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민의식은 더 높다
한국의 시민의식은 더 높다
  • 전대열 객원 대기자
  • 승인 2011.03.2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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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지변에 대해서는 보험금도 지불되지 않는다. 인위적인 사고에 대해서만 보험은 보험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으로서는 불가항력이었다는 뜻이다. 물론 아무리 천재지변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 최대의 방어를 했다면 그 상처는 조금 줄어든다. 사전에 큰 사고에 대비하면 상당부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비바람이 세게 몰아치면 농사용 비닐하우스는 거개 무너진다. 지주대가 약하고 얹어 놓은 비닐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고 펄럭거리면 강풍에 날아가기 마련이다.

더구나 이번 일본에서의 지진해일과 같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해볼 수없는 자연의 재해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년 전의 인도네시아 해일이 줬던 충격파에 비해서 일본의 재해는 훨씬 크다. 그것은 세계 경제대국의 톱클래스에 속하는 일본이 사실상 침몰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해일은 동부를 모두 휩쓸었을 뿐만 아니라 후쿠시마에 있는 원자력발전소를 덮침으로서 방사능 유출이라는 미증유의 공포까지 동반하고 말았다.

도시 하나를 모두 삼킨 해일에 의한 인명피해는 과연 몇 명이나 희생자가 생겼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 숫자는 짐작하기도 어렵다. 바다 물에 떠내려가고, 무너진 집 더미에 묻혀있기도 하며, 행방불명이 된 사람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런 비극 속에서 터진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은 외국인의 일본탈출을 부추기고 있다. 경제대국에 관광대국인 일본이 이다지도 허망하게 무너지리라는 예상을 못했던 많은 외국인들은 방사능을 피해야 된다는 다급함으로 우선 일본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여행객이나 유학생들이 한꺼번에 대거 귀국을 재촉하고 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이 방사능 피폭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이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 세례를 맞고 항복한 전력(前歷)이 있다. 엄청난 폭풍에 휩쓸려 20만이 죽었다. 일본왕은 즉각 무조건항복을 선언하여 더 이상의 참화를 면했으나 그 뒤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이 계속 늘어나 큰 사회적 암 덩어리가 되었다. 이로 인하여 낭패를 맛본 일본이 방사능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와중에도 일본인들은 매우 침착한 자세를 보였다. 생필품이 태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마트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은 새치기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도 했다. 필요한 물건 이외에는 사재기도 하지 않는다.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로다. 시가지가 모두 망가졌지만 약탈 같은 반문명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혼란한 틈을 타 마구잡이로 자기의 욕심을 챙기는 일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된 사회, 시민들의 문화의식 등이 높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몇 년 전 미국 LA에서 흑인들에 의한 폭동사태가 일어났을 때 약탈이 성행했다. 중국이나 아이티에서 지진이 났을 때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와 이집트혁명 와중에도 혼란은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일본인들의 자세는 문명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질 만하다. 우리 언론들과 지식인들이 이를 높이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 이의도 있을 수 없다. 다만 한국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예견을 하는 것은 과거에 있었던 사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망발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어느 민족보다도 평화를 사랑하고 염치를 중히 여긴다. 많은 사건과 혼란을 겪었어도 의연하게 대처해왔다.

120여년 전에 있었던 동학혁명 당시에도 전봉준장군은 휘하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엄명을 내렸다. 수십만의 동학교도들이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를 모두 점령했지만 어떤 형태의 약탈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렴주구를 일삼는 탐관오리는 가차 없이 처단했지만 백성은 철저히 보호했다. 3.1만세운동은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세계만방을 향하여 우리의 독립의지를 알렸다. 7500여명이 일제경찰의 간악한 총탄에 숨졌지만 만세를 부르는 백성들은 대오를 흩트리지 않고 공명정대함을 제일로 내세웠다. 이승만정권의 부정부패와 일인독재를 타도한 4.19혁명 때에도 혼란이 극심했지만 학생들은 질서유지에 전념을 다했다. 오히려 많은 시민들이 주먹밥을 나눠주고 목마른 데모대를 위하여 물을 퍼 날랐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일대가 시민군과 군경의 접전장이 되었어도 단 한건의 절도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반대했던 6.3운동 때도, 직선제 개헌안을 내세운 6.10항쟁 당시에도 서울시가지는 데모대로 물결쳤지만 그들의 대오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지진해일에 넋 나간 일본국민들이 이성을 잃지 않고 끝까지 양보와 겸손함을 지키는 자세는 참으로 훌륭하다. 이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로되, 한국인들은 그러하지 못할 것이라고 폄하하는 태도는 지나친 자기비하다. 한국인은 예전부터 확고한 신념과 뚜렷한 이성으로 굳센 의지를 발휘하는 민족임을 스스로 깨닫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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