔다. 지금은 간호인의 보조를 받으며 홀로 살고 계시는 부익균 선생은 생전에 도산 안창호 선생을 모시고 독립운동을 한 분이다. 간호인 아주머니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혼자 걷지만 못할 뿐 아직은 식사도 잘하시고 특별하게 아픈데도 없으셔서 지난겨울 거의 모든 시위에 동참하셨다 한다.

상해임시정부의 경위대장으로 백범 김구 선생을 모셨던 윤경빈 광복회 직전 회장은 93살의 노구를 이끌고 이날 행사의 순서를 맡을 정도로 아직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윤 회장은 “나라를 팔아 치부한 재산을 국가가 환수했는데 우리나라 사법부가 이걸 무효로 선고 했으니 지하에 가서 백범 선생님 뵐 낯이 없다.”라며 “생전에 해방된 조국에서 조그만 과수원이나 하시겠다며 정치적 욕심 없이 초연한 삶을 사신 선생의 암살을 묵인한 사람이 국립묘지에 있다는 사실이 곧 이런 역사의 반복을 낳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반문 했다.

이날 퍼포먼스에서 상두꾼으로 상여를 메고 나온 한 독립운동가 3세는 “할아버지는 광복 다음 해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하셨다.”라며“할아버지는 독립운동으로 아버지는 한국전쟁으로 목숨을 버렸지만 광복회원도 아니고 70평생 국가에서 땡전 한 푼 보상 받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그래도 국가를 원망해 본 적이 없는데 이번 판결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라며 “ 춥고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배웠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정기를 말살하는 꼴은 정말 참기 힘들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 윤경빈 광복회 前 회장 >>위키트리 제공    
이날 집회에 나선 대부분은 생존지사를 비롯해 독립운동가들의 2세나 3세 등이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이승만정권에 빌붙어 호의호식의 특권을 이어가는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어려운 처지에서 살아왔다. 오죽하면 반민특위원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상덕 선생의 아들 김정륙씨는 이력서에 아버지의 이력을 쓰면 받아주는 회사가 없어 날품팔이 막노동으로 살아왔으며 단재 신채호 자손은 일제 강점기에 호적이 없다는 이유로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까지 일어났을까?

자신의 집권을 위해 친일파와 손을 잡고 반민특위를 해체해 민족정기를 말살해 버리고 몽양 여운형 선생과 백범 김구 선생 등의 암살을 용인한 이승만의 사리사욕이 뿌려놓은 씨앗이 오늘날 매국의 대가로 받은 선조의 재산을 용인해주는 독립국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업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14대 국회 보건복지위원을 역임했던 4선의 김상현 전 의원은 “지난 1993년 독립운동가 유족인 김원웅 의원의 건의를 받아 당시 예산처장을 설득해 100억 원을 출연해 생존 독립 애국지사들의 특별예우 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는데 지난해 상황을 알아보니 2002년만 해도 288명이었던 생존지사가 176명밖에 되지 않아 이제 예우금을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라며 “이분들이 세상을 떠나면 이제 누가 있어 민족정기 수호에 앞장설지 염려된다.”라고 안타까워했다.

팔순, 구순이 넘은 독립운동가 어르신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역사의식이 없는 일부 몰지각한 판사들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있음을 깨달으며 서산에 지는 해를 똑바로 바라보기에 한없이 부끄럽고 부끄러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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